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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Ⅱ - 빅4(미·중·일·EU) FTA에 한국 허브 구상 무력화 

복잡해진 FTA 방정식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통한 경제 블록화 확산 … 개별 FTA 속도 내면서 경제통합 협상 주도해야



4월 15일 벨기엘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자유무역협정(FTA) 첫 협상이 열렸다. 앞서 일본은 장고 끝에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선언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EU가 FTA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영향력 확대에 나선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아세안+6개국’이 참여하는 경제통합을 주도한다. 세계 경제 ‘빅4’가 자국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에 나서면서 한국의 FTA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한국이 체결한 FTA의 득실도 따져봤다. 

세계 통상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두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를 맺는 시대가 저물고 여러 국가가 함께 FTA를 맺으면서 경제 통합에 나서는 경제 블록화 현상이 뚜렷하다. 경제 통합을 주도하는 건 세계 경제 ‘빅4’인 미국·중국·유럽연합(EU)·일본이다. 미국과 달리 FTA에 미온적이던 일본·중국·EU가 적극 나서는 것도 도드라진 특징이다.

EU 회원국까지 모두 47개국과 FTA를 맺어 ‘FTA 허브 국가’를 자처한 한국엔 비상이 걸렸다. FTA 선점 효과를 누리기도 전에 ‘경제 통합’이라는 거대한 조류가 밀려온다.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수 있다. FTA 전략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양자 간 FTA 체결에 치중한 통상 전략·전술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 명진호 연구원은 “양자·다자간 협상이 동시에 추진되는 만큼 협상 참여국의 공조와 견제를 통해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운영의 묘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 FTA에 적극적이었다. 칠레·멕시코에 이어 FTA 경제 영토가 3위권이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과 EU가 본격적으로 FTA 논의를 시작했고, 일본은 EU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아세안(ASEAN)은 개별국 차원에서 세계 여러나라와 FTA 협상에 나섰다. 더욱이 세계 주요 경제 권역별로 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특히 아시아를 둘러싼 경제 통합이 가속도를 낸다. FTA 방정식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FTA 열등생’으로 불리던 일본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페루와 FTA 전 단계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발효한 일본은 몽골·캐나다·콜롬비아와 협상을 시작했다. 한·중·일 FTA와 동아시아 다자간 경제통합 협정을 뜻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적극적이다.

4월 15일에는 EU와 FTA 첫 협상을 시작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간 FTA인 TPP는 연말 타결을 목표로 11개 국가가 협상 중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TPP 참여를 고심했다. 손익 계산을 놓고 일본 내에서 이견이 많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3월 15일 TPP 참여를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미국은 한국이 TPP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는 최근 “미국과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한국이 TPP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중이지만 답을 내기가 어렵다.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면 협상 참여국 중 아직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호주·뉴질랜드·멕시코 등과 협정을 맺는 효과가 있다. 더욱이 일본이 TPP 참여를 선언한 이상 한국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TPP, 이제는 결단해야 할 때다’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은 TPP 참여로 자원 부국인 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 한국이 누리지 못하는 이익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시장 선점 기회를 잃고 한·미 FTA 선점 효과도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서진교 선임연구위원 역시 “APEC 전체를 아우르는 다자 협정에 한국이 홀로 빠지는 것은 부담”이라며 “TPP 개방 수준을 봐야겠지만 자칫 일본에 주변국 시장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익이 없다는 견해도 있다. KIEP 일본팀 김규판 연구위원은 “TPP에 참여하는 11개 나라 중 5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고 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경제적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제1 교역국인 중국 눈치를 안 볼 수도 없다. 김 연구위원은 “TPP가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면 자칫 한·중 FTA나 한·중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딜레마 예고

‘미국이냐, 중국이냐?’ 국내외 많은 경제학자들은 앞으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요즘 상황이 그렇다. 중국은 그동안 홍콩·마카오·아세안·칠레 등 17개국과 9건의 FTA를 체결했다. 경제 규모에 비하면 소극적 행보였다. 하지만 중국도 세계 통상 흐름에 맞춰 공세로 전환했다. 특히 미국이 TPP를 내세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을 확대하려는데 대응해 아시아 역내 경제 블록화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최근 중국은 전형적인 ‘투 트랙’ 전략을 쓴다. 다자간 경제통합협의에 나서면서 자원확보 등 목적에 맞는 국가를 골라 FTA를 추진한다. 중국은 현재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걸프협력회의(걸프 6개국)·호주와 FTA 협상 중이다. 자원 확보가 목적이다. 최근에는 아이슬란드와 FTA를 체결했고 노르웨이·스위스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북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협상 중이고, 지난해 11월에는 한·중·일 FTA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은 또한 그동안 추진한 ‘아세안+3(한·중·일)’ 참여에서 ‘RCEP(아세안+6)’ 참여로 입장을 바꿨다. RCEP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중국·호주·인도·뉴질랜드와 아세안 10개국이 참여한다. 명진호 연구원은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 간 대결 구도”라며 “앞으로 아시아에서 TPP 협상과 RCEP 협상이 경쟁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FTA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을 동시에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월 연두교서에서 수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TPP를 조속히 완료하고 EU와 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TAFTA) 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TPP에 주력하는 것은 안정적인 수출 시장을 확보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오랜 구상인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를 구축하기 위한 포석 성격도 짙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5%, 교역의 33%를 차지하는 미국과 EU가 FTA를 체결하면 글로벌 통상 질서가 미·EU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미국은 TPP와 미·EU FTA가 글로벌 교역의 룰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EU FTA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EU는 내년 중반으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이전에 협상이 마무리 되기를 원한다. 미국 역시 내년 11월 중간 선거 이전에 협상이 타결되기 바란다. 관련 보고서를 종합해 보면, 미국과 EU가 전면적으로 관세를 철폐하면 EU의 대 미국 수출은 7~18% 증가하고 GDP는 0.3~0.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 EU 수출은 8~17%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노리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KIEP 김영귀 지역통상팀장은 “양측 FTA에 규제 이슈와 글로벌 통상에 관한 규율이 포함될 예정이어서 그 내용에 따라 글로벌 기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양측이 손 잡고 ‘우리가 하면 너흰 따르라’는 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EU와 FTA를 맺은 우리나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 미·EU 수출이 많은 승용차·석유제품·차량부품·타이어·플라스틱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KIEP에 따르면 미·EU FTA가 체결돼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한국의 GDP는 발효 5년 후에 약 0.02%, 10년 후에는 0.0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패권 지키려는 미국

재정위기와 내수 부진을 겪는 EU도 FTA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EU는 최근 미국·일본과 포괄적 FTA를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EU가 미·일과의 FTA에 나선 것은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수출 외에 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EU 집행부는 산업계의 요구에도 FTA에 유보적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독일·스웨덴 등 수출을 많이 하는 회원국이 경기 침체를 덜 겪는 현상을 보면서 거대 선진국과의 FTA 추진을 위한 정치적 여건이 형성됐다.

유럽의회가 미국·일본과의 FTA 추진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할 때 찬성표는 각각 85%, 76%였다. KIEP 강유덕 유럽팀장은 “유럽 정치권이 선진국과의 FTA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배경은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쇠퇴에 관한 인식이 확산됐고 글로벌 통상 규범과 기준 설립에 EU가 여전히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U가 일본과 FTA 협상에 나선 것은 예상 밖이다. EU 입장에서 일본과의 FTA는 남는 게 별로 없는 장사다. 일본 제조업 부문 평균 수입관세는 1.3%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다. FTA를 맺어도 일본에 대한 수출이 큰 폭으로 늘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럽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일본은 동일본 지진 영향으로 수출 전선에 이상이 생기면서 양측 협의가 급속도로 진전됐다. 미국이 TPP를 통해 일본과 FTA를 시도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EU와 일본은 4월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첫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타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EU 이사회는 일본과의 FTA 협상을 승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 ‘민감 산업에 대한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포함해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의 비관세 장벽(각종 규제) 철폐 노력이 부족할 경우 협상을 중단하도록 명시한다’.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EU가 그동안 추진한 FTA 추진 속도를 볼 때 EU·일 FTA는 발효까지 4~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경제 블록 ‘세 대결’ 본격화

빅4가 FTA 적극 나서면서 다른 경제권도 경제 블록을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남미에서는 멕시코·칠레·콜롬비아·페루 4개국이 회원 간 상품·서비스·투자·인력의 활발한 교류와 함께 FTA를 추진할 목적으로 ‘태평양 동맹’을 창설했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카자흐스탄과 관세동맹을 발효한 데 이어, CIS(옛 소련에서 독립한 독립국가연합) 8개국과 FTA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이들 국가와 2015년까지 EU를 모델로 한 ‘유라시아 연합’을 창설할 방침이다.

기존 경제 블록도 외연 확대에 나섰다.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 4개국이 만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MERCOSUR)에는 지난해 7월 베네수엘라가 추가 가입했다. 메르코수르는 EU와의 FTA를 검토 중이다. 한국·중국·일본·인도·호주·뉴질랜드와 FTA를 맺은 아세안 10개국은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ACE)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동시에 아세안 국가들은 각 회원국별로 FTA를 추진한다. 말레이시아·베트남은 EU와 FTA 협상 중이고 싱가포르는 지난해 12월 협상을 타결했다. ‘따로 또 같이’ 전략이다.

최근 세계 통상 이슈다. FTA를 통한 세계 주요국의 합종연횡, 다자간 FTA 확산과 경제 통합 추진, 아시아 지역의 경제통합 경쟁이다. 한국 입장에선 한 가지가 더 있다. FTA 선점 효과의 희석이다. 한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는 최근 다른 나라와의 FTA에 적극 나선다. 이미 60개국과 FTA를 맺은 칠레는 홍콩·베트남과 FTA 발효를 앞뒀다.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은 지난해 홍콩·우크라이나와 FTA를 발효했고 중미 4개국·베트남·말레이시아와 협상을 시작했다. 페루는 지난해 멕시코·일본·파나마와 발효했고 EU·코스타리카와는 발효를 위한 국내 절차를 밝고 있다. 인도는 아세안과 FTA 서비스·투자 협상을 타결한 데 이어 대만·러시아·카자흐스탄과 FTA 공동연구에 돌입했다. 올해는 뉴질랜드·태국·캐나다·이스라엘과 협상을 타결하고 RCEP 협상에도 나설 예정이다. 싱가포르도 지난해 EU와 협상을 타결했고 발효 절차를 밟는다. 대만과는 올해 FTA 협상을 타결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캐나다·인도네시아와 협상이 진행 중이다. 한·중·일 FTA와 RCEP 협상에도 참여한다. 또한 일본·멕시코·걸프협력회의·호주·뉴질랜드와 협상 재개를 위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는 양자 간 FTA 체결에 더 적극적이다. 전문가들은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은 “최근의 다자간 움직임은 기존 FTA의 결점을 보완하는 FTA 2기의 성격을 갖는다”며 “그동안 양자 간 FTA에 치중해 온 한국에는 필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선진국간 경제통합은 그동안 중국과 동아시아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전략에 상당한 차질을 줄 수 있다”며 “글로벌 통상질서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명진호 연구원은 “양자·다자간 FTA협상을 동시에 추진하되 각 FTA 협상에서 부족한 부분을 다른 FTA에서 보완하면서 다자간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FTA에 적극적인 국가보다는 동유럽·CIS·아프리카 등 잠재력이 풍부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신규 FTA 협상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기존 FTA 열매를 최대한 많이 따 먹기 위해 기업의 FTA 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도 시급하다.

1186호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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