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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증권 제값 받기 힘들 전망 

현대그룹 구조조정 

항만터미널 등 매각해 유동성 확보 계획 … 장부가치와 시장가격 차이 커



현대그룹이 지난해 12월 22일 유동성 확보를 위해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 부문 3개 계열사를 매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7000억~1조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증권은 그룹 내 핵심 계열사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매각을 통해 재무부담을 덜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현대상선의 항만터미널과 벌크전용선 등 사업부문 매각, 부동산·유가증권·선박 등 자산매각, 외자유치나 유상증자를 통한 자기자본 확충을 통해 총 3조30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더했다.


증권사 매물 이미 넘쳐

종합금융사업자 라이선스를 보유한 현대증권은 업계 5위의 회사지만 매각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지난 연말 우리투자증권·동양증권이 이미 매물로 나왔고 올해 하반기에는 KDB대우증권도 새 주인 찾기에 나설 예정이다.

매물이 많아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 형성됐다는 점이 현대그룹 입장에선 악재다. 최근 증권업 업황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매물로 나온 증권사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현대그룹은 금융 부문 3개 계열사의 매각 가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22%의 장부가가 5941억원(지난해 9월 기준)임을 감안했을 때 경영권 프리미엄 포함 5000억원 이상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대증권의 주가가 최근 하락해 현대상선이 가진 지분의 시장가격은 3000억원에 불과해 장부가와 차이가 난다.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한진그룹의 에스오일 지분처럼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별로 없어 시간 싸움 면에서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증권사의 한채권 전문가는 “STX그룹이나 웅진그룹도 유동성 위기 속에서 자구책을 냈지만 막상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 적정 가격을 받지못했다”며 “현대증권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도 예상 가격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NH금융이 우리투자증권을 패키지 인수하며 제시한 가격이 1조원 조금 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비교해봐도 현대그룹 금융계열사의 가격은 다소 높게 책정됐다는 것이다. 이에 현대그룹 측은 “금융 부문 예상 매각가는 채권단과 협의해 정한 것”이라며 “매각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주가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증권 매각은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금융 계열사 자산을 이전하고 매각 절차와 방법은 채권단과 협의해 진행한다.

현대증권을 인수할 만한 기업으로는 우선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HMC증권이 꼽힌다. 현대가(家)의 정통성을 잇는 건 물론 중소형 증권사인 HMC증권이 자기자본 3조원 규모의 현대증권과 합병하면 단숨에 업계 상위로 부상할 수 있다. 우리투자증권을 놓친 KB금융도 현대증권 인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KDB대우증권에 관심을 보이던 KB금융이 더 빨리 인수할 수 있는 현대증권을 눈 여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동양증권에 인수 의사를 보이던 대만의 유안타증권이 계획을 철회하며 대신 현대증권을 살펴보고 있다는 소문도 금융권에 돈다. NH농협증권 이경록 연구원은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원활하게 진행된 우리투자증권 매각과 달리 현대증권은 빠르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증권은 금융사업자 라이선스를 위해 증자하는 과정에서 실권주를 자베스펀드와 NH증권에 넘기면서 주당 인수가격보다 떨어지면 손실을 현대상선이 보전해주는 주식스왑 계약을 했다. 그 사이 주가가 떨어져(지난해 12월 30일 종가 5850원) 이미 9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 연구원은 “스왑계약은 현대증권 인수를 망설이게 만드는 불확실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함께 매물로 내놓은 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의 부실도 문제다. 현대저축은행은 2012년 8억77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현대자산운용의 2012년 영업이익은 3억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도 쉽지 않아

벌크 전용선 부문의 사업구조 조정과 항만터미널사업 지분을 매각한다는 계획은 아직 현대그룹이 정확히 어떤 부분을, 언제, 얼만큼 매각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아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트레이드증권 김민지 연구원은 “매각 예상액을 보면 장부가격을 참조해서 작성한 것 같은데 해운업계 상황이 좋지 않아 실제 시장 가격과는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24일에는 현대그룹이 보유한 유가증권 중 KB금융지주 주식 113만4944주를 처분해 약 465억원을 확보하며 자산 매각에 시동을 걸었다.

현대그룹이 내놓은 자기자본 확충 방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다. 2대 주주인 승강기 회사 쉰들러가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현대그룹이 자구책을 내놓은 뒤에도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떨어져 유상증자를 통한 목표 조달금액이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재무적으로 의지할 만한 알짜 계열사가 없는 현대상선이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머스크 등 세계 선두 해운사들은 공격적으로 서비스 경쟁에 나섰다”며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금융당국은 현대그룹이 6000억원 정도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2월까지 위기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견기업의 부실 문제가 연이어 터지고 금융당국의 대기업 관리 방침이 강화되면서 현대그룹이 채권은행 관리 하에 들어가는 ‘주채무계열’로 지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상선은 해운업 침체가 길어지며 실적이 악화되고 단기성 차입금이 급증했다. 지난해 9월 말 별도 기준 부채비율은 1214%에 달했다.

현대그룹은 자구책 발표를 통해 당장 해운업 업황이 개선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하는 한편 금융당국에도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구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번 계획을 통해 확보되는 유동성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고 현대증권·반얀트리 등의 매각 계획을 내놓는 등 현대그룹의 노력이 보였다”며 “우리 기대보다 적극적인 수준”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220호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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