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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허균作 <홍길동전>의 ‘로빈후드 효과’ 

부의 재분배로 전체 부가 줄어드는 현상 고소득 기업·계층의 과세 반발 논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홍길동은 한국적 수퍼히어로다. 동에서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다. 짚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한날 한시에 팔도에 나타난다. 축지법과 둔갑술을 자유자재로 쓴다. 하늘의 구름과 바람도 부른다. 그러면서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니 서민들에게는 영웅이 안 될 수가 없다. 홍길동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도 등장한다.




로빈후드 효과란 소득불평등을 낮추기 위해 부를 재분배했지만 오히려 사회 전체의 부가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부유세와 버핏세 논란이 제기되자 보수층에서는 로빈후드 효과를 내세우며 반발했다.

홍길동은 서민의 수퍼히어로

홍길동전은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1569~1618)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홍길동은 실존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실록이 전하는 홍길동은 한자가 ‘洪吉 ’으로 소설 의 ‘洪吉童’과는 ‘동’이 다르다. 허균이 실존했던 도적 홍길동을 모델로 삼아 소설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자는 일부러 다른 한자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에는 연산군 6년(1500) 10월 22일에 영의정 한치형 등이 ‘듣건대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라고 쓰여 있다. 장관이 직접 임금에게 보고할 정도로 홍길동은 국가적인 도적이었다.

에도 홍길동에 대한 기록이 있다. ‘홍길동이라는 도적의 무리를 체포한 뒤 국문을 했다’고 돼 있다. 와 에는 홍길동이 당상관의 의장을 갖추고 있어 수령 등을 쉽게 속였다고 밝혔다. 변신술에 능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선의 실제 도적두목이 모티프지만 중국 소설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다. 이익은 에서 장길산·임꺽정과 함께 홍길동을 조선의 3대 도둑이라 칭했다.

소설 속 의 시대적 배경은 세종이다. 홍길동은 명문 가문인 이조판서 홍공과 시비 춘섬 사이에서 난 서자다. 총명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서자라는 신분을 넘어설 수 없다. 종들까지 천대하는 상황. 홍 판서의 또 다른 첩인 초란은 자객을 보내 길동을 암살하려 한다. 길동은 자객을 물리치고는 집을 나선다. 길동이 간 곳은 도적의 소굴이다. 도적의 우두머리가 된 길동은 합천 해인사를 턴다. 그는 활빈당을 만든 뒤 탐관오리들을 차례로 털기 시작한다. 둔갑술을 부려 팔도에서 동시에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니 마침내 조정까지 알려진다.

조정에서는 포도대장 이흡을 보낸다. 길동을 잡기 위해서지만 우롱만 당한다. 조정은 길동의 아버지 홍 판서와 길동의 형홍인형을 볼모로 잡는다. 홍인형을 경상감사로 임명해 직접 동생을 잡아들이라 명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그러기에 홍길동은 너무나 신출귀몰하다. 잡아본들 풀로 만든 여덟 명의 홍길동이다. 왕의 선택은 회유였다. 길동에게 병조판서직을 하사하자, 길동은 왕에게 감사하며 조선을 떠난다. 길동은 중국 남경에 있는 섬인 ‘제도’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들어간다. 그러다 낙천땅에서 요괴를 물리치는 데 이때 두 명의 여인을 구한다. 그들은 길동의 두 명의 부인이 된다. 3년 간 아버지 상을 치른 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해 왕이 된다.

홍길동이 민심을 얻는 이유는 오직 탐관오리만을 혼냈기 때문이다. 관료라면 모두가 벌벌 떨던 시절, 길동의 활약은 백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줬을 터다. 길동의 활빈당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각 읍수령의 이롭지 못한 재물을 탈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백성은 해치지 않는다. 나라에 속한 재물도 손대지 않는다.

탐관오리의 재물을 뺏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부의 강제적 재분배’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분배 받은 백성들은 마냥 행복했을까. 부를 강제적으로 재분배할때는 ‘로빈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를 조심해야 한다. 조선에 홍길동이 있다면 영국민담에는 로빈후드가 있다. 홍길동과 로빈후드는 의적이다.

로빈후드 효과란 소득불평등을 낮추기 위해 부를 재분배했지만 오히려 사회 전체의 부가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로빈후드가 지주들의 곳간을 털어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눠줬다. 소작농들은 환호했다. 다음날 화난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더 수탈했다. 곳간이 비었으니 다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로빈후드가 지주를 다시 혼내주면 어떨까? 지주들이 “못살겠다”며 아예 마을을 떠날 수 있다. 땅을 타인에게 팔고 떠나면서 소작농들은 그간 부쳤던 밭뙤기도 잃게 됐다. 로빈후드의 선한 뜻과 달리 사람들의 삶은 더 팍팍하게 됐다.

고소득층과 고소득 기업에 대해 세금을 대폭 물렸다. 여기서 걷은 돈을 복지재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소득층과 고소득 기업들이 반발했고 해외로 이전하거나 생산활동을 포기해버렸다. 이러면 국내 산업과 내수가 더 침체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부유세와 버핏세 논란이 제기되자 보수층에서는 로빈후드 효과를 내세우며 반발했다. 레퍼곡선을 보면 세율이 어느 정도 인상될 때까지는 정부의 세수입이 늘어난다. 하지만 일정 세율을 넘어서면 전체 세수입은 감소한다. 높은 세율 때문에 사람들이 근로의욕을 상실하면서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로빈후드법·로빈후드세도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고소득층에게 부담을 지우는 법을 ‘로빈후드법’, 이들에게 매기는 세금을 ‘로빈후드세’라고도 한다. 1993년 미국 텍사스에서는 공립학교를 세우기 위해 재산세법을 신설했다. 고소득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이 사는 곳에 공립학교를 지어주자는 내용이었다. 보수층은 ‘로빈후드법’이라며 반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때 ‘미국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 공약을 통해 석유회사의 과도한 수익에 세금을 매겨 그걸로 저소득층 가정에 에너지 환급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미국 정부는 월가의 금융인, 글로벌 기업, 석유회사 등에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하되 저소득층은 세금 감면을 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발표했다. ‘로빈후드세’라는 반발이 뒤따랐다.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 영화와 음악, 영상의 콘텐트를 유통시키는 바람에 관련 업계가 고사하게 되는 것도 ‘로빈후드 효과’라 부른다. 불법 콘텐트를 유통시키는 사람들은 유명 콘텐트 제작사가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만큼 해당 콘텐트를 무료로 세상에 뿌려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저작권자들의 수입을 감소시키고 결국 소프트웨어산업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1255호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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