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기아자동차·한국GM이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전기차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도청 지원금(800만원)이 확정된 제주도에서 첫 성적표가 나왔다. 160대를 놓고 7월 26일 예약 마감한 결과 400명이 몰렸다. BMW·닛산 등 수입차 업체도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그러나 전기차 대중화의 길은 여전히 멀다.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는 소형 모델인데도 값이 3500만~4500만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없이는 구입하기 부담스럽다. 충전시설을 비롯한 관련 인프라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전기차 시대를 먼저 열려는 제주도에서 국내 전기차 시장의 미래를 가늠해봤다.장마가 소강 상태를 보이자 이번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바다의 강한 습기를 머금은 7월 25일 제주도는 찜질방에 들어온 듯했다. 제주공항 주차장에서 르노삼성자동차의 전기차 SM3 Z.E.를 만났다. 겉모습은 가솔린 SM3와 비슷하다. 양산형 모델 생산에 앞서 1년 전 시험용으로 만든 모델이다.완전 충전 상태인 차의 계기판에는 주행가능 거리 108km가 찍혔다. 차에 타자마자 더운 숨을 몰아 쉬며 에어컨부터 켰다. 에어컨만 키고도 1분쯤 지나자 주행가능 거리 1km가 줄었다. ‘배터리 아끼려면 에어컨을 끄고 달려야 하나?’라는 생각을 접고 그대로 주행에 나섰다. 이 날씨에 에어컨을 켜지 않을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최대한 실제 상황에 가깝게 만들어 차의 성능을 살피기로 했다.가솔린 차와 비교해도 성능 손색없어일단은 무작정 도로로 나가 주행성능을 테스트했다. 일반 가솔린이나 디젤 자동차와 큰 차이가 없는 주행능력을 뽐냈다. 가속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부드럽게 치고 나갔다. 목표한 지점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속 120~140km의 가속도 무난하게 소화했다. 전기차가 힘이 없을 것이란 편견은 버려도 좋을 듯하다. 석유 연료자동차보다 뛰어난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초반 가속이 훌륭하다.정지 상태에서 초반 가속을 올릴 때 일정한 힘을 전달해 달려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속도 구간별로 다른 토크가 걸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퍼포먼스다. 소음과 진동이 전혀없어 비행기를 타고 달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달려도 매연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한 시간 반 정도 성능 테스트를 마치고 나니 본격적인 배터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어느새 주행가능 거리는 50km로 줄었다. 계기판을 살펴보니 이동한 거리는 80km 가량이다. 실제 주행가능 거리보다 조금 더 달린 셈이다. 불안한 마음에 가까운 충전소를 찾았다.제주도는 10~20km 거리 이내에는 한 개 이상의 충전시설을 갖췄다. 섬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시승한 모델은 완속 충전만 가능한 모델이다. 배터리를 가득 채우려면 6시간이 필요하다. 10월 출시 예정인 양산형 모델은 20~30분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는 급속 충전도 가능하다. 서귀포시청에서 두 시간 정도를 충전했다. 배터리는 주행가능 거리 80km 수준까지 회복했다. 직장에 출근한 다음이나 식사 때, 볼일을 보는 동안 충전할 수 있다면 실생활에서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이번에는 제주시 영평동의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로 이동했다. 산방산 근처에서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목적지까지 거리는 52km. 남은 배터리의 주행가능 거리는 72km였다. 20km 정도 여유가 있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계기판을 유심히 살피며 차를 몰았다. 전기차는 오르막에서는 평소보다 에너지를 더 사용해 배터리가 빨리 줄었다.대신 내리막에서는 충전이 되면서 오히려 주행가능거리가 늘어난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20km의 여유가 1~3km 범위에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가 높은 곳에 있어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목적지 부근에서 남은 주행가능 거리는 17km였다.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충전기가 어디에 설치 됐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10여분 정도 단지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곳곳에 오르막이 많아 배터리가 빨리 줄었다. 주행가능 거리가 10km 이내로 줄어들자 ‘언제 차가 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등에선 땀이 흘렀다. 겨우 충전기를 찾았을 때 남은 주행가능 거리는 5km였다.전기차를 시승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이동하는 거리에 필요한 전력 소모량이 얼마나 되는지와 충전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출퇴근 상황에서는 전기차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곳을 가거나, 여행을 다니기에는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이다.국내 자동차 브랜드가 일반인을 상대로 전기차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지난해 출시한 기아차 ‘레이 EV’, 10월 출시를 앞둔 르노삼성 ‘SM3 Z.E.’, 한국GM 스‘ 파크 EV’가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기차는 공공기관에 보급됐다. 주로 공무수행이나 실험용으로 사용했다. 민간을 상대로 전기차 보급에 나선 것은 국내 최초다. 전기차 구입 때 환경부에서 150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예약판매는 SM3 Z.E.가 승자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지원금을 더해 일반 소비자의 최종구매가격이 결정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지원금 규모 결정을 미루는 사이 제주도는 일찌감치 800만원의 지원금을 책정했다. 환경부와 제주도의 지원금을 더하면 3500만원에 판매되는 레이 EV를 제주도에서는 1200만원에 살 수 있다.제주도는 여기에 추가로 800만원(장비가격 400만원, 설치비 400만원) 상당의 충전시설도 지원한다. 전기차를 구입하는 도민이 원하는 위치에 충전기 한 대를 무료로 설치한다. 단, 이렇게 설치된 충전기는 모든 사람이 공용으로 사용한다.세계 전기차 선도도시를 꿈꾸는 제주도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됐다. 보름 동안 진행된 예약 판매에 4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제주도가 책정한 지원금 예산으로는 160대만 팔 수 있다. 제주도청 스마트그리드과 장철원 주무관은 “예약 접수한 사람들 중 추첨으로 160대를 우선 배정한다”며 “예산을 늘려 더 많은 사람이 전기차를 탈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이번 예약 판매 결과는 자동차 제조사에게 의미가 크다. 미래의 핵심 시장이 될 수 있는 전기차 부분에서 어떤 브랜드가 주도권을 쥘지 가늠해볼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예약 판매 기간 동안) 르노삼성·기아차·한국GM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말했다.기아차는 예약 판매 직전에 레이 EV의 가격을 4500만원에서 3500만원으로 낮췄다. 르노삼성은 SM3 ZE가 실용성 높은 준중형 차라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GM은 스파크 EV의 높은 성능을 내세웠다. 예약 마감을 이틀 앞둔 7월 24일까지는 SM3가 가장 많은 예약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도는 최종 예약 현황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제주도청 관계자는 “업체의 과도한 마케팅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 구체적인 숫자는 공개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자동차 브랜드 간 전기차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10월부터는 직접 전기차를 운전해본 사람들의 경험으로 평가를 받는다. 예약 판매보다 더 중요한 승부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에서 귀찮다고 충전기 없애점점 더 많은 자동차 업계의 이목이 제주도로 쏠린다. 업계 관계자와 자동차 브랜드가 제주도를 방문해 전기차의 가능성을 점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