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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지방선거 앞두고 표 떨어질라 

김태윤 기자의 경제가 기가 막혀 | 45년 미루고 또 무산된 종교인 과세 

여야, 종교인 과세법안 처리 또 미뤄, 외국은 일반인과 똑같이 세금 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어떤 정부도 관철하지 못한 ‘종교인 과세’가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야합으로 또 다시 좌초됐다. 종교단체로부터 사‘ 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종교인 과세 법안 통과를 추진한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허탈한 표정이다.

2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정부가 수정 제출한 종교인 과세법안 처리를 추후에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종교계와 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다.

‘사탄’ 소리 들으며 추진한 기재부 허탈

목사·승려·신부 등 성직자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한국뿐이다. 법이 정한 것도 아니다. 어떤 법에도 성직자 비과세 조항은 없다. 그런데도 자진 납부하는 일부 종교인들을 제외하곤 세금을 걷지 않는다.

매월 급여 형태로 받는 사례금(사실상의 근로소득)이나 퇴직금, 전별금, 업무 추진비 등에도 세금이 붙지 않는다. 종교단체 소유 부동산 중 종교사업에 사용하던 자산을 양도할 때는 양도세가 면제된다. 취·등록세도 비과세다. 재산세도, 종합토지세도 면제다.

납세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38조는 차치하더라도, 조세는 법률에 근거한다는 조세법률주의,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에도 맞지 않는다. 소득세법 12조(비과세 소득)와 13조(세액의 감면)에도 종교인에 대한 면제 조항은 없다. 우리나라 법은 비과세 항목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비과세 열거주의다. 국세청은 법적 근거도 없이 종교인 세금 부과를 방기해 왔다. 무법의 성역이다.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처음 이 문제를 공론화한 후, 45년 간 종교인 과세는 뜨거운 감자였다. 종교계는 종교의 자유와 위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정치인들은 그 성역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1990년 대 중반 천주교가 자신 납세를 천명했지만 전체 종교계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도 종교인 과세를 추진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2015년부터 종교인의 소득을 사례금의 일종으로 보아 ‘기타 소득’으로 과세하고 종교인 소득에 대해 80%의 필요경비를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전국 교직자 수는 약 38만명. 이 중 정부가 추정하는 과세 대상 인원은 7만6000명이다.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항목을 정한 것은 성직자의 종교활동을 ‘근로’로 보는 것에 반발하는 종교계를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성직자·교직자는 근로자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라고 규정한다.

판례도 있다. 2010년 말 교회 전도사가 교회 체육관 내부 공사를 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 지난해 5월 춘천지방법원은 ‘교회 측으로부터 근로의 대가로 매월 정기·고정적인 급여를 지급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종‘ 속적 관계에서 교회에 상시 근로를 제공한 만큼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일부 종교계 반대는 거셌다. 2월 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목회자납세대책위원회(위원장 라계동 목사)는 ‘종교인 과세가 종교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확정했다. 낙선운동을 들고 나온 단체도 등장했다. 한국기독교시민연합은 2월 11일 “이번 임시국회에서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정당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에서 종교인 과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당에 대해서 1000만 기독교인들이 낙선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정치인들의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80% 필요 경비 인정한데도 일부 종교단체 크게 반발

지난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 안은 종교인 소득의 80%를 필요경비(수입을 얻기 위해 지출된 경비로 공제 대상)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일반 근로소득자에 비해 세부담이 적다. 가령, 연봉이 1억원인 근로소득자는 연간 741만원의 소득세를 부담하지만, 종교인은 115만원만 내면 된다(2011년 말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신고 기준).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말 국회에서 막혔다.

국회 기재위는 과세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소득항목, 과세방식 등 과세 인프라가 부족하고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2월 임시국회로 이 문제를 넘겼다. 정부는 애초 법안보다 후퇴한 개정안을 다시 마련했다. ‘기타소득’으로 하려던 항목 이름을 ‘종교인 소득’으로 바꾸고,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세율(과세표준의 6∼38%)을 적용하는 한편, 소득공제도 인정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예상대로(?) 2월 임시국회 처리는 또 무산됐다. 일반 여론이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결정이다. 김낙희 기재부 세제 실장은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일부 단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정부의 이번 안에 (종교계가) 동의를 했다”고 밝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최근 개신교·불교·천주교·무종교인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85.0%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했다. 기재부는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종교인 과세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의 벽을 넘을지 미지수다.

종교인 과세가 또다시 미뤄진 이유는 종교인 소득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미흡한 과세 인프라를 정비하지 않은 채 민감한 문제를 꺼내든 정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종교계 반발에 막혀, 더 정확히 말하면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국회의원들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대목을 소개한다. 지난해 12월 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소위원회 제3차 회의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 : “10년 전 토론회에 가서 (종교인) 과세를 주장했다가 며칠 동안 종교인들 전화 등쌀에 시달려서 굉장히 아주 혼쭐이 났는데 그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기타소득으로 과세를 해보고 정착이 되면 또 점

진적으로….”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 : “결국은 이것(종교인 과세)을 도입하게 되면 욕은 현 정부가 먹습니다, 종교단체로부터, 내년 (지방) 선거 앞두고 말이에요. 굉장히 큰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아직까지 반대하는 사람(종교인)들이 많아요. 제가 볼 때는 파장을 줄이려면 자진납세 하겠다고 신고하는 종단부터 과세하는 게 훨씬 좋아요.”


회의록을 보면, 여러 기재위 소속 의원들은 종교인 과세 도입에 찬성했다. 일단 도입한 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고쳐가면 정착될 것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또한 그동안 많은 종교인과 단체가 과세에 찬성 입장을 밝혔었다. 하지만, ‘종교 탄압’ ‘낙선 운동’을 거론한 일부 대형 종교단체의 반발에 못 이겨,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손해를 입을까봐, 정치인들은 종교계를 ‘세금이 없는 무법의 성역’으로 방치했다. 그렇게 45년이 흘렀다. 기가 막힌다.

1226호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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