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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 천혜의 입지에 장인 혼 담다 

한국 베스트 골프 코스 선정 

남화영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파인비치·잭니클라우스코리아·블랙스톤이천 등 새로 이름 올려 … 대회 개최로 골프계 기여도

▎‘한국의 페블비치’로 불리는 전남 해남의 파인비치.



국내 명문 코스의 세대 교체가 일어났다. 예전까지 명문의 기준은 부킹 편의성, 근접성, 서비스, 시설, 은밀함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골프장 500개 시대를 맞아 좋은 입지에, 잘 만든, 그리고 대회 개최로 골프계와 팬들에 기여하는 코스가 명문으로 떠올랐다.

골프 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가 2년마다 선정하는 ‘2013 대한민국 베스트 코스’의 새로운 흐름이다. ‘미국 제외 세계 100대 코스’ 33위에 오른 제주의 클럽나인브릿지가 2007년 이후 네 번째로 한국 최고의 코스에 뽑혔다. 세계 100대 코스에 이름을 올린 충남 천안 우정 힐스가 2위, 경기 군포 안양CC(안양베네스트에서 이름 변경)가 3위를 차지했다. 이들을 빼고는 톱 50개 코스 순위가 크게 달라졌다.

전남 해남의 파인비치를 비롯해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코리아, 경기 여주의 해슬리나인브릿지, 블랙스톤이천, 휘닉스스프링스까지 개장 2~4년의 신생 코스가 대거 15대 코스에 진입했다. 이밖에 12개 코스가 톱 50위 안에 들었는데 이 중 다수는 신생 코스였다. 새로운 베스트 코스를 보면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장엄한 자연을 잘 살린 ‘웰본(Well Born)’이거나 최근 설계 기법을 동원해 잘 만든 ‘웰메이드(Well Made)’, 아니면 골프계에 공헌도가 높은 코스였다.

◇장엄한 자연 입지=코스 설계가들은 최고의 코스가 나오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 ‘자연환경과 입지’를 꼽는다. 베스트 코스의 70%이상을 입지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국의 페블비치, 뉴질랜드 케이프 키드내퍼스 등이 모두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코스다. 올해 톱 50 코스 중에 7곳이 각각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나왔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해안선에 다가간 코스가 국내에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엔 시뷰(Sea View)이거나 오션뷰(Ocean View) 코스로 멀찍이 바다가 보인다는 정도였다. 충남 태안비치나 경남 힐튼남해처럼 시사이드(Sea Side)라 해도 수직 콘크리트 제방을 따라 한두 개 홀이 바다와 접하는 게 전부였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는 다도해는 물론 리아스식 해안에 뛰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많다. 최신 코스 조성 노하우가 도입되면서 이런 자연을 활용한 코스가 속속 등장했다. 전남 해남 파인비치와 경남 거제 드비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파인비치는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홀이 들고난다.

바다 건너 샷을 해야 하는 홀도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가 바위섬을 향해 샷을 하고, 바다 절벽을 건너 치는 사이프러스포인트와 같은 스타일의 코스다. 제주도 중문에서 먼 바다를 향해 볼을 날리고 아쉬움을 달래던 골퍼의 열망이 여기서는 코스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드비치에서는 코스 앞바다에 김 양식장이 펼쳐진다. 툭 튀어나온 반도를 따라 18홀이 오밀조밀 들어앉았다. 세 개의 파3 홀이 모두 바다를 향해 내리꽂듯 샷 하는 구조다. 아쉬움도 있다. 바다 끝까지 홀이 뻗어나가지 못한 건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발견돼 해안선 50m를 띄워야 한다는 환경영향평가 때문이었다.


이런 자연을 코스에 활용한 것이 바다뿐일까. 산도 자연환경의 요소다. 올해 베스트 코스에 든 제주도의 클럽나인브릿지·핀크스·롯데스카이힐은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제주 앞바다의 자연을 가장 잘 아우르고 있다. 새롭게 베스트 코스에 진입한 롯데스카이힐 스카이-오션 코스는 거의 대부분의 홀에서 백록담의 장관을 보거나, 제주 앞바다의 햇볕에 반사되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진화된 조형 노하우=천혜의 자연환경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부지에서 최고의 레이아웃을 빚어낸 웰메이드 코스가 올해 베스트 코스의 또 다른 트렌드다. 전 세계 250여 곳의 코스를 설계한 잭 니클러스는 송도에 본인의 다양한 설계 노하우를 모두 쏟아 부은 코스를 만들었다.

직사각형의 네모나고 평평한 매립지라는 극도로 제한된 조건 아래 좁지만 난이도 높은 그린 에어리어, 마운드와 수림, 인조 암반을 최대로 이용해 홀 간 독립성과 난이도를 높인 토너먼트 코스를 창조했다. 자연 속에 휴식터를 조성하는 기존의 코스 조성 방식과는 달리, 마천루를 배경으로 옆 도로와의 차폐(遮蔽) 및 안전까지 고려하면서 홀이 이어지는 ‘도심 속 골프장’의 모델을 제시했다.

제주 클럽나인브릿지의 후광을 입은 데이비드 데일은 경기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에서도 다양하고 전략성 높은 홀을 창조했다. 좁은 듯한 코스 부지지만 인공암반을 활용하면서 시각적인 장대함을 줬다. 자연스러움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골프 코스에 인공 암반을 활용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지만, 이제는 세월이라는 옷이 그 도드라짐을 충분히 감싼다.

거기에 골프장의 섬세한 코스 조형 노하우가 더해졌다. 카트 길에도 인조 잔디를 심어 불규칙 바운스를 없애고 시각적인 자연 환경을 만들려 한 점과, 18개 홀의 그린 밑으로 서브에어와 하이드로닉 시스템을 설치해 겨울이나 장마철에도 최상의 라운딩 조건을 제공한다.

블랙스톤이천은 블랙스톤제주의 설계가인 브라이언 코스텔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만하다. 계단식 그린은 핀 포지션에 따라 티 샷과 어프로치를 달리해야하는 다양성을 제공하고, 커다란 벙커가 확실한 상벌의 요소로 작용한다. 또 억지스러운 홀 흐름이나 뭉텅깎아낸 법면이라곤 찾을 수 없다. 제주가 천혜의 자연환경 덕을 보았다면, 이천은 오로지 코스 조형만으로 자연 속에 편안하게 묻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설계부터 공사, 조형, 마무리 작업, 조경까지 이어지는 눈썰미 높은 안목과 정성이 배어있다.

강원도 평창의 휘닉스파크에 이어 보광이 선보인 경기 이천 휘닉스스프링스는 짐 파지오가 한국에서 작업한 첫 번째 코스다. 다양한 오르막 내리막에 다이내믹한 벙커 조성이 돋보인다. 마운드와 나무와 홀 레이아웃이 차폐 기능을 훌륭하게 해서 독립적이다. 이곳 역시 조형과 마무리 손질이 뛰어난 점은 ‘파지오’ 가문의 특징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KLPGA 회장을 지낸 오너 홍석규 회장의 안목까지 곁들어졌다.

베스트 코스에 새로 진입한 경기 여주와 이천의 트리오 모두,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베스트 코스를 조성한 모기업이 만든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또 이전의 코스가 모두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탄생했다면, 이후의 코스는 경험과 정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대회 개최 코스= 국내 코스 수가 500개에 이르고, 골프가 성숙하는 길목에서 골프장의 사회적 역할이 점차 강조된다. 이전에는 회원권 분양과 골프장 홍보 목적으로 대회를 과시하듯 열었지만, 최근에는 골프계와 사회에 기여하는 연결고리로 대회를 연다.

올해 베스트 코스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충남 천안 우정힐스는 2003년부터 10년 동안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오픈을 개최했다. 해외 유명 선수를 초청하는 것은 물론 국내 대표 선수가 총출동해 골프 팬에게 골프의 묘미를 선사한다.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는 개장과 동시에 아시아 최초로 미국 프로골프 PGA 챔피언스투어를 2년간 개최했다. 게다가 신한동해오픈·한국여자오픈 등 국내 메이저 대회를 잇따라 열어 토너먼트 명소로 자리 잡았다. 2015년 프레지던츠컵 개최지로도 유력하다.

제주 서귀포 핀크스는 1999년 개장과 동시에 다양한 프로 대회의 스폰서가 됐다. 뿐만 아니라, 한일여자대항전을 창설해 한국과 일본의 골프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텄다. 특히 국내 최초로 유러피언투어인 발렌타인 챔피언십을 3년간 개최했다. 이 대회는 블랙스톤이천으로 옮겨왔다.

경기 파주 서원밸리는 2000년부터 매년 5월 주말에 코스를 완전 개방하고 지역민을 초청해 그린콘서트를 연다. 성수기 주말에 골프장을 폐쇄하고 코스를 개방해 노래와 춤과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콘서트는 프로 대회 개최 이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이벤트다.

이후 파인힐스 등에서 이 행사를 벤치마킹 했다.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 오션 코스는 이웃한 하늘 코스와 함께 국내 메이저급 대회의 전당이 됐다. 2007년 박세리의 LPGA 명예의전당 헌정을 기념한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시작으로 봄에는 아시안투어 SK텔레콤오픈을 3년간, 가을에는 국내 유일의 미국여자프로 LPGA투어 하나은행챔피언십을 올해 6회째 열었다.

제주도의 롯데스카이힐 역시 프로 대회의 명소다. 개장 첫 해 남자 대회인 롯데스카이힐오픈을 개최했으며, 이후로는 매년 여자 대회를 두 번 이상씩 치르고 있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ADT캡스챔피언십도 이곳에서 7번이나 열렸다. 올해도 KLPGA 시즌 개막전인 롯데마트여자오픈을 치렀고, 여름엔 롯데칸타타여자오픈을 연다.

1186호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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