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준(김수현)에게 고백 했다가 거절당한 천송이(전지현)는 밤새 술을 마신 뒤 다음 날 아침 숙취로 괴로워한다. 두통과 갈증을 호소하던 천송이는 몸을 움직여 냉장고 앞으로 간 뒤 탄산수(스파클링 워터) 제조 버튼을 누른다. 한 잔 가득 들이킨 천송이는 한결 나아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큰 인기를 끌고 최근 종연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이다. 방송에 한참 동안 출연한 이 냉장고는 삼성전자의 지펠 스파클링 냉장고다. 탄산수가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을 홍보하는 PPL(간접광고)이다.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탄산수 제조 기능을 탑재한 냉장고를 출시했다. 버튼만 누르면 정수된 물이 바로 탄산수로 바뀐다. 탄산가스 실린더 1개(약 2만4000원)당 224병(330㎖)의 탄산수를 만들 수 있다. 탄산 기술 업계 세계 1위인 소다스트림의 실린더를 차용했다. 취향에 따라 탄산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인기 여전한 프리미엄 생수이보다 한 달 앞서 LG전자는 얼음정수기를 냉장고에 삽입한 디오스 정수기 냉장고를 내놨다. 3단계 안심필터와 스테인리스 저수 탱크까지 적용해 일반 정수기에 전혀 뒤지지 않는 성능을 구현했다. 냉동실을 열지 않고 최대 17잔까지 얼음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일반 정수기처럼 헬스케어 매니저가 방문해 정수기를 관리해주는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주방을 더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에 정수기 냉장고는 출시 이후 매달 1000대 이상 팔려나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백색가전 분야 세계 1~2위를 다투는 두 회사는 지난해 초까지 세계 최대 용량을 두고 한판승부를 벌였다. 이번에는 정수와 탄산수로 갈라져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물 맛이 좋다며 시음회까지 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가 “LG전자 제품은 매달 2만원 가량의 정수기 관리비용을 따로 지출해야 한다”고 하자, LG전자 측은 “20만원 정도면 탄산수 제조기를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100만원 가량을 더 내고 탄산수 냉장고를 구입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두 제품은 300만~400만원대의 비싼 가격에 유지관리비까지 추가돼 부담이 크지만 미래형 냉장고를 미리 경험한다는 장점에 판매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물이 냉장고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날이 머지 않은 듯 보인다.‘최고의 건강관리 비결은 물’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다. 사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물은 상품으로 취급 받지 못했다. ‘물을 사먹는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딜 가든 물 한잔 얻어 먹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목이 마르면 운동장 수돗가에서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아버지와 함께 물통을 들고 뒷산 약수터를 오르내리던 모습도 흔한 장면이었다. 이런 모습은 이제 사실상 추억이 됐다. 수돗물을 포함해 집 밖에서 마시는 물에 대한 불신이 커진 때문이다. 수돗물을 끓여서 먹는 집도 찾아보기 어렵다. 집집마다 정수기가 주방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대형마트에서 페트병에 담긴 생수는 장보기 1번 품목이 됐다.가장 분주해진 곳은 생수 업계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생수는 지난해 음료시장에서 두유를 제치고 처음으로 매출 2위에 올라섰다. 2000년 전체 음료 매출의 7.1%를 차지한 생수는 2005년 9.8%, 2010년 15.7%로 꾸준히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지난해 19.8%를 기록해 과즙음료에 이어 2위가 됐다. 성장세를 감안하면 올해 무난히 20%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562억원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 역시 4배 가까이로 커져 올해 6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생수를 판매하는 회사만 국내에 100곳(외국기업 포함)이 넘는다.지금까지 국내 생수시장의 주인공은 ‘삼다수’였다. 1998년 첫 선을 보인 삼다수는 출시 6개월 만에 1위에 올라서 15년 동안 단 한번도 선두를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농심에서 제주도개발공사와 광동제약으로 판매사가 바뀌면서 잠시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40%대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하지만 아이시스·DMZ 등의 브랜드로 10%대 후반의 점유율을 가진 롯데칠성음료가 ‘아이시스 8.0’으로 브랜드를 단일화하고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섰다. 삼다수를 광동제약에 내준 농심도 지난해 출시한 ‘백산수’의 생산시설을 늘리며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더 좋은 물’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천연 암반수, 해양 심층수 등 프리미엄 생수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국산보다 2배 이상 비싼 수입 생수가 그 중심에 서 있다. 2009년 662만9000달러였던 생수 수입금액(탄산수 포함)은 지난해 큰 폭으로 늘어 약 25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지난해 수입량은 6만8871t으로 연간 110만t 규모인 국내 생수시장에서 점유율 5%를 넘어섰다.에비앙과 볼빅 등 수입 생수는 국내 제품보다 일반적으로 2~3배 이상 비싸게 팔리지만 정수기 물보다 깨끗하다는 인식에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페리에 등 탄산수의 인기도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수입 생수 배달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업체 강낭콩워터의 지난해 매출은 2012년에 비해 2배로 늘었다. 김응섭 대표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 등 물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물의 소비 패턴이 점점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정수기 업계는 소형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물맛이나 위생 등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정수기를 탑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업계는 정수기도 크기와 부피를 줄여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수기를 주방 인테리어의 하나로 여기는 주부가 늘어난 때문이다.
정수기 업계는 ‘소형화’ 경쟁40%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코웨이가 2012년 ‘한뼘 정수기(가로 18㎝, 세로 37.5㎝)’를 출시하며 소형화 경쟁이 시작됐다. 한뼘 정수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업계 3위인 동양매직은 10억원을 들여 ‘나노미니 정수기(가로 17.5㎝, 세로 43.4㎝)’를 개발했고, 지난해 10월 시장에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이에 코웨이는 11월 동양매직이 한뼘 정수기의 디자인을 무단 도용했다며 디자인권 침해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견제 차원’이란 분석이 많지만 법원이 코웨이의 손을 들어줄 경우 동양매직은 ‘나노미니 정수기’를 판매할 수 없게 된다. 청호나이스 등 나머지 업체들도 소형 정수기 개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 일단 두 회사의 소송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건강한 물’을 소재로 삼은 이색상품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프랑스 ‘페리에’로 시작된 탄산수 열풍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탄산수는 생선 비린내를 제거하거나 고기를 삶을 때 육질을 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체내 미네랄 균형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피부탄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먹는 탄산수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한 탄산수 제조기도 인기를 끌고 있다.대표주자는 소다스트림이다. 삼성전자가 냉장고에 탑재한 브랜드다. 소다스트림이 지난해 5월 국내에 출시한 ‘소스’가 효자 노릇을 했다. 황의경 밀텍산업 사장은 “별도의 전기나 배터리 없이도 5초 만에 탄산수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며 “기호에 맞게 레몬이나 라임 등 천연시럽을 넣으면 탄산음료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다스트림 제품을 수입·판매하는 밀텍산업의 매출은 2011년 17억원에서 2012년 84억원, 2013년 약 4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코코넛워터, 자작나무 수액 등 이색 물 제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코코넛워터는 지난해 여름 이온음료 대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열대 지방 코코넛 안에 고여있는 즙으로 만든 음료다. 칼로리가 낮고, 당분과 나트륨 함유량이 적은 반면 칼륨은 많이 들어 있다. 2012년 국내에 상륙한 ‘비타코코’는 이미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이다. 마돈나가 즐겨 마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비타코코를 만드는 태국 기업 테이스트 너바나는 2년 만에 글로벌 생산량 2000만개를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하이트진로는 핀란드에서 천연 건강음료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자작나무 수액 ‘노르딕 코이뷰’를 수입해 지난해 9월 출시했다. 노르딕 코이뷰는 핀란드산 유기농 자작나무 수액으로 자작나무는 국내에서 자일리톨 껌의 원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백화점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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