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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투자부터 상영까지 CJ가 영화판 좌지우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시장 포식자 CJ 

박미소·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이재현 회장 동생도 영화 투자업 뛰어들어 … 5월에 모태펀드 1차 운용사로 선정돼

▎서울 영등포CGV 상영관에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CJ그룹은 영화를 기획·투자·제작해 전국 상영관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CJ의 상영관에 직접 배급한다. 극장에서 내린 영화는 CJ의 유선방송을 통해, CJ가 소유한 영화·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 다시 방영된다. 영화판과 케이블방송 업계에선 “CJ가 다 해먹는다”는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질시가 아니라 생존이 달린 절규다. CJ가 어떻게 무소불위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권력이 됐는지, 실태와 폐해를 취재했다.


제일제당에서 CJ로 이름을 바꾼 2002년. CJ그룹은 4대 미래 핵심사업을 발표했다. 생명공학·식품&식품서비스·신유통, 그리고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 특히 미디어·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애착은 남달랐다. 그는 1995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할 때부터 CJ의 미래를 이끌 엔진으로 미디어·엔터테인먼트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CJ는 영화·음악·드라마·게임 등 다양한 콘텐트 제작은 물론 유통과 투자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시장 강자로 부상했다. 영화 시장에서 CJ는 투자·제작·배급·상영이란 전체 가치사슬을 장악하며 수년 채 시장 1위를 달린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극장 CGV의 국내 관람객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43%다.

케이블 방송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다. 방송채널사업자(PP) 시장에선 tvN·Mnet·채널CGV·투니버스 등을 앞세워 케이블TV 시청 점유율 1위다. 케이블 방송을 송출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SO) 시장에서도 가입자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그룹 내에서도 알토란 사업으로 불린다.

지난해 지주회사인 CJ의 총 매출은 17조6283억원. 이 중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 매출은 3조3098억원으로 생명공학(7조2907억원)이나 식품 분야(4조5108억원)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565억원으로 생명공학(2171억원) 사업보다 높고, 신유통 부문(3036억원)에 근접한다.

“CJ가 다 해먹는다”

CJ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높은 산으로 오를수록 시장의 골은 깊어졌다. 여기저기서 독과점의 폐해를 성토한다. 케이블방송 업계에선 “CJ가 다 해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업계 관계자는 “좋은 케이블 채널은 CJ 계열이 다 차지하는데 어떻게 경쟁이 되느냐”고 했다.

CJ계열이 제작하는 방송의 선정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공개한 ‘케이블방송 제재 현황’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프로그램은 593건. 이 중 약 40%가 CJ 계열 건이다.

여기에 CJ그룹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계열사·관계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확산 중이다. 검찰은 이재현 회장이 누나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과 동생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부당 지원한 혐의를 수사 중이다. CJ가 2010년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를 인수할 때 MB 정부 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국세청은 CJ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의 핵심 계열사인 CJ E&M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영화시장에서도 CJ의 스크린 독과점은 진부한 얘기다. 지난해 말 김기덕 영화감독은 CJ가 기획·투자·배급·상영한 영화 ‘광해’에 대해 “백성의 억울함을 말하는 영화가 영화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서는 국내 영화판에 팽배하다.

1000만명 관객을 모은 광해는 또 다른 구설수에도 올랐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에서 보도자료를 냈다.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만든 모태펀드, 대기업 영화 ‘광해’에 투자’라는 제목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관리하는 모태펀드가 2010년 결성한 투자조합에 CJ엔터테인먼트가 주요 출자자로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내막은 이렇다. 모태펀드는 투자 분야에 따라 복수의 계정으로 나누고 공고를 내 각 계정을 운용할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를 모집한다. 적합한 회사를 선정해 모태펀드 운용을 맡기는 것이다. 창투사는 기간 내에 정부가 내주는 모태펀드 출자금과 민간의 투자금을 합쳐 모태펀드가 제시하는 결성 목표액을 채워야 한다.

영화 계정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자금을 출원하는데 이것을 운용한 창투사가 CJ엔터테인먼트의 투자금을 받아 영화 광해에 투자해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CJ는 정부출자금을 바탕으로 자기 자본의 이익률을 높인 셈이 아니냐는 것이다.

최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영화진흥위원회는 광해가 CJ E&M이 단독으로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중소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가 같이 제작했기 때문에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며 “CJ가 투자·제작·배급을 맡은 작품인데 중소 제작사가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출자기금을 기반으로 한 모태펀드 출자는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중소기업청은 CJ창업투자를 비롯한 8개 창투사에 징계 조치를 내렸다. 최 의원이 지적한 대로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은 창투사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또 모태펀드가 투자하는 자조합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이 유한책임투자자로 참여할 수 없다.

중기청은 CJ E&M의 출자를 받고 광해에 투자한 창투사들에 ‘주의촉구’라는 경미한 수준의 징계를 줬다. 중기청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중소 제작사가 만든 영화로 돼 있는데 CJ가 어느 정도 참여를 한 경우”라며 “법을 어겼다기보다 ‘어길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징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감사원 “정상 거래 아닌 편법 증여”

올해 1월 말, SK그룹 계열의 벤처캐피털 회사인 BMC인베스트먼트의 지분 100%를 재산커뮤니케이션즈가 인수했다.

2005년 설립된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대표가 100% 지분을 소유한 회사로 스크린 광고영업 대행을 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92억원에, 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배경에는 역시 CJ가 있었다. CGV극장의 스크린 광고영업 독점 대행권을 따내 CGV 극장이 늘어날수록 함께 성장한데다 통상 매체사용료율보다 적게 CGV에 내는 등 편의를 봐준 것이다. 감사원은 이를 두고 정상적 거래가 아닌 편법 증여라고 지적했다.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해 말 기준 300억원이 넘는 풍부한 이익잉여금으로 BMC인베스트먼트를 인수했다. 원래 공연·드라마·영화 등 문화 콘텐트 분야에 투자해온 CJ창업투자가 투자 영역을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이재현 회장의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가 해당 분야 투자를 전문으로 하던 창투사를 사들인 것을 두고 벤처캐피털 업계와 영화 업계에선 온갖 추측이 나돈다.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CJ창업투자는 수익성이 낮은 콘텐트 사업에서 발을 빼고 CJ그룹과 아무런 지분 관계가 없는 동생의 회사를 통해 영화계 투자금을 끌어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MC인베스트먼트는 사명을 산수벤처스로 바꾸고 종전처럼 문화 콘텐트 분야 투자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5월에는 모태펀드 1차 운용사로 선정돼 100억원의 출자금을 받고 영화 계정을 운용하게 됐다. 중·저예산 영화에 투자조합 결성액의 60% 이상, 독립영화에 결성액의 4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조합약정총액 2%의 관리보수에 전체 수익의 20%를 성과보수로 회사가 가져간다.

저변이 얕은 독립·저예산 영화에 투자하는 일은 의미 있지만, CJ그룹 오너 일가의 영화 투자 사업을 곱게 보기 어렵다. CJ그룹이 제작·투자·배급·상영까지 영화 사업을 수직계열화 한데다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CJ E&M은 지난해 한 해 동안 개봉한 총 175편의 한국영화 중에서 43편을 배급했다. CJ E&M이 제작한 영화는 27편이다. 지난해 극장에 걸린 상업 영화가 100편 가량이니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 셈이다. 같은 기간 한국 영화 전체 매출에서 이 회사가 차지한 비중은 무려 36.7%에 이르렀다.

제작·배급과 상영 분리 주장 나와

상영관 현황을 보면 독점 현상이 더 심각하다. CGV는 자회사인 프리머스 시네마를 흡수합병할 계획인데 합병이 끝나면 전국 116개 영화관, 898개 스크린을 보유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극장 수가 314개, 스크린 수는 2081개다. 전국 스크린의 약 43%가 CGV 것이다. 지난해 CJ가 기획하고 배급한 영화 광해가 1000만명 관객을 동원했을 때 축하 못지 않게 비판 여론이 일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영화가 전국 스크린의 절반에 걸려 “다른 영화가 상대적으로 차별 받았다”는 영화인들의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CJ E&M 측은 “초반에는 오히려 다른 영화보다 상영관이 적었다”고 해명했지만 작품 선택권을 잃은 관객들은 대기업이 독점한 영화 시장의 현실을 피부로 느껴야 했다.

방송채널이나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에 영화 판권을 판매하는 부가판권 시장에서도 CJ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CJ E&M은 자사가 제작·배급한 영화는 물론 지난해 가장 많은 작품을 배급한 회사인 쇼박스와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의 영화 부가판권 판매를 대행하는 계약을 했다.

이 3개 회사가 배급한 영화는 지난해 기준 전체 한국 영화의 75%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부가판권 시장에서 CJ가 사실상 영화 가격을 결정한다”며 “이 시장의 주요 구매자인 케이블 채널을 소유한 CJ가 판권 판매를 독점한 건 기형적인 구조”라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제작·배급과 상영을 분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1948년 미국 파라마운트 등 제작·배급·상영을 수직계열화해 운영하던 스튜디오들에 대해 미국 대법원이 독점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처럼 대기업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물론 CJ가 영화 산업에 공헌한 부분도 크다.

거대 자본이 요구되며 투자 대비 수익에 대한 리스크가 큰 산업 특성상 대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삼성·대우 등 다른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진출했다 철수하는 와중에도 CJ는 끝까지 버텼다.

영화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결국 다양성에 관한 부분이다. 영화 업계의 문제점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판’ 등을 제작한 정지영 감독은 “대기업은 흥행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기획하기 때문에 감독의 개성을 살리기 어렵다”며 “독점 체제로만 가다 보면 소수의 관객이 선호하는 작은 영화는 설 자리를 잃어 한국 영화 산업의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태펀드 자조합 모태펀드가 운용 목적에 따라 계정별로 출자금을 내는데 이것은 펀드 결성 금액의 일부분이다. 운용사로 선정된 창업투자회사가 유한책임투자자(LP)를 비롯해 외부 자금을 끌어와 목표 결성 금액의 나머지를 채운다. 이렇게 모태펀드와 외부 투자자 출자금을 합해 자조합, 즉 펀드를 결성한다.

1194호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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