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끊임없는 노력을 한 끝에 성웅으로 추앙 받게 됐다. 이순신은 28세에 처음으로 무과에 응시했으나 낙마하는 바람에 떨어지고 말았다. 4년 후인 32세 때 무과에 합격했으나 장원급제는 아니었다. 전체 합격자 29명 중 12등을 차지했다. 군인으로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이순신은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을 하는 수모를 겪었다. 임관 10년 뒤에는 무과 동기생 밑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맨 처음 이순신이 받은 직책은 함경도 권관으로 종9품의 미관말직이었다. 북쪽의 먼 국경에서 추위와 싸우며 근무하던 이순신에게 전라도 고흥 발포진의 수군 만호로 근무하라는 발령이 났다. 그러나 2년 후 상관의 인사 청탁을 거절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파직을 당하게 된다. 이순신은 42세 때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임명돼 또다시 북행 길을 떠나야 했다. 그 다음 해에는 두만강 어귀의 녹둔도둔전관에 임명돼 소수의 병력으로 고군분투했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첫 번째 백의종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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