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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의 혁신 사례 - 이름도 사업도 명성도 남김없이… 

IBM·아마존·보쉬 끝없는 시도로 위기 탈출 … 소니는 적기 놓쳐 고전 

박상주·허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sangjoo@joongang.co.kr
주요 글로벌 기업의 혁신이 눈부시다. 브랜드는 그대로인데 하는 일은 과거와 판이하다. 주력 사업과 체질을 바꿔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된 것이다.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로운 사업에서 또 한 번의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혁신에 성공한 건 아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혁신하느냐는 의사 결정에 기업의 운명이 갈리게 마련이다.
IBM - 사업·조직 모두 바꾼 혁신의 아이콘


브라질 상파울루시는 IBM 분석 데이타를 이용해 시내 교통량을 조절하고 있다. / 사진:IBM 제공
이제 IBM을 ‘컴퓨터 회사’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한때 컴퓨터 관련 정보 기기를 생산하며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로 불린 IBM. 너무 커져 버린 덩치 탓에 대형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PC)로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 컴퓨터 시장을 델·HP·컴팩 등에 내주고 말았다. 1980년대 중반 IBM 순이익은 전성기때의 3분 2로 줄었다.

주가는 바닥을 쳤다. 위기의 IBM을 일으켜 세운 것은 과감한 체질 개선이었다. 하드웨어에 집중하던 노선을 과감히 수정해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했다. 변화된 시장에 맞춰 고객이 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IBM은 컴퓨터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토털 솔루션 업체로 변신했다. 방식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었다. 소프트웨어 자산관리 업체 ‘아이소곤’ 등을 인수했다. 2007년 프린터 부문 분리에 이어 통계처리소프트웨어 ‘SPSS 데이터 솔루션’을 인수하는 등 70개 이상의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을 인수·합병했다. 1993년 당시 총매출의 27%에 불과하던 소프트웨어·서비스 사업 부문 매출 비중은 현재 82%로 커졌다.

조직 체질도 바꿨다. 전 세계에 산재한 조직을 하나로 묶어 단일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태어난 글로벌 IBM 조직은 우수한 기술력과 IT에 관련된 통합적 서비스 능력, 광범위한 고객층을 확보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와 더불어 전사적인 지식경영 인프라와 최고경영자의 사내 커뮤니케이션 강화로 각국의 조직 및 IBM 직원들에게 일체감과 소속감을 심어줬다. 이로써 IBM은 ‘서비스-컨설팅-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해 현재 17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제조기업이 20여 년 만에 세계 최대의 서비스기업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최근에는 업계 1위 소프트웨어 개발 툴 업체인 래쇼날을 인수했다. e-비즈니스 시대 통합 솔루션 서비스 회사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1997년부터 업계 최초로 e-비즈니스를 화두로 내세운 IBM은 회사의 모든 핵심역량과 인프라를 개방형 표준에 맞게 재구축했다. 제품 개발·공급 사슬·구매·생산· 고객관리·재무·인사·정보기술·자산관리 등 10개 핵심 업무 프로세스를 웹에서 재통합했다. 이를 시장과 고객 중심으로 재 설계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그 결과 IBM은 500억 달러(약 53조원)에 달하는 구매물량을 전자구매 프로세스로 바꾸고, 매출의 30%를 전자상거래로 처리한다.

아마존 - 본업 경쟁력 높이는 신사업 늘려


최근 아마존은 아마존 프레시를 통한 식품배달 사업에 나섰다. / 사진:아마존 제공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설립 20년이 지난 현재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 로 성장했다. 최근 ‘직구 열풍’을 타고 아마존을 이용하는 국내 소비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아마존은 세계 10개국 오픈마켓과 96개의 물류센터, 180여 개국 고객 대상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그야말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아마존은 창업 초기 연 평균 300%에 가까운 매출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가파른 성장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꺼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어려운 내부 사정과 달리 회원수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증했다. 오프라인 서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송·환불이 간편했던 덕이다. 2007년 6600만 명이던 회원수가 최근에는 2억 37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전자상거래 부문 매출은 610억 달러(약 64조3000억 원)로 2위인 이베이 보다 4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아마존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던 비결은 주력 사업과 연관된 신사업을 추진하는 등 꾸준히 사업 확장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2007년 출시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후에도 태블릿과 스마트 폰·TV 셋톱 박스 등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선보이며 꾸준히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 플랫폼을 확장하기 위한 신사업 진출도 계속하고 있다. 주로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신사업군에 진출한다. 지난해 1월 아마존은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인 이보나를 인수했다. 아마존은 음성 서비스를 활용해 전자책과 쇼핑 사이트에 편의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아마존은 본업인 전자상거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분야 위주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올 들어 게임업체를 인수한데 이어 유료 IPTV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온라인 콘텐트 업체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배달 영업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아마존 산하 ‘아마존 프레시’가 캘리포니아 주 일부 지역에 이어 뉴욕 브루클린에서도 온라인 판매·배송 서비스에 나섰다. 매년 99달러 연회비를 내는 회원제 프로그램에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아마존은 유통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방위로 확대하며 무한 변신 중이다.

보쉬 -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다른 길로


보쉬가 진행 중인 ‘모나코 3.0 프로젝트’. / 사진:보쉬 제공
모든 신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전자 부품 시장 강자인 독일 기업 보쉬는 신사업 진출이 오히려 독이 됐다. 2008년 진출한 태양광 사업에서 5년간 총 24억 유로 규모의 손실을 봤다. 설상가상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며 기존 자동차산업마저 불황에 빠졌다. 자동차 부문은 보쉬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해왔는데, 이 부문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보쉬는 신사업을 무리해서 끌고 가는 대신 과감히 정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통적인 자동차 부품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사업 부문이 조정되자마자 경영 효율성은 높아졌다.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 라인을 강화해나갔다.

그렇다고 혁신을 멈춘 건 아니다. 2010년 6억 유로(약 80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제조공장을 독일에 세우며 재도약을 꿈꿨다. 회사 역사상 단일 투자로는 최대 규모였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도 사업에 적극 반영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전기 자전거다. 전기 자전거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걸 변신의 타이밍으로 봤다.

보쉬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면서 쌓은 기술력을 토대로 2011년부터 전기 자전거 생산에 돌입했다. 이 사업에 연간 4억 유로(약 5400억 원)를 쏟아 부었다. 아직 완제품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자전거에 설치하면 곧바로 전기 자전거로 바뀌는 전기모터·변속기·조작장치 등을 공급하고 있다. 이미 독일 3대 전기 자전거 회사인 칼크호프·비노라·그레이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 50여 개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전기 자전거 부품 생산만으로 보쉬는 지난해 1억 유로(약 1340억 원) 규모 매출을 올렸다.

보쉬는 변신의 원동력을 연구·개발(R&D)에서 찾았다. 새로운 먹거리는 ‘사물인터넷’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센서다. 가로·세로 2.5mm에 불과한 작은 반도체가 온도와 습도·압력 등을 자체적으로 인지하고 반응해 각종 기기를 스마트하게 만들어준다. 지난해 보쉬는 10억개 이상의 MEMS 센서를 생산했다. 2012년(6억개)보다 60% 이상 성장한 것이다. 매출 기준으로 보쉬는 이미 세계 최대 센서회사다. 세계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에 보쉬의 MEMS 센서가 탑재돼 있고 앞으로 시장 전망도 밝다.

보쉬의 ‘초심 전략’은 경영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올해 1분기 인도에서 보쉬의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3% 증가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18%의 이익성장률을 기록했다. 최근 보쉬는 또 새로운 변신을 시도 중이다. 사업 부문 간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커넥티드 빌딩, 커넥티드 이동수단, 커넥티드 에너지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모나코 3.0(Monaco 3.0) 시험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전역을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기술을 시험하는 등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파나소닉 - TV사업 위기 식물공장으로 극복


파나소닉이 싱가포르에 지은 실내 야채 재배 공장. / 사진:파나소닉 제공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으로든 변신한다. 일본 마쓰시타(현 파나소닉)는 한때 플라즈마 디스 플레이 패널(PDP) TV로 세계 TV시장을 주름 잡았다. 그런 글로벌 제조업체 파나소닉이 지금은 농사를 짓는다. 공장을 밭으로 만드는 상전벽해를 시도한 것이다. 문을 닫은 일본의 공장들을 활용해 야채를 재배하는 식물공장으로 바꾸고 있다. 전자 제조를 하면서 습득한 기술력을 경작 기술에 적용한 것이다.

오랜 불황에 따른 내부역량 소진과 한국 전자제조 업체의 추격 등 급변한 대내외 상황이 변신의 이유였다. 파나소닉은 기후 변화와 경작 면적 감소, 고품질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존 전자사업 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인정하면서 변신에 들어갔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디지털카메라 공장 일부를 식물공장으로 바꾸면서부터다.

실내 야채재배에서 가능성을 확신한 파나소닉은 최근 해외 진출에도 나섰다. 지난 8월 싱가포르에서 실내 채소재배 사업을 시작했다. 싱가포르 시내 외곽 공장 건물을 개조해 발광다이오드(LED) 인공광을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우선 10종의 채소를 연간 3.6t 생산할 예정이다. 전자회사가 야채재배 회사로 변신한 동력은 뛰어난 공장 관리 능력이다. 전자제품 제조 공장의 특성상 완벽한 무균 공기조절 시스템을 가동하는 기술을 가진 것이다. 이를 통해 각종 야채를 무농약으로 재배해 고부가가치를 올릴 전망이다.

파나소닉뿐 아니라 후지쯔·도시바 등 유명 전자제품 회사도 실내 채소재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야노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일본 국내에서 100% 인공광을 이용한 식물공장 시장은 현재 34억엔(약 334억 원) 규모다. 연구소는 이 시장이 2025년에는 443억엔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태양광 방식까지 합친 식물공장 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233억엔에서 1500억엔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위기도 변화의 이유였다. 파나소닉은 2011년과 2012년 연이어 2조엔(약 19조60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 제조업 몰락의 상징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위기에 직면한 파나소닉은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TV 등을 판매하는 B2C 회사에서 시스템, 자동차 부품 등을 주력으로 하는 B2B 기업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TV제조사라는 명성은 모두 내려놨다. 대규모 적자 요인으로 지적 받던 반도체 사업은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매각할 예정이다. 지지부진하던 헬스케어 부문은 미국의 투자펀드사에 팔아버렸다.

대신 주택설비·전기설비 등의 주택분야와 자동차 내비게이션 등 부품사업으로 영역을 바꿨다. 반년 만에 실적이 개선됐다. 매출이 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996억엔(약 98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뛰어올랐다. 유럽 최대 전력 회사인 프랑스전력공사의 배전반 등 전력설비 분야 제휴를 따내기도 했다. 독일 다임러, 영국 재규어 등에 내비게이션·센서 등을 납품하며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

소니 - 때늦은 혁신, 처참한 실패


소니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 사진:중앙포토
모든 혁신 시도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변신하면서 성장이 지체된 기업도 있다. 일본 소니는 올해 56년 만에 처음으로 배당을 포기했다. 워크맨 등 기술 혁신의 아이콘이던 소니가 급격하게 쇠퇴한 것이다.

소니는 한참 잘나가던 1995년 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신사업으로 정했다. ‘글로벌 소니’를 주창하며 미국식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사업 부문은 25개 자회사로 쪼갰다. 단기 성과 평가 시스템을 강화하며 마치 미국 기업처럼 운영했다. CEO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가를 불러오는 파격도 선보였다. 하지만 현재 소니는 여전히 위태롭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PC사업은 매각했고 TV사업은 자회사로 분리했다. 새롭게 시도하던 스마트폰 사업은 올해 대폭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변신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나쁘게 나타났다.

소니는 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 문제는 변신의 방향과 타이밍이었다. 소니에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미래 성장동력이 아니었다. 세계 수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전자제품 사업을 유지하면서 점차 콘텐트 등의 소프트웨어로 주력을 전환할 생각이었다. 회사가 점진적인 변화를 선택하자 전자사업 부문 엔지니어들은 '소니는 더는 기술 회사가 아니다’라며 하나 둘 떠나버렸다. 기대했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주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위기에 봉착한 소니는 또 다른 변신을 성급하게 시도했다. 2012년 글로벌 전자회사의 명성을 되찾겠다며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시 기술 중심 회사의 명성을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이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 뒤늦게 뛰어들어 빛을 보지 못했다. 늘 한 박자 늦게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에서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 올해 소니는 2300억엔(약 2조2500억 원)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스마트폰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손실 규모는 점차 늘고 있다. 아직 사업을 접은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소니의 모바일 사업을 실패로 보고 있다.

소니는 변신의 타이밍을 놓쳤다. 다른 경쟁 기업들이 변신을 완성하고 새로운 동력을 발휘하는 레드오션에 뛰어들었다. 과거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어느 전자 제조 부문이든 성공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늘 한 발 늦으면서 이제는 주력마저 흔들리게 됐다. 소니는 자신들만 변신하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각 기업들은 이미 경쟁적으로 혁신하고 있었다. 재빨리 변신하기에 소니는 너무 큰 공룡이었다.

1259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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