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박현주 등 금융권 신규 회장단 영입 불발 … 정치권보다도 신뢰도·영향력 낮아
맥 빠진 총회. 2월 2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제53차 정기총회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추락한 위상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려던 자리는 ‘초라해진 전경련의 현실’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날 허창수(66) 전경련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국민을 풍요롭게, 경제를 활기차게’라는 슬로건을 실현하겠다. 국민과 더불어 오늘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경제활성화와 기업환경 개선, 창조산업 발굴에도 힘을 쏟을 것을 약속했다. 각종 규제개혁 등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경영 환경을 만들고,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과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사업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순조로운 분위기에서 총회가 끝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하나가 빠졌다. 허무한 분위기가 회의장에 감돌았다. 애초 예상됐던 전경련 신규 회장단 영입 발표는 없었다. 최근 전경련은 신규 회장단 선임이 절박한 상황이었다. 기존 회장단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 일에 전념하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강덕수 전 STX 회장처럼 경영상 어려움으로 더 이상 회장단 활동이 어렵게 된 총수들도 있다.전경련은 지난해 11월 14일 회장단 월례회의 직후 “경제계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30대 그룹·제조업 중심으로 꾸렸던 회장단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믿음직한 전경련으로 과거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회장단 가입 자격을 종전 30대 그룹 총수에서 50대 그룹 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영입전을 펼쳤다.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올 1월 11일 전경련은 YG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 등을 포함한 54개 회원사를 추가로 받아 외연을 넓혔다. 기세를 몰아 1년에 한번 열리는 2월 정기총회에서는 신규 회장단 선임에 관한 안건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총회 내내 신규 회장단 선임에 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던 셈이다. 이로써 전경련은 내년 2월 총회 때까지 신규 회장단의 영입 없이 현행 체제로 운영된다. 사퇴의사를 밝힌 박용만 회장과 활동이 어려운 현재현 회장, 강덕수 전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에 이름만 올려둔 상태로 유지된다. 정준양 부회장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 내정자로 교체될 예정이다.
허창수 회장이 직접 영입 나섰다지만 …지난해 11월 전경련이 회장단 영입을 선언한 이후 관련 업계에는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다. 전경련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총 7~8개의 기업이 전경련 회장단 영입 물망에 올랐다”고 말했다.이 관계자에 따르면 부영·영풍·미래에셋·대성·교보생명·화이트진로·태영·아모레퍼시픽 등이 영입 후보였다. 전경련은 현 회장단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 후보를 2명으로 압축했다.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다. 제조업 중심의 전경련으로써는 금융권을 상징하는 두 기업 회장의 합류가 큰 힘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박 회장과 신 회장은 전경련의 영입 제안에 처음에는 다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안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영입은 허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의 주도로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미래에셋의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 측에서 공식적으로 영입 의사를 밝힌 것은 없다”며 “만약 박현주 회장에게 직접 제안을 했더라도 현재 국내외에 챙겨야 할 사업들이 많아 고사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교보생명 관계자 역시 “회사 측으로 공식 영입 요청이 들어온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전경련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신규 회장단 선입을 검토한 것은 맞다”면서도 “어떤 후보 중에 누가 추려졌고, 실제 영입 제안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식으로 영입 제안을 했는지는 조직 수뇌부만 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원래 신규 회장단 선임은 현임 전경련 회장 임기가 끝나는 임기총회(2015년 2월 예정)에서 주로 논의한다”며 “그때까지 계속해 신규 회장단 영입을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소문만 무성했던 전경련의 신규 회장단 영입은 불발로 끝났다. 이를 두고 “전경련의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말이 나온다. 전경련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등 국가의 크고 작은 이벤트 성사를 주도하며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는 갈수록 그 위상이 흔들렸다. ‘재벌과 회원사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보수단체’라는 불명예 꼬리표까지 붙었다.동아시아연구원의 ‘파워 조직 영향력·신뢰도’ 조사 순위도 하락했다. 2005년 9위에서 지난해 15위까지 떨어졌다. 지난해부터는 정당보다도 순위가 낮아졌다. 위기의식을 느낀 전경련은 변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기업경영헌장을 발표하는 등 윤리경영의 중요성도 강조한다.전경련의 노력에도,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수년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참석률이 절반을 넘긴 경우는 손에 꼽는다. 반쪽자리 회장단 회의라는 오명을 얻었다. 2월 20일 정기총회에는 회원사 총수 등 350명이 모였다. 회장단 중에는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만 참석했다. 전경련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