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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 체질로 ‘이머징 효과’ 감감 

브라질·러시아·남아공 침체 이어져 … ‘높은 선진국 의존도’가 발목 


인도를 제외하곤 브릭스 경제에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는다. 7월 15일 브라질에서 열린 제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5개국 정상. 왼쪽부터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야구는 10명이 뛰는 스포츠다. 그러나 프로야구 1군 엔트리엔 항상 26명의 선수가 등록된다. 2군엔 더 많은 선수가 대기한다. 잘하는 선수 10명이 대표로 경기에 나서지만 이 선수들이 리그 내내 잘할 수는 없다. 부상을 당하고, 슬럼프도 겪는다. 백업 요원은 이때 필요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반짝 활약으로 팀 전체의 사기를 높이고, 주전 선수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야구를 잘하는 팀은 ‘잘하는 선수’ 10명이 모인 팀이 아니라 주전과 후보의 실력 차가 덜하고, 2군에 1군으로 올라와 깜짝쇼를 선보일 소위 ‘미치는’ 선수가 많은 팀이다.

지금 세계 경제 침체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주전 선수(선진국)의 부진이다. 그런데 위기의 팀에 활력을 불어 넣을만한 후보 선수(신흥국)도 안 보인다. 이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 보는 이유중 하나다. 브라질·인도·러시아·인도네시아 등은 20여 년 전부터 세계 경제의 새 심장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지만 여전히 후보 선수에 머물러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 번 꺼진 아궁이에 다시 불을 붙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선진국 의존도가 워낙 커 선진국 경기와의 동조화(커플링)도 심하다.

남아공은 파업 직격탄, 터키는 정치 리스크

‘남미 맹주’ 브라질의 올해 경제 성적표는 심각하다.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 -0.2%, 2분기 -0.6%로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브라질 경제가 ‘기술적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브라질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5년 만이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7월 산업 생산이 6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점을 들어 침체는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제로 성장’ 가능성까지 나온다. 브라질 유력 일간지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가 20개 컨설팅 회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올해 브라질 성장률 예상치는 0.35%에 머물렀다. 20개 회사 중 0.8%를 넘어설 것이란 본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각각 1.8%, 1.6%였던 연초 브라질 재무부와 중앙은행의 전망과 차이가 크다. 2010년 7.5%를 기록한 브라질의 성장률은 2012년 0.9%로 뚝 떨어졌다가 지난해 2.4%로 소폭 반등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다시 0% 성장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내년 전망치도 1%에 머문다. 기대했던 ‘월드컵 효과’마저 없다.

브라질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적자폭도 지난해까지 계속 늘고 있다. 올해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적자폭이 축소되리란 예상이지만 나쁜 상황을 타개할 정도는 아니다. 수익원인 원자재 가격 하락에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 중남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반전의 기회도 마땅치 않다. 성장률은 낮은데 고물가는 계속되고 있다. 브라질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약 6.5%로 정부 목표치인 4.5%를 크게 웃돌고 있다. 구매력 감소, 고용 증가세 둔화 등 고물가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다. 브라질 정부가 7~8월 두 번에 걸쳐 550억 헤알(약 25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러시아는 ‘전쟁’ 이슈와 싸우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 친러 반군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 제 2막이 열리는 판국이다. 또한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경제 제재에나서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러시아를 빠져 나오고 있다. 이 여파로 루블화 가치는 연초 대비 10% 이상 떨어졌다. 러시아 역시 자동차·소비재 수입을 줄이는 등 보복 차원의 추가 제재를 가할 계획이어서 경제 고립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올해 러시아 경제는 0%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인근 동유럽 국가 등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러시아 침체 여파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이 더 나쁠 수 있다. 유가가 더 하락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러시아는 전체 수출의 3분의 2를 원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한다.



포스트 브릭스(BRICS)로 분류된 나라들의 성적표 역시 별로 좋지 않다.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는 5년 만에 가장 낮은 분기 성장률을 발표했다. 2분기 성장률 5.12%로 전망치 5.3%와 1분기 5.21%를 모두 하회했다. 2009년 4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5.8%였던 연간 성장률은 올해 5% 초반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수출이 전년 동기대비 약 1% 감소했고, 정부 소비지출도 0.7% 줄었다. 민간 소비는 5.6% 증가했지만 외국인 투자가 줄고 있다.

그나마 선방 중인 ‘모디표’ 인도 경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파업의 직격탄을 맞았다. 연초부터 이어진 광산노동자 7만여 명의 파업으로 손실액이 약 2조원을 넘어섰다. 파업이 길어지자 세계 최대 백금 생산업체인 영국 앵글로 아메리칸은 남아공 광산 사업을 아예 접기로 했다. 이어 7월부터 금속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미국 포드, 일본 도요타 등 일부 자동차 공장이 생산을 중단했고, 철강업체와 제련소, 건축업체 등도 큰 타격을 입었다. 에볼라 발병 지역과 지리적인 거리가 먼데도 관광 수요가 크게 줄고 있는 점도 악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남아공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8%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9%에 이어 올해도 2% 전

후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2010~2011년 2년 연속 8% 이상 성장하며 비교적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은 터키는 2012년부터 성장세가 둔화됐다. 올해도 2%대에 머물 전망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원자재의 해외 수입 의존도가 높아 만성적인 상품수지 적자에 시달리는데다, 주요 무역대상인 유럽과 중동의 경기 둔화가 이어져 수출도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독재와 비리 논란에 휩싸인 에르도안 총리의 대통령 당선에 따른 정치 리스크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나마 인도가 살아나고 있다. 6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이후 오랜만에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다. 2010∼2011 회계연도 8.4% 성장률을 기록한 인도는 지난 2년 동안 성장률이 5%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침체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시점에 새 총리가 등장했고, 효과는 곧바로 나왔다.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이 인도에 20억 달러(약 2조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폴크스바겐·월마트 등도 수천억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9월 초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일본 아베 총리 역시 “인도에 대한 투자를 5년 동안 2배 이상 늘리겠다”며 대형 선물보따리를 안겼다. 모디 총리는 취임 100일 만에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이든 인도에 와서 만들어 달라”며 적극적인 외국 투자를 강조하고 나선 모디 총리는 철도 부문에서 100% 외국인직접 투자(FDI)를 허용하고, 국방과 보험 부문 FDI 상한도 26%에서 49%로 올리는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단행했다. 복잡한 세제를 단순화하고, 제조업을 키워 산업 체질을 바꾸겠다는 모디 총리의 장기 개혁 프로젝트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심리가 회복되자 지표도 개선됐다. 인도의 4~6월 성장률은 5.7%로 최근 2년 사이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을 기록했다. 증시 역시 뜨겁게 반응했다. 인도 센섹스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2만7000선을 돌파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올해 안에 3만선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

1253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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