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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항공 시뮬레이션 낯설게 바라보다 

신수진, 관점의 기술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작가 이득영의 새로운 실험 헬기·자전거로 한강변·다리 촬영 익숙한 장소의 사회적 의미 포착

▎이득영, 37°17’37.07”N 127°12’6.63”E, 230cm x 100cm each, 4 pieces, 2013.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산다. 이 말은 20세기식 전문성에 기초한 다양한 분야의 상호작용이 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매우 공고해 보인다. 배타적 전문성을 확보하는 건 각 분야의 과제와 그에 대한 수행 방법, 평가 기준 등을 규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 틀을 벗어난다는 건 도전적인 과제다. 진정한 르네상스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대한 예술가이며 동시에 과학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현대 예술이 과학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예술과 과학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기술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진의 출발은 기술이며 과학이다. 사진 기술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더 밝고 선명한 그림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감동의 유효기간은 지극히 짧다. 역시 과학의 미덕은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었느냐’에 있다.

처음 사진이 나왔을 당시에 사진을 모든 사람의 기술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프랑스의 상원의원 루이 아라공은 사진술을 활용해 수집하는 정보가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가 미처 내다보지 못한 게 있다. 사진 기술의 미덕은 바로 ‘예술을 자극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어떤 기술을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곧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득영은 자신의 시각 경험을 마치 정보를 수집해서 디스플레이 하듯 사진에 옮긴다. 처음에는 한강변에 있는 60개의 간이 매점을 자전거를 타고 하나씩 촬영했다. 그 다음엔 25개의 한강 다리를 헬기를 이용해 촬영했다. 또 한강을 따라 배로 이동하면서 서울 강북과 강남의 강변을 촬영하는 작업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에버랜드를 항공 촬영한 작업과 함께 발표했다. 그의 사진에 정서적 표현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인 생활공간에 대한 탐구 정신이 담겨 있다.

그의 사진은 도시인들이 생활하는 장소의 형성과 그 사회적 의미, 즉 ‘누가 장소를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책을 만들고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고, 설계를 한 사람일 수도 있겠고, 그곳을 방문해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득영은 그중 한 가지 답을 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 장소의 가치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 그래서 그가 구사하는 관점의 기술은 헬기나 선박을 이용한 특정 시점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젊은 시절 공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전투기나 헬기의 위치와 이동경로·속도 등의 정보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시각화하는 방법을 처음 접하고 크게 매료됐다고 한다. 한 물체의 위치가 좌표화되고 그 좌표가 고유성을 띄게 되고, 그 고유성에 기초해 정보의 시뮬레이션이 구성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한 것이다. 그가 지금 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수집하고 디스플레이한다는 측면에서 항공 시뮬레이션과 유사하다. 그러한 면에서 이득영의 사진은 과학적이다.

그의 작업 과정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전에 조사하고 계획하는 일에 쓴다. 촬영은 마치 정보를 수집하듯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절도 있게 진행한다. 촬영을 마친 후 수집된 정보를 규칙에 맞게 체계적으로 나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몰두하는 단계별 세부 과제는 분명하다.

헬기 아래쪽을 향하도록 설치한 카메라가 수평 시각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화면을 잡아낼 수 있도록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사전에 소요 시간과 경비를 고려해서 꼼꼼하게 일정을 짜야 한다. 그리고 책이나 전시장처럼 최종적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환경에 따라 정보를 가공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체계적인 사고와 분석적인 접근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득영의 사진은 몸으로 체득된 시각 경험의 산물이다. 자동차나 헬기를 타고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처음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면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에 대한 이해의 틀이 될 수 있다. 그가 배를 타고 한강을 찍는 이유를 들어 보자. “올림픽대로를 따라 한강변을 운전하고 가면서 양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흥미로워서 그걸 어떻게 사진으로 옮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강 유람선의 2층 높이에서 촬영을 하면 가장 유사한 시점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자신이 사는 서울에서 매일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바라보는 수변 경관을 통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장소적 특성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 특성을 적절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배 위에서의 촬영을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잠실대교에서 행주대교까지를 왕복하며 강북과 강남을 순차적으로 촬영한 1만5000여 점의 사진을 144m에 달하는 대작으로 완성했다.


▎이득영, 강북, 94 x 14,400 cm 작품의 일부, 2013.
1만5000점 사진으로 144m 대작

이득영이 촬영한 ‘밤의 한강’은 불빛으로 시뮬레이션됐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건물의 윤곽도 잘 보이지 않지만, 불빛의 형태와 밝기, 분포만으로도 그곳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다. 이렇게 선택적으로 구성된 정보의 시각적 효과는 의외로 유동적이다.

불빛이 길게 나열된 한강변 풍경을 보면서 어떤 이는 지역에 따른 경제적 활력도에 주목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강북과 강남의 거주 환경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는 강 위에서 바라보는 감각적 시점 때문에 멀미를 느낀다. 작가가 관람객의 이런 반응을 기대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통계분석을 위한 기초 자료를 수집하듯이 불빛을 기록했고, 그 데이터를 유의미 하게 분석하는 일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이득영의 놀이공원과 한강 사진은 기능적 통계, 혹은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지 못하는 빈 구석을 조명한다. 에버랜드의 입장객에 대한 통계는 있겠지만 그의 사진 속 에버랜드에는 사람이 없다. 그의 한강 사진은 불빛으로 가득하지만, 한강변 불빛에 대한 통계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예술은 때로 이렇게 우리가 미처 필요한지도 몰랐던 것을 놀라울 만큼 세밀하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1186호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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