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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일자리 전망은 - 대기업 취업 ‘바늘 구멍’도 막힌다 

재계·금융권 고용 한파 여전 … 선발 조건도 더 까다로워질 듯 

김유경 이코노미스트 기자 , 김성희 이코노미스트 기자 bob282@joongang.co.kr
신규 채용의 문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대졸 취업 준비생 100만명 시대에 돌입했다. 사진은 10월 28일 코엑스에서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몰린 구직자들.

신규 채용의 문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대졸 취업 준비생 100만명 시대에 돌입했다. 사진은 10월 28일 코엑스에서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몰린 구직자들.
장기 침체에 빠질 조짐인 한국 경제가 내년에는 조금 이나마 살아날까. 글로벌 경기와 내수시장 모두 조금씩 회복의 싹을 틔울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경제성장률은 올해 3% 대 중반에 머물겠지만 내년에는 4%를 달성할 수 있다고도 한다. 정부의 발표가 그렇다. 하지만 시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기업들은 내년도 올해 못지않은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과 경쟁 심화, 내수부진 등을 대비해 투자보다는 현금을 많이 쥐고 겨울잠을 자겠다는 전략 아닌 전략을 세운 기업도 적잖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에 뒤따르는 고용시장은 타격이 더욱 심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군살을 뺐지만 경기 여건 탓에 새 피는 수혈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괄목할 만한 경기회복세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가시적인 고용 확대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시장의 반응이다. 여기에 취업 재수생이 늘고 기업들의 선발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지면서 내년 취업시장은 최악의 1년을 맞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내년 취업시장 최악의 1년 전망

주요 기업들은 올해 하반기 공채를 마치고, 내년 채용 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일단 내년에 채용을 할 것인지, 채용을 한다면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 규모로 뽑을지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계에서는 내년 채용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다. 내년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정부 기대와는 달리, 국내외적인 악재가 경기를 억누를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말만 듣고 한발씩 내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단 올해 채용 인원을 내년 취업시장의 가늠자로 봤을 때 분위기는 삭막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9월 매출액 상위 300대 기업(2012년 기준)을 대상으로 올해 신규 사원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보다 줄이겠다’는 응답이 32%를 기록 했다. 지난해보다 늘리겠다는 응답은 15.1%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는 기업이 더 많아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불황에 따른 회사 경영 악화와 기존 채용인원이 과다했다는 점 등이 이유다. 나머지 52.9%는 예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곧바로 취업시장으로 이어졌다. 잡코리아 조사를 보면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응답 245개) 중에 올해 하반기에 대졸 신규 공채를 진행한 곳은 110개로 44.9%에 그쳤다. 채용 규모는 1 만 513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 6283명)보다 7.1% 줄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그룹의 경우 올해 하반기 5000~6000명의 대졸사원을 선발할 계획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2500여 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다. 경기 악화와 스마트폰 실적 부진 등의 영향으로 새 인력을 뽑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현대 차그룹도 같은 기간 3430명을 뽑아 지난해(3520명)보다 90명 정도 줄였다. LG그룹은 전년 동기보다 500명 줄인 3500명, 포스코그룹도 700명 줄인 14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1500명)·한화그룹(600명) 등 다수 기업이 신규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10% 가량 감축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4~5 년간 연구개발 부문 인력을 꾸준히 뽑아왔다”며 “현재로서는 인력이 많이 축적돼 선발 인원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취업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중소·중견기업도 내년에는 신규 채용을 3분의 1가량 줄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기가 극적으로 반전하지 않는 한 취업시장의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에 몰린 것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공채 시장의 급랭은 삼성전자 등 전산업계의 불황과 연관이 있다”며 “각 회사별로 변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채용이 상반기에는 적고, 하반기에는 많은 ‘상저하고’가 될 것이라 는 비교적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앞으로 취업시장 동향이 불투명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금융권, 구조조정 계속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내년 경제 전망을 보면, 내년 신규 고용은 45만 명에 그치며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올해보다 5 만 명 적은 수치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의 최근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10대와 40대 고용은 소폭, 50~60대 고용은 비교적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경제 핵심 인력인 20~30대 고용률이 안 좋다. 현재 30대의 고용률(74.4%)은 50대(74.7%)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20~30대 대학졸업자의 취업 한파가 전체 고용시장을 줄이고 있으며, 인력 구조조정 이후에도 신규 채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고용 증가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미흡한 경기회복세와 대외 불확실성 심화 등으로 향후 고용 증가세는 제약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황은 금융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권은 판매관리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탓에 경영이 악화되자 구조조정에 먼저 돌입했다. 물론 신규 채용은 뒷전이다. 유안타증권은 올해 1월 희망퇴직을 통해 650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대신증권은 지난 6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302명, 삼성증권도 300여 명의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한화투자증권도 올해 초 350 명을 감축했다. 대부분 증권사는 희망퇴직을 통해 인원을 줄였다. 증권사들은 “증시 침체에 따른 투자자 이탈과 거래량 감소 여파로 수익이 계속 줄면서 인력 감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61개 증권사 임직원수는 3만 7774명(6월 말 기준). 1년 만에 전체 인원의 10%에 해당하는 3913명이 회사를 떠났다.

보험과 은행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6월 희망퇴직으로 650명이 회사를 떠났다. 삼성생명은 1000명, 교보증권은 700명의 인원을 감축했다. 이와 달리 신규 채용은 은행을 제외하고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거나 조직을 통폐합시켜 슬림화 시키고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경기가 부진한 상태가 지속되고 저금리 상황에서 금융 업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어려운 지금 분위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내년에는 금융권 구조조정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금융회사들은 “당분간 추가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2차 구조조정 명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연말에 또 한 번의 대규모 퇴직을 단행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두 회사는 모두 이를 부인했다. 한국씨티은행도 최근 취임한 박진회 행장이 직원들에게 추가적인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는 e메일을 보냈지만 수익성이 악화되고 지점을 줄이는 마당에 소문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인수합병(M&A)이 진행되거나 업황이 나빠질 경우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수순으로 본다”며 “그런 얘기들이 나올 때마다 힘들지만 차라리 이직을 하거나 퇴직금을 받고 나가자는 직원들도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와 달리 구조 조정으로 인해 노사 갈등을 겪는 기업들도 많지 않다. 이렇다 보니 소리 없는 구조조정이라는 이야기까지도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와 다르게 희망퇴직을 단행할 때 노사와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충분한 보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관련 업계에서는 내년 채용 전망조차 불투명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금융·보험업 취업자는 83만 명으로, 1년 전보다 4.3% 감소했다. 채용이 줄고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전체 취업자 중 금융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3.4%에서 3.2%로 낮아졌다. 이런 분위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업황 회복 정도를 가늠할 수 없어 올해 신규 채용도 쉽지 않았다”며 “일을 하려면 채용해야 하지만 내년 환경을 봐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하반기 70명 미만, 삼성증권 20명 안팎, 미래에셋증권은 30명 정도 채용 계획을 갖고 현재 채용 절차를 진행 중이다. 다른 증권사들은 이렇다 할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보험 업계 상황도 비슷하다. 매년 공채를 진행해온 현대해상은 내년에도 신규 채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대해상은 50여 명 안팎의 채용을 위해 하반기 채용 전형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보다 신규 채용 인원을 늘린 교보생명도 큰 변수가 없는 이상 내년에도 소폭 채용할 예정이다. 올해 구조조정을 진행한 한화생명은 올해 채용 계획이 미정인 만큼 내년에도 전망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공채 일정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매년 채용한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용이 기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면 상시 채용하거나 경력직을 뽑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그나마 상·하반기로 채용을 진행하는 시중은행들은 올해 수준을 검토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업황 등에 따라 채용인원은 변동될 수 있지만 올해 채용(300명)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200여 명 수준으로 뽑을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외환은행과의 통합으로 구체적인 채용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올해와 비슷한 100여 명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290여 명을 선발할 예정인 KB국민은행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대졸 취업준비생 100만명 시대

이런 가운데 내년 취업준비생이 역대 최대에 달할 것으로 보여 취업시장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전문대·일반대·대학원 등) 531개 학교 졸업자(2013년 8월 및 2014년 2월 졸업자) 55만 7236명 가운데 취업자수는 28만 4116명에 그쳤다. 나머지 27만 명은 취업재수생. 여기에 내년 졸업생(약 55만 명)과 취업 삼수생, 올드루키(경력직 신입사원) 등을 합하면 취업준비생은 약 10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신규 채용 인원보다 2배 이상 많은 대졸자가 줄을 서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들도 선발 기준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응시자들의 과열 경쟁 해소 등을 위해 20년 만에 서류전형 부활을 검토하는 등 채용 과정을 대폭 손보고 있다.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시험에서도 세계사나 인문학 관련 문항을 많이 넣었다. LG그룹은 올해 하반기부터 한자와 한국사 문제를 포함했고, SK와 GS·포스코 등도 역사 비중을 늘리는 등 응시자들에게 다양한 소양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 도 역사 에세이를 쓰는 문제를 냈다. 대기업 채용에 난데없는 역사 바람이 분 것. 응시자 간 변별력을 찾다 보니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역사관은 구직자의 가치관에서 반영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자사의 가치와 맞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라도 역사 시험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내년에도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1260호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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