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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철강업 침체 늪에서 허우적 

수출전선 먹구름에 삼성전자·현대차도 고전 …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 커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저물가 기조를 우려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 조짐이다. 한국경제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이를 잘 알고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28일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5년차 정도에 진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저성장과 낮은 금리, 내수 부진,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 약세 등 1991년 무렵이후 일본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기에 진입했다”며 “저물가 기조가 계속되면 디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 범위가 2.5~3.5%인데 3년째 하한선에 머문다는 얘기도했다.

다소 과도해 보이는 최 부총리의 이런 발언은 앞서 8월 14일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아직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디플레이션 단계에 있지 않으며,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과 대조돼 관심을 모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전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경제 수장으로서 현 상황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은, 9월 기준금리 연 2.25%로 동결

9월 12일 기준금리를 연 2.25%로 동결한 한국은행은 당분간 경제심리나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진입 논란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부진으로 10~11월 중 한은이 금리를 한 차례 더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은이 9월 4일 발표한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0.5%(잠정치)로 2012년 3분기 이후 7분기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애당초 한은은 올해 GDP 성장률을 3.8%로 예측했지만 소폭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같은기간 명목 GDP 성장률은 0.4% 감소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1.4% 오르면서 최 부총리의 말대로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 범위를 크게 밑돌았다.

가계부채는 다시 급증세다.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 시행이후 한 달 사이 7개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조원가량 늘었다. 8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2로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자료: 한국은행
제조업 체감경기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다. 환율이 계속해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원화강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데다가,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하로 유럽 자금이 국내로 들어올 여지가 커지면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생겼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1조93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더 상황이 안 좋다.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7조원 정도인데 이는 전년 동기보다 30% 감소한 수치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보통주 기준)의 17%를 차지하는 두 기업은 주식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0만원대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주가는 9월 11일 현재 119만2000원으로 내려갔다. 같은날 현대차도 21만3500원에 머물면서 지난해 10월 한때 26만원대 후반에 달했던 데 비해 하락세가 완연하다.

수출 비중이 큰 두 기업 모두 장기 하강 국면에 있는 세계 경제의 악영향에 그만큼 노출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지속적인 엔화 약세로 원화 가치가 오르면서 수출 경쟁력이 약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금융가에서는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9월 11일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67원이다.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가뜩이나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세계 시장에 가격 경쟁력을 잃고 들어간다는 것은 커다란 장애 요소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가격 인하와 마케팅 비용 과다 지출의 영향으로 휴대폰 부문에서 당분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

으로 전망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은 업종도 많다.조선업이 대표적이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에만 1조원이 넘는 영업 적자를 기록하며 창사 이후 최대위기에 처했다. 업종 특성상 해외 수출 의존도가 높지만 유럽계 선주사들로부터 수주한 물량의 계약이 유럽발 금융위기 이후잇따라 취소되는 등 몇 년째 수주 가뭄을 겪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조선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STX 그룹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채 사실상 공중분해가 됐다. 우리나라는 올 1~5월 누적 수주량에서 중국에 밀리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철강업의 끝 모를 침체도 이어지고 있다. 워런 버핏이 한동안 투자했던 포스코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의 급성장 등에 힘입어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철강 수요가 급감하고 중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포스코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12조392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3% 감소했고 포스코그룹 37개사 전체로 봐도 30조6632 억원으로 8.6%가 줄었다. 동부제철 등 다른 철강업체도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밖에 건설업 등에서도 한국 업체들은 세계 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고전 중이다.

화학업은 업황 침체에도 회복세

침체된 업종에 속한 한국 기업은 당분간 악전고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반전된 업종도 있다. 화학업이 그렇다. 해외 매출 비중이 76%에 달하는 LG화학은 지난해 전체 매출이 23조원으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4874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급증했다.

거시경제 관점에서 봐도 한국 경제가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올 8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전망은 ‘안정적’으로 각각 유지했다. 피치는 ‘한국의 거시경제 여건, 재정건전성과 대외채무구조 개선 노력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피치는 또 한국의 GDP 성장률이 올해 3.7%, 내년에는 3.9%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인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산업생산이 올 3분기에 전년보다 3.1%, 4분기에는 2.4% 각각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1253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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