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인간의 즐거움을 감각(senses)의 차원에서 정의한다면 오감 충족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보고(시각)·듣고(청각)·느끼고(촉각)·냄새 맡고(후각)·맛보는(미각) 과정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느낀다.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감각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시각이고 다음으로 청각일 것이다. 책·음악·영화 등 우리가 여가를 보내는 대부분의 방법은 시청각 활동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오감에서 지각변화가 감지된다. 오감 중에서도 ‘미각(味覺)을 통한 사치’가 시작되고 있다.맛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TV를 켜면 금방 알수 있다.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어느 때보다 많다. 드라마·예능 등 많은 영역에서 요리를 주된 소재로 내세우고 있다. 요리 전문 케이블 채널도 인기 상한가를 구가하고 있다. 올리브 채널은 지난해부터 ‘푸드 라이프스타일’ 전문 채널을 표방하며 다양한 음식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올 상반기 시즌3이 제작된 ‘마스터셰프 코리아’는 지원자 수가 매년 3000명이 넘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모방한 오디션 방식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외식 부문에선 디저트 열풍이 뜨겁다. 디저트는 ‘식사를 끝마치다’ 또는 ‘식탁을 치우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데제르비르(desservir)’에서 유래된 단어다. 식탁을 정리한 후에 즐기는 후식이라는 의미다. 이름에서 보듯, 원래 디저트는 즐거운 식사의 마무리 역할을 하는 조연이었다. 최근 들어 식탁의 조연에 머물러 있던 디저트가 식탁의 주연을 꿰차며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올 여름을 강타한 옥루몽이나 설빙과 같은 빙수 전문점, 커피에 식상한 소비자의 미각을 즐겁게 한 공차 브랜드 등이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서울 이태원엔 메인 메뉴보다 디저트 때문에 유명해진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인기 상한가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눈으로 음식을 즐기는 ‘푸드 스타일링’의 인기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아뮤즈 부시(Amuse Bouche)는 애피타이저가 나오기 전에 즐기는 작고 예쁜 한 입 음식이다. 주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식당을 찾아준 손님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내놓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매우 예쁘고 아름다워서 고객들의 시각적인 만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원래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로 등장하던 것이 이제는 좀 더 대중적인 레스토랑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덕분에 가정에서 음식을 즐길 때에도 맛뿐 아니라 예쁜 식기에 담아내는 등 스타일링에 신경 쓰는 주부가 늘었다.
요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직접 근사한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덕분에 일반인이 쉽게 요리하되 그 방법은 전문가가 하는 것처럼 복잡하지 않은 ‘간편한 레시피’가 인기다. 해외에선 알랭 뒤카스, 페란 아드리아 같은 세계적인 유명 셰프들이 대중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홈 쿠킹 요리책들을 잇따라 발간하고 있다. 일본에선 식품회사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회사 제품을 활용해 요리하는 방법을 요리책으로 발매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국내에서도 집에서 손쉽게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간편 제품 솔루션’이 봇물을 이룬다. 예를 들면, 단 하나의 소스만 넣으면 간편하게 요리가 완성되는 만능 소스가 인기다. 해물양념장, 찌개류 양념장 등 초보들이 쉽게 요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양념장류 신제품이 쏟아진다. 웬만한 외국 소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이마트의 수입 조미료 제품 매출은 올 상반기 전년 대비 약 35% 증가했다. 사람들이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리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추석을 맞아 애플리케이션 ‘CJ더키친’에 30여 가지의 명절요리 레시피를 선보였다. 명절 음식을 더욱 쉽고 특색 있게 요리하는 방법과 함께 푸드 스타일링에 관한 정보도 제공했다.미각 열풍이 뜨겁게 일자, 푸드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들도 미각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일본 도쿄 미드타운에 문을 연 메르세데스 스타일 샵 ‘Mercedes me’는 1층에선 관련자동차 소품을, 2층에선 음료와 식사를 판매하는 식당으로 구성했다. 이미 벤츠에선 지난해부터 도쿄와 오사카에서 ‘Mercedes-Benzonnection’이란 이름의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자동차 쇼룸에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카페와 레스토랑에 자동차가 있는 것처럼 꾸몄다. 한국에서도 이런곳이 늘었다. 삼성전자는 8월에 서울 홍대 부근에 ‘라운징 숍’을 개장하면서,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커피 브랜드 ‘폴 바셋’과 협업을 했다. 한국에서 개장을 앞둔 ‘이케아’도 매장 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멋진 가방을 사는 대신, 맛있는 것을 찾아나서는 소비자들.이들에게 미각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 고급스러움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분야다. 음식 가격이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내 지갑이 아무리 가볍다 하더라도, 1년 중 특별한 하루 정도는 근사한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몇 억원짜리자동차, 몇 천만 원짜리 시계를 구매하는 초부유층의 소비행태를 일반 대중들이 모방하기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들이 즐기는 몇 십만 원짜리 식사는 마음만 먹으면 한 번 정도 먹을 수 있다.가장 손쉬운 형태의 ‘사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멋진 가방 대신 맛있는 음식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