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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이자 1% 시대, 내 돈은 어디로 - 은행에 돈 맡기느니 개인 금고에 보관 

실질 금리는 사실상 ‘0%’ 돌입 … 가계·기업·금융권 지각변동 

은행 예금 금리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이자 1% 시대가 현실화됐다. 이자소득세와 물가를 감안하면 이미 제로금리 시대다. 변동 금 리 대출자는 웃고 있지만 이자로 먹고 사는 은퇴자는 근심이 가득하다. 쥐꼬리 만한 이자를 받으려고 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세원 이 노출되면 오히려 손해라고 여긴다.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아예 현금을 묻어두는 거액자산가도 적지 않다.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구조조정 공포가 가득한 금융권도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1%대 초저금리 시대의 사회·경제 변화상을 짚어보고, 투자 전략도 알아봤다. 국내외 금리 전망과 앞서 제로금리를 경험한 다른 나라의 투자 패턴도 취재했다.


기자의 어머니가 기자 나이 때인 1980년대 말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연 15% 안팎이었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저축을 했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아버지가 송금한 돈도 꼬박꼬박 은행에 맡겼다. 아끼고 아껴 저축한 돈은 복리가 붙어 불어 갔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집을 샀다. 저축은 가난을 딛는 사다리였다.

신문에 ‘저금리 시대’ 기획기사가 본격 등장한 1990년대 말에도 국내 은행 평균 예금 금리는 10% 안팎이었다. 금리 인하 여파로 재테크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엔 4~5%대로 떨어졌다. 그래도 1억원을 은행에 맡기면 1년 후 세금을 떼고도 450만원 안팎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저축만 열심히 해도잘 살 수 있는 시절이었다.

좋은 시절은 끝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 없었다. 2008년 5.7%였던 국내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이듬해 3.3%로 떨어졌다. 지난해는 사상 처음으로 2%대에 진입했다. 이제는 은행 이자 1% 시대가 코앞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7월 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총수신 금리(잔액 기준)는 2.09%다. 순수 저축성 예금은 2.73%로 떨어졌고, 수시 입출식 저축성 예금 금리는 0.49%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금리 통계 편제를 바꾼 199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물론 아직은 2%대 예금 상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은이 발표한 ‘7월 예금은행의 금리수준별 여수신 비중’을 보면 정기예금 상품 100개 중 95개는 금리 2%대를 보장한다. 1%대는 100개 중 4개다. 하지만 8월 말 기준으로 9월 말에 발표할 수치에는 1%대 예금 비중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8월 14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무섭게 시중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대폭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초저금리 시대를 실감할 수 있다. 2011년 정기예금 상품 중 금리 2% 이상~3% 미만 비중은 10.2%였다. 1%대는 0.4%에 불과했고, 3% 이상 이자를 주는 비중이 61.5%에 달했다. 심지어 이자 5%를 주는 상품도 있었다. 하지만 올 7월 말 기준 4%대 이자를 주는 예금은 자취를 감췄다. 3%대 상품은 0.3%에 불과하고 대부분 2% 턱걸이에 걸려있다. 이제 1억원을 금리 2%인 예금에 넣어두면 1년 후 받는 이자는 170만에 불과하다. 이자 소득세(15.4%)를 뺀 실질 금리는 1.7% 수준이다. 올 7월 물가상승률이 1.6%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가 열린 셈이다.



예금 이탈 우려에 시중은행 전전긍긍


많은 경제 주체들은 고민에 빠졌다. 대출이 많은 가계는 이자부담이 다소 줄겠지만, 전체 가계 대출의 25%에 해당하는 고정금리 대출자에겐 남 얘기다. 이자로 생활하는 은퇴자는 물론, 노후 자금 마련이 절실한 40~50대, 자산을 늘려야 하는 20~30대 모두 초저금리의 덫에 걸렸다. 기준금리가 0.25% 내리고, 예금 금리가 0.3~0.5% 내린다는 의미는 생각보다 큰 충격이다. 특히 이자가 주요 소득인 노년층에 타격이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 이자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이다. 2013년 국내 가계 이자 소득은 40조2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7% 줄었다. 이자 소득 40조원에서 예금 금리가 0.5%만 빠져도 가계 소득은 2000억원 정도 주는 셈이다.

1%대 예금 금리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파장은 만만치가 않다. 금융권은 희비가 갈린다. 사실상 예대마진으로만 먹고 사는 국내 시중은행은 예금이 빠져나갈까 전전긍긍한다. 전망은 엇갈린다. 2008년 이후 저금리 기조가 굳혀진 와중에도 은행 예금은 줄지 않았다. 한은에 따르면 2010년 827조원이던 예금은행의 총예금 잔액은 지난해 1008조원, 올 6월 말 현재는 1035조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총예금 증가율은 눈에 띄게 줄고있다. 2010년 전년 대비 17.3%, 2011년 9.8%씩 늘던 예금은 지난해 전년 대비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때문에 예금금리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2%대가 무너지고 1% 이자 시대가 고착되면 예금 이탈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아무리 금리가 낮아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으니 작은 금리나마 은행에 맡겨 두는 편이 낫다고 보는 가계가 늘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인 금고 불티나게 팔려

보험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많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고리의 이자보다 자산을 운영해 얻는 수익이 낮아지는 역마진 공포에 떨고 있다. 일본이 그랬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이자를 많이 주는 상호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 등이 내놓은 특판 상품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연일 ‘완판’ 행진이다. 0.1%라도 이자를 더 받으려는 수요는 제1·2 금융권 간 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성향도 이원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금·적금·채권·금 투자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이어지겠지만, 조금이라도 수익률이 좋은 기업어음(CP)이나 주가연계증권(ELS), 사모펀드 등으로 돈이 이동하는 조짐이 보인다. 주식·부동산 등 위험자산으로 돈이 몰릴 가능성도 크다. 또한 저금리 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 같은 장기 투자 상품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이자가 낮으니 세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심리가 확산하면서 절세 상품은 더욱 인기를 끌 전망이다.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은 갈수록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5% 금리 시대엔 10%의 수익률을 기대했다면, 1% 금리 시대엔 3~4% 수익만 내도 과분하다는 것이다.



유동성 함정 빠져 경기 침체할 수도


현금 선호 현상도 눈에 띈다. 이자는 바닥이고, 자금을 운용할곳도 마땅치 않으니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 징후를 보이는 5만원권 환수율과 개인 금고 판매량 급증은 현금 선호 현상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만원권의 연간 환수율은 2011년 59.7%, 2012년 61.7%로 꾸준히 오르다가, 지난해 48.6%로 떨어졌다. 지난해 5만원권 발행액은 40조원을 넘었는데, 올 상반기 환수율은 28.1%로 급락했다. 발행된 5만원권 10장 중 7장이 어디선가 묻혀 있다는얘기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의 하나로 과세당국이1000만원 미만 현금 거래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된 것이 주요 요인이겠지만, 금융가에서는 5만원이 실종된 또 다른 이면엔 현금 보유가 실익이 더 크다고 보는 부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실제로 강남 지역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 중에는 은행 대여 금고에 5만원권을 쌓아두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부 PB들은 5만원권을 고객들에게 조달해 주는 서비스까지 하고 있다. 현금 상속을 문의하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는 것이 PB업계의 얘기다.

개인 금고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요즘 온라인 쇼핑몰에선 개인 금고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백화점이나 아울렛점에도 개인 금고 매장이 속속 입점하고 있다. 금고 판매점이 밀집해 있는 서울 을지로4가의 한 매장 사장은 “2~3년 전에 비해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늘었고, 문의는 몇 배 더 많다”고 전했다. 참고로, 요즘 가장 잘 팔린다는 S사의 금고 제품에는 5만권 40억원 정도를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예금 금리 1% 시대에 돌입하면서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기업의 뭉칫돈 예금을 반겨야 할 은행들이오히려 꺼리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6대 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375조원 정도다. 기준 금리 0.25%에 수천 억원이 왔다갔다 한다. 그런데 요즘 은행들은 기업 예금 받기를 반기지 않는다. 시장 금리가 워낙 낮아 기업에 줘야하는 예금 이자가 운용 이자보다 더 높은 역마진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초저금리를 활용해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기업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 실적은 12조2500억원으로 전월 대비 31% 늘었다. 이 중 회사채 규모는 11조4000억원이다. 재계에서는 회사채의 평균 금리가 올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기업들이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발행해 비싸게 빌린 부채를 갚으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기업들이 싼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직접 조달하면, 은행은 가계나 중소기업 대출에 주력하게 되고 제2금융권과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은행·저축은행·보험·증권업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예금 금리는 빠르게 대폭 내리고 대출 금리는 천천히 소폭 내리는 은행의 꼼수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8월 26일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의 예금·대출금리 담합 의혹에 대해 조사에 들어간 배경이다. 정부나 한은의 바람과 달리 예금 금리 1% 시대가 오히려 돈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다. 유동성 함정은 시장에 현금은 넘치는데, 기업의 투자와 가계 소비자 늘지 않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초저금리로 시중에 돈은 넘치는데, 정작 설비투자나 고용·소득·소비는 늘지 않는 것이다. 이자가 낮으니 소비가 늘고, 기업이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이론이 통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1%대 이자 시대는 자금의 단기 부동화를 부추기고 소비 위축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좀비 기업’ 늘어 구조조정 지연될 수도

가계 부채도 걱정이다.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에 대출 금리 하락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 부채는 더 증가할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월 중 가계 대출은 전월대비 3조1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가계 신용(부채) 잔액은 1040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완화된 8월에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예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제2금융권 대출도 증가하고 있다.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쉬워지면서 기업 투자가 늘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좀비 기업’으로 불리는 한계 기업이 연명하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기업 구조조정이 늦춰지면서 기업 부실이 심화돼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252호 (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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