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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삼성·현대차 노리는 한전 본사 강남 땅 - 주변 개발 따라 10조원 값어치? 

코엑스·종합운동장과 묶어 복합개발 … 교통·숙박 여건 좋고 100층 이상 초고층 들어설 수도 




한국전력공사가 7월 17일 이사회를 열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부지(7만9342㎡)를 최고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공개 입찰을 해서 가장 비싼 가격을 써 낸 후보자에게 팔겠다는 뜻이다. 입찰 자격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컨소시엄이든 모두 가능하다.

경쟁을 유도해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2017년까지 14조원의 부채를 줄여야 하는 한전으로서는 매각 대금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야 하는 입장이다. 한전은 조만간 가격을 매길 감정평가사를 선정하고 9월 중 입찰 공고를 낼 계획이다. 매각 시한은 연말까지다.

1986년 11월 한전이 이곳에 본사를 들였을 때만 해도 이 땅은 그저 그런 땅이었다. 한전이 이곳 저곳을 떠돌다 제대로 된 본사 사옥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 그 정도였다. 삼성동이 국내 최대 상업·업무지구로 개발되기 전이어서 주변에 건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약 30년이 흐른 지금 이 땅은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핵심인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변신했다.

혁신도시특별법에 따라 올 11월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기는 한전이 이 땅을 매각하기로 하면서다. 본사 이전이 결정된 건 2005년이었지만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이 2011년 자체 개발을 추진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13년 ‘제 2의 용산사태’를 우려한 국토해양부가 자체 개발을 금지하면서 매각으로 되돌아갔다.

그저 그런 땅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주인이 손을 털자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이번엔 기업들이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건 현대차그룹이다. 한전이 매각 방식을 결정하자 현대차는 이날 곧바로 “한전 본사 부지를 매입해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을 이쪽으로 옮기고 자동차 출고센터, 박물관, 전시장 등을 입주시켜 현대자동차그룹을 통합관리할 컨트롤타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호텔, 켄벤션센터, 공연장 등을 포함시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서울 뚝섬에 110층짜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서울시의 초고층 건축 관리기준 때문에 무산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삼성그룹도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힌다. 삼성물산은 2009년 포스코와 함께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2011년에는 삼성생명이 한전 부지 맞은편에 있는 한국감정원 부지를 매입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해외에선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녹지그룹, 미국 카지노회사 샌즈 등 3~4개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부지의 장부 가액은 2조73억원, 시장의 평가액은 약 3조~4조원선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 5조원 가까이로 몸값이 뛸 수도 있다”며 “가치만 놓고 본다면 여러 기업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고 말했다.

한전 땅은 일단 부지의 크기가 적당하다. 현대차는 오래 전부터 곳곳에 분산된 주요 계열사를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원하고 있었다. 다만 공간을 못 찾고 있었다. 괜찮은 부지는 규제에 걸리거나 외곽에 있었다. 한전 부지는 축구장 12개 크기다. 서초동 삼성타운이나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의 3배 정도다. 삼성 역시 부지 매입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삼성타운을 건설할 수 있다. 부지가 너무 커도 곤란하다. 특정 기업이 혼자 사업을 진행하는데 무리가 생기고, 특혜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입지 역시 탁월하다. 서울 중심부인 강남에서 대규모 개발이 가능한 마지막 땅이다. 바로 옆에 코엑스가 있고, 주변에 인터콘티넨탈호텔 등 숙박시설도 많은 편이다. 탄천 건너편엔 개발 예정인 잠실종합운동장이 있어 종합 계획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 ‘잘 활용하면 10조원 이상의 가치를 할 것’이란 평가까지 나오는 이유다.

교통 여건도 매력적이다. 서울의 핵심 간선도로인 올림픽대로·동부간선도로 접근성이 뛰어나고 강남을 관통하는 테헤란로·영동대로와도 곧바로 연결된다. 코엑스 내에 한국도심공항도 있다. 현대차가 GBC를 설립하면 대규모 해외 행사를 국내에 유치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한 해 동안 대리점·딜러 초청행사, 고객 및 언론 초청행사 등 현대차가 해외에서 진행한 270여회 행사에 참석한 연인원은 2만8000명(기아차 2만명 제외)을 웃돌았다”며 “본사가 한국인데도 숙박·컨벤션·관광·쇼핑 등을 일괄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어 불가피하게 해외에서 열린 만큼 GBC를 설립하면 이들을 국내로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적률 문제도 해결될 전망이다. 현재 이 땅의 95%는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설정돼 있어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의 비율) 제한이 300% 밖에 안 된다. 5%만 일반상업지역(용적률 300~1300%)이다. 용도 변경이 불가능하다면 기업이 굳이 이 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조만간 이 부지의 용도를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꿀 계획이다.

서울시는 4월 1일 코엑스·한전·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약 72만㎡를 서울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공간인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전 부지 중 1만5000㎡는 컨벤션과 국제 업무시설, 관광·숙박시설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평가액 3조~4조원, 매각가 5조원 이를 수도

현대차나 삼성이 개발하려는 목적과 맞아 떨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계획에 따라 이 지역의 토지 용도를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꾸고, 기부채납 비율은 40% 정도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채납 비율이 마지막 변수긴 한데 서울시가 민간소유인 한전과 한국감정원 부지에 대해서는 ‘사전협상제도’를 활용할 계획이어서 협상의 여지는 충분하다.

사전협상제도는 시가 큰 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민간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요청하면 사전 협상을 통해 세부 개발 계획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잘 활용하면 의외로 좋은 제도라는 설명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한 공익적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제도지만 계획을 다 세워놓고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것보다 미리 대화를 하는 게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고 변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낫다”고 설명했다.

또 한전 부지는 도시기본계획상 도심 지역에 속한다. 높이 관리기준이 엄격한 다른 지역과 달리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서울시가 허가할 가능성도 크다. 박원순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국제교류 복합지구’ 조성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점도 호재다. 이래저래 한전 부지의 몸값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1247호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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