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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 양성화” vs “세금 낭비” 

현금영수증 복권제 재도입 논란 

5년간 시행하다 2011년 폐지 … 국세청 “현금영수증 발급 정착돼 폐지”



매 홀수 달 25일 대만 사람들은 그간 모은 두 달치 현금 영수증을 들고 TV 앞에 앉는다. 이날은 현금영수증 복권 추첨일이다. 대만에서 영수증은 곧 복권이다. 대만 정부는 8자리 일련번호를 매긴 현금영수증을 모든 사업자에게 배부한다.

사업자는 현금·카드 결제를 불문하고 반드시 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소비자는 당첨을 기대해 영수증을 열심히 챙긴다. 당첨번호와 8자리가 모두 일치하는 1등 당첨금은 20만 대 만달러(약 800만원)다.

2011년에는 특별등을 신설했다. 특별등 당첨번호와 8자리가 일치하면 1000만 대만 달러(약 4억원)을 지급한다. 특등 추첨도 있다. 당첨금은 200만 대만달러(약 8000만원)다. 1등 번호와 뒷자리 3개가 맞으면 6등이다. 당첨금은 우리 돈 약 8000원이다.

대만 정부는 1982년 영수증 복권제판법을 제정했다. 탈세를 막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영수증 복권의 인쇄·발급과 당첨금 지급 전 과정을 철저히 관리한다. 필요한 재원은 소매상으로부터 걷는 영업세에서 3%를 떼어 활용한다. 지출보다 제도 시행으로 얻는 사회·경제적 실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가 있었다. 2000년 1월 정부는 탈세 방지와 세원 확보를 위해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를 시행했다. 당첨금은 1등이 1억원, 6등은 1만원이었다. 시행 첫 해 신용카드 사용액은 급증했다. 당시 국세청은 “복권제가 실시되면서 신용카드 사용이 2배로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세원 징수액도 크게 늘었다. 시행 첫 해에는 2조원, 2001년에는 6조원의 세금을 더 거뒀다. 2005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현금영수증 복권제를 시행했다. 현금영수증 발급액은 시행 1년 만에 18조원, 2년 만에 30조원을 돌파했다. 당시 국세청은 “자영업자의 과표가 양성화되고 음성적인 자금 흐름을 차단시켜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높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신용카드 복권제는 시행 5년 만인 2005년 말 폐지됐다. 신용카드 영수증 발급이 정착됐다는 이유였다. 2011년 말에는 현금영수증 복권제도도 폐지했다. 같은 이유였다. 2006년 말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첨금이 소액이어서 국민 관심이 작고 조세 지출만 된다는 이유로 폐지가 거론될 때 국세청은 “현금영수증제는 성공한 제도”라며 반대했다.

영수증 복권제가 세원을 넓히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2005년 4억5000만 건이던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는 2010년 50억 건으로 늘었다. 국세청은 스스로 ‘성공한 제도’라고 평했던 이 제도를 왜 폐지했을까. 탈세를 억제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 제도는 왜 5년 만에 사라졌나.

1990대 초반 영수증 복권제 도입을 처음 주장한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사회 지배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제도는 실패 확률이 높다. 제도로 생기는 이익은 전체 사회에 고르게 분배되는데 손해는 특정 이익집단에 집중된다면 실패 가능성이 크다.

이익이 전체 국민에게 분산돼 버리므로 이러한 제도를 지원하고 강하게 추진할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다. 그런데 손해는 사회 기득권층이나 고소득층에 집중되므로 이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제도의 추진과 집행을 저지하려 한다. 신용카드·현금 영수증 복권제 폐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현금영수증 복권제는 시행 첫 해 당첨금이 1억원이었지만 2006년에는 1000만원으로 줄었다. 2010년에는 등위에 상관없이 일괄 5만원이 지급됐다. 정부도 처음엔 떠들썩하게 홍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소비자가 많을 만큼 시행 의지가 약해졌다.

강 교수는 “현금영수증 복권제 도입 당시 대형 도소매업과 학원·병원·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 현금 수입 비중이 큰 부유층들은 그들의 인맥을 활용해 정계·경제계·언론계·학계에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세청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며 세무조사 전담 인력을 400명 늘렸지만 조사를 통해 징수하는 세수는 전체의 3%에 불과하다”며 “세무조사 인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자진납세 비중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하경제를 지상경제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제재와 함께 적절한 보상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바로 영수증 복권제”라고 주장했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세정 당국이 지하경제의 발본색원을 외치지만 지하경제는 탈세조사 등 단순히 세무행정 차원에서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전히 ‘적발 후 처벌’ 위주의 정책을 편다. 2007년부터는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신고제도를 시행했다.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고 신고하면 거부 금액의 일부를 신고자에게 포상금으로 주는 제도다. 이 경우 사업자는 가산세를 물어야 한다. 2010년 4월에는 고소득 전문직과 대형 자영업자의 탈세를 막기위해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제가 시행됐다. 최근에는 의무 발급대상을 확대하고 발급 기준도 현행 3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신고포상금제 실적은 미미하다. 지금도 현금을 내면 할인해준다고 고객을 유인해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말 적발된 서울 강남 A치과병원이 그런 예다. 이 병원은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수술비 10~15%를 깎아주고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신고하지 않은 현금 거래액만 195억원이다.

수임료를 차명계좌로 받던 변호사, 현금수입을 탈루한 나이트클럽 사장도 함께 적발됐다. 강 교수는 “영수증 복권제는 탈세와 세금 횡령 탓에 생기는 국가 재원의 막대한 누수 현상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며 “영수증을 발급할 여건이 못 되는 지하경제는 생존하기 힘들게 돼 건강하고 투명한 유통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첨률은 더 높게, 발급 절차는 더 쉽게, 발급 범위는 더 넓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소득 자영업자 탈루율 48%

이와 관련 국세청 전자세원과 권승욱 사무관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 일부 학계에서 영수증 복권제 재도입 논의가 있는 것은 안다”며 “하지만 복권제는 신용카드·영수증 발급 제도 도입초기에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영수증은 이제 초등학생들도 다 알만큼 정착됐다”며 “영수증 복권제를 다시 시행하려면 국회에서 세법이 제정·개정 돼야하고 기본적으로 국가 예산이 나가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율은 48%에 달한다. 자영업자의 조세 탈루 규모는 연간 40조원으로 추정(한국조세연구원)된다.

1187호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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