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1996년 개봉한 영화 . 미국 해병대 장군 프란시스 허멜(에드 해리스)은 극비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부하들에게 국가가 응분의 보상을 해달라고 호소한다. 부하들을 사랑하는 상관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허나 그렇게 되면 극비 작전의 실체가 공개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허멜의 호소를 묵살한다. 이에 분노한 허멜은 뜻을 같이하는 해병대 부하들을 규합해 정부와 맞장 뜰 계획을 세운다. 우선 과거 30년 간 교도소로 악명 높았던 알카트라즈 섬을 장악하고 여기에 치명적인 생화학 가스가 장착된 미사일을 설치한다. 허멜은 정부의 보상이 즉각 시행되지 않으면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한다. 진짜 쏠 기세다. 당황한 미국 정부는 타협이냐 제압이냐를 놓고 대책 회의를 거듭하다가 결국 제압 쪽으로 결론을 낸다. 최정예 특공대 네이비씰이 진압을 주도하고, 여기에 FBI 생화학무기 전문가 스탠리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와 과거에 알카트라즈 탈옥에 성공한 적이 있던 신비의 인물 존 메이슨(숀 코넬리)이 긴급 투입된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허멜과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미 정부의 한판 대결, 과연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북한의 위험천만한 줄타기 허멜 장군이 구사하는 초식은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다. 과거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극한적인 신경전을 펼치면서 쓰였던 전략이다. 한마디로 벼랑 끝(Brink)에서 같이 떨어져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파식 전략이다. 동네 불량배들이 무서운 것은 그들이 무림의 절대 고수여서가 아니라, 얼마만큼 막 나갈지 짐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벼랑 끝 전술이 먹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본래 협상이라는 것이 서로 간에 밀고 당기며, 또 어르고 달래며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게임 아니던가. 그렇기에 때때로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벼랑 끝에서 반쯤 미친 척하는 것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벼랑 끝 전술로 가장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은 북한이다. 북한은 1990년대 이후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핵 협상을 하면서 궁지에 몰린다 싶으면 여지없이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우선 1993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5MW급 원자로에서 핵 연료봉을 추출하는 초강수를 둬서(1차 핵 위기), 국제사회로부터 원하는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어 2002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또 다시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2차 핵 위기)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갔다. 그 후로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 등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일삼으면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게임이론 관점에서 볼 때 제 정신인 사람이 벼랑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하면 먹히지 않는다. ‘신빙성 없는 위협(Incredible threat)’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뭔가 다르다. 불확실성과 비합리성을 적절히 배합해 가며 자신의 위협을 그럴 듯하게 만들고 있다. 아시안 게임에 선수단과 (미녀) 응원단을 보내면서 동시에 미사일 실험을 하는 식이다. 무슨 짓을 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볼 때, 북한을 가히 벼랑 끝 전술의 달인(達人)으로 인정할 만하다. 회사에서도 연봉을 올려달라거나 요직으로 옮겨 달라고 상사나 인사부서와 담판을 시도하는 대범한 사람들이 있다. 여차하면 사표를 던지거나 상사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위협과 함께.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한다. 벼랑 끝 전술은 상대방에게 여차하면 진짜 벼랑에서 떨어질 거라는 독한 확신, 그리고 떨어져도 혼자 곱게 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섬뜩한 공포를 줄 수 있어야 통한다. 그런데 당신이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갈지도 모르고 상사의 비리라는 것도 실상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어줍잖게 벼랑 끝 전술을 시도했다가는 대개 명분도 실리도 잃고 요주의 ‘관심 사원’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벼랑 끝 전술을 쓸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어느 순간 약발이 급격히 떨어질 때가 온다는 점이다. 철없던 시절에 나이키 신발이나 소니 워크맨을 사달라고 생떼를 쓰다가 여의치 않으면 단식에 돌입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 두 끼만 거르면 나이키든 소니든 둘 중 하나는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 끼를 굶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가 온다. 그 때는 친부모가 맞는지를 의심해 봤자 소용없다. 미련없이 벼랑 끝 전술을 접고 다시 착한 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그동안 북한은 벼랑 끝 전술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마이너스이다. 반복되는 벼랑 끝 전술로 인해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미국과 한국의 대(對)북한 정책을 강경 모드로 선회하게 만들었다. 특히 벼랑 끝 전술이 가져다 주는 일시적인 단맛에 홀려 자생력을 키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은 북한 입장에서 가장 뼈아픈 패착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입장을 바꿔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자. 정답은 딱 하나 있다. 절대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한번 말리면 그야말로 늪이다. 우선은 내가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상대에게 확실히 인지시키고 그 이상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라. 그 다음은 아무리 야단법석이 나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아야 한다. 가끔씩은 그로 인해 생채기가 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이득을 생각해 본다면 그쯤은 감내해야 한다. 테러리스트와는 절대로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의 전략적 일관성이 장기적으로 빛을 발하는 이유이다. 한번 말리면 그야말로 끝장 자, 다시 영화 이야기. 미국 정부가 특공대를 투입하는 순간 허멜 장군의 벼랑 끝 전술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샌프란시스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행동에 실망한 허멜 장군도 홧김에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지만 곧 패배를 인정하고 미련없이 발사 취소 버튼을 누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할리우드의 교본을 충실히 따른다. 돈에 눈 먼 부하들의 배신, 허멜 장군의 안타까운 죽음, 굿스피드와 메이슨의 영웅적인 활약, 그리고 다시 찾아온 평화 등등. 영화의 배경이 된 알카트라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만(灣)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돌섬이다(알카트라즈는 스페인어로 펠리컨이라는 뜻). 사방이 높이 40여m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영화 제목처럼 ‘더 록(The Rock)’이라고 불린다. 남북전쟁 당시에는 연방정부의 요새로 사용됐다. 1933~1963년까지는 알 카포네 등 흉악범을 수감한 연방감옥으로 쓰였다고 한다. 주변의 조류가 매우 빠르고 수온이 낮아 탈옥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어 페리를 타고 둘러볼 수 있는데 알 카포네가 감금됐던 독방도 볼 수 있다. 희망자에 한해 30초 동안 독방 체험도 시켜준다는데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