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09 베이징 한국 상품전’. |
수출 상담액 2억1500만 달러, 수출 계약액 9465만 달러.
6월 23일부터 사흘 동안 중국 베이징(北京) 중국국제박람중심에서 열린 한국우수상품전에서 올린 성과다. 이 행사에는 ‘세계 일류 상품기업’ ‘코트라 보증 브랜드 기업’ ‘중국 수출 100만 달러 이상 기업’ 등 국내 기업과 현지 진출 업체 110곳이 참가했다. 2만여 명이 줄을 서서 참관할 정도로 행사는 성공을 거뒀다.
그중 바이어만 3000여 명에 달했다. 주최 측인 지식경제부와 주관자인 코트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자평했다.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 중국에서 이런 대규모의 한국 상품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별히 중국에서 이 행사를 연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이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2008년 우리나라 10대 수출품 중 7개 품목에서 제1의 수출시장이 중국이었다. 2008년 기준으로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22%였다. 11%를 차지하는 미국보다 두 배가량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8년 1월부터 9월까지 대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25%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중국 수출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1월부터 4월까지 수출액은 23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줄었다. 최근 3개월만 보더라도 3월에 22%, 4월에 19%, 5월에 26%가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9%가 감소한 735억 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지경부는 예상했다.
외형은 물론 내용상으로는 그리 견실한 편이 못 됐다. 올해 1분기에 대중국 수출에서 원자재·자본재 비중은 93%에 달했다. 소비재 직접 수출 비중은 불과 7%였다. 소비재 수출 비중은 2005년 이후 7% 안팎을 맴도는 수준이었다. 이는 대중국 수출의 70%는 중국을 우회해 제3국으로 수출되는 우회 수출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용 수출 비중은 3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중국 수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 직접 공략을 본격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행사의 의의를 조환익 코트라 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각국 SOC 투자에 주목해야
“대중국 수출품은 대부분 수출용 원자재 부품, 장비 위주였다. 소비재는 6%밖에 안 된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이 절박한 시점에서 중소기업의 생활용품, 소비재로 중국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최초의 마케팅 행사다. 한국에도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비재가 있다는 것을 광고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경부와 코트라는 오는 11월에 쓰촨 (四川)성 청두(成都)에서도 이와 유사한 특별전시회 개최를 계획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은 경기부양책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코트라가 상반기에 내놓은 ‘주요국 경기부양책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부양책을 추진 중인 나라가 25개국에 이른다.
어떻게든 위기를 탈출해 보겠다는 각국의 몸부림이라 할 만하다. 그 규모만도 약 2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GDP의 4% 가까운 막대한 금액이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올해 각각 7000억 달러, 1700억 유로를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 붓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그 규모가 4조 위안, 5조 엔에 이른다. 멕시코는 745억 달러, 인도는 600억 달러, 러시아는 772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그중 가장 많은 투자 대상은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다. 전 세계 경기부양 자금의 24%, 6000억 달러가 SOC에 투자된다. 중소기업 지원, 가계지원도 전 세계 경기부양책의 주요 대상이다.
각국의 이런 경기부양책은 우리 수출의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 코트라는 그중에서도 각국의 SOC 투자에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설과 IT 분야는 우리나라가 확실한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이런 식의 수출 환경 변화를 코트라는 ‘5대 트렌드’로 정리했다.
곧 ‘돈 쓰는 정부’ ‘똑똑해진 소비자’ ‘글로벌 기업’ ‘그린·웰빙’ ‘비주류 시장’을 수출의 새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5대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승부수라고 말한다.
요즘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큰손은 바로 정부라는 것이 ‘돈 쓰는 정부론’의 요체다. 앞서 살펴보았듯 경쟁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선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덩달아 각국 정부의 직접 구매도 크게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똑똑해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할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구매력이 전보다 약해진 소비자들은 상품 구매 때 비용 대비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산 제품이 중국산보다 품질은 우수하고, 일본산보다 가격은 저렴해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세계적 경기부양 열기에 적극 편승
우리 업체가 글로벌 기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 더 많아졌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기존의 구매정책을 대폭 수정하는 일이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크게 늘었다.
글로벌 기업 구매정책 변화의 공통된 특징은 비용 절감이다. 구체적으로는 ‘거래선 소수 정예화’ ‘재고 관리와 단기 구매’ ‘포기하지 않는 품질과 기술’ ‘공동 구매’ ‘환율 변동에 따른 구매선 변화’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우리 업체들이 파고들 수 있는 틈새가 생겨난 셈이다.
세계적 경기 침체기에 그린·웰빙 시장이 오히려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그린·웰빙 상품이 일반 상품보다 비싸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관련 시장이 커지는 것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성과 효율성이 높다는 인식의 확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국가에서 에너지 절감형, 재생에너지 활용, 친환경 관련 상품들이 히트 상품 대열에 속속 진입하고 있는 것이 그런 예다. 그동안 우리 수출 시장에서 ‘비주류’로 분류됐던 곳이 ‘주류’로 떠오르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중동과 중남미 시장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중동의 자동차·가전 등 소비재 시장, 중남미의 자원 및 플랜트 시장이 적극 공략 대상으로 꼽힌다. 최근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중국의 내수시장과 함께 이른바 3중(中) 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3중 시장은 올해 들어 주력시장의 극심한 수출 부진 속에서도 우리 수출이 선전한 곳이다.
미국 내 인구 15%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 시장도 같은 맥락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그들의 구매력은 연간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여건 변화로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8억 명의 이슬람권 여성 대상 시장도 블루슈머로 떠오르고 있다. 블루슈머란 블루오션과 컨슈머의 합성어로 경쟁자가 없는 신흥 소비계층이란 뜻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코트라는 최근 ‘부상하는 이슬람권 여성 소비시장 공략 포인트’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시장의 이런 변화를 정리한 개념이 이른바 ‘역(逆)샌드위치론’이다. 우리 상품이 가격 면에서 중국에 비해 그렇게 비싸지 않고 또한 기술 면에서 일본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역샌드위치론의 골자다.
이는 그동안 “중국의 저가공세와 일본의 고기술 사이에서 한국 수출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소위 ‘샌드위치론’에 대비되는 논리다. 역샌드위치론을 가장 앞장서서 펼치고 있는 대표적 인사가 조환익 코트라 사장이다.
조 사장은 ▶환율변동에 의한 경쟁력 강화 ▶GM 등 다국적 대기업의 글로벌 아웃소싱 주 대상국으로 한국 부상 ▶한국제품에 대한 신뢰도 향상 ▶치킨게임을 버티는 힘인 양호한 기업 재무구조 ▶한국인의 강력한 시장 개척 의지 등을 역샌드위치론의 근거로 든다. 역샌드위치론은 다름 아닌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 주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 결과로도 입증됐다. 중국, 미국 등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시장 점유율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코트라가 5월 초순 펴낸 ‘해외시장에서의 한·일 수출 품목 경쟁 동향’ 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중국 수입시장에서 한국 상품 점유율이 올해 1분기에 10.5%였다.
작년 동기 9.9%에 비해 0.6%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반면 일본 상품 점유율은 지난해 13.3%에서 13.2%로 오히려 0.1%포인트 줄었다. 그 결과 한국과 일본 상품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작년 3.4%에서 올해 1분기에 2.7%로 크게 좁혀졌다. 이 같은 결과는 미국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1~2월 동안 한국 상품이 미국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였다. 지난해 2.3%에서 0.5%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 6.6%였지만 올해는 6.4%였다. 일본 상품의 비중이 0.2% 감소해 한국과 격차가 0.7% 줄어든 것이다.
주요국서 시장점유율 올라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한국 상품 점유율이 2006년 이후 처음으로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2006년 이후 두 나라에서 한국 상품의 비중은 3년째 감소 추세를 보였었다. 반면 일본 상품의 비중은 2006년 이후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한·일 양국의 수출 명암은 품목별 실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표적 양국 경쟁 상품인 LCD의 경우 중국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지난해 29.1%에서 올해 1분기에 39.8%를 기록했다. 10%포인트 넘게 급증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점유율은 지난해 12.4%에서 12.7%로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 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이 5.9%에서 11.7%로 크게 높아졌다. 일본은 같은 기간에 32.9%에서 31.6%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수출시장에서 환율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7월 2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269.5원을 기록했다. 4월 이전에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00원대를 넘나드는 고공 행진을 계속했지만 5월 이후에는 1200원대에서 횡보를 계속하고 있다.
환율 효과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계속 선전하기 위해서는 환율 효과로 얻은 이익을 품질, 브랜드, 디자인 등 비가격 경쟁력 높이기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