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망하기 십상이다. 발 빠른 글로벌 기업들은 수십 년 전부터 변신을 모색했다. 시장지배자이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찾아 다녔다. 그런 덕에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던 수많은 기업도 과거의 영광과 결별하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진 않는다. 결국 혁신의 타이밍과 방향이 성패를 좌우한다. 국내외 유수 대기업의 혁신 사례를 조명했다.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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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 중에 도도새가 있다.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 앞바다 모리셔스섬에 서식했다. 1681년 영국인 벤자민 해리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뒤로 아직까지 이 새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 도도새는 박제조차 남아있지 않다. 모리셔스섬 최대 개체수를 자랑했다는 도도새는 왜 멸종했을까. 도도새는 발견 이후 180년 만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했다. 인간이 새로운 포식자인 것을 알았지만 몸무게가 너무 무거워 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도도새 날개가 퇴화됐다고 생각했다. 닭이나 타조처럼 날지 못하게 됐을 거란 추측이다.그런데 최근 도도새 발톱뼈 화석에서 채취한 DNA분석 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석 결과 도도새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니코바르비둘기다. 이 비둘기는 바다를 넘어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비둘기 후손이다. 도도새 DNA 속에도 여행비둘기 속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도새 날개가 작은 것은 퇴화된 것이 아니라 일반 비둘기처럼 원래 작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도도새는 작고 날렵한 비둘기로 변신하지 않았다. 모리셔스섬에 몰려 지내면서 달라지길 거부했다. 진화(변신)하지 않은 도도새는 그렇게 멸종했다.변신하지 않는 기업은 망하기 십상이다.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의 전 CEO 찰스 홀리데이는 “변신을 시도하면 생존할 확률이 60~70%지만, 변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했다. 변신은 기업의 숙명이다.현 시대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기업을 생태계 진화과정으로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은 시간’ 이다. 느긋하게 기업의 일부분을 뜯어고치고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써봐야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어렵다. 빠르게 다가오는 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지는 완벽한 변화, 괄목상대할 만한 혁신이 필요하다.‘기업 변신(Business Transformation)’이란 기업이 환경변화에 대응해 사업구조를 급격히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생필품처럼 본업의 생존기간이 긴 업종을 제외하면, 장수기업도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해야 한다. 기업마다 고유의 핵심가치를 계승하면서도 환경변화에 계속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기업의 변신은 어렵다.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게 어렵고, 기존 사업부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칠 수도 있다. 잘나가는 회사일수록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알아도 애써 무시한다. 승자의 함정이다. 변신을 실행한다고 해서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끈질기게 변신에 적합한 체질을 만들고 변화가 일상화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변신력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ies)’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처해 기업이 갖고 있는 자원을 새롭게 배치하고 활용해 적응해가는 능력’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2년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변신하라’고 조언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기업이 1등의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을 버릴지부터 고민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경쟁력이 실적을 좌우했다. 그런데 산업 패러다임 이 급격히 변하면서부터는 기존 경쟁력보다 변신력이 더 중요해 졌다. 새로운 환경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적응해가며 자신의 주력사업을 바꿀 것인가가 중요해졌단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런 기업의 변신 유형을 내부 역량과 외부 충격에 따라 4가지로 구분했다.먼저, 내부 역량이 우월하고 외부 충격이 별로 없는 기업은 ‘변화 선도형’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유수불부(流水不腐)다. 둘째는 내부 역량은 열세지만 외부 충격을 받지 않는 ‘우회 공략형’이다. 명성은 헛되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불허전(名不虛傳)으로 표현한다. 핵심 역량은 강하지만 외부충격을 크게 받는 기업은 산업을 재구성해서 활로를 모색하는 ‘가치차별형’이다. 조화를 이루지만 차별을 추구한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부 역량이 약한 상태에서 외부 충격까지 강하게 받은 기업은 ‘핵심역량 재편형’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에 들어맞는다.어떤 유형으로의 변신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의사 결정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아주 특별한 경영수업>에서 충고했다. ‘많은 최고경영자들이 적절한 변신을 하기보다는 성장 과정 내내 창업 초창기와 똑같은 자세로 일관하다 독선적인 경영자로 전락해 실패한다. 기업의 수명이 짧은 것은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에게는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적기에 변신을 못했기 때문이다.’ 변신을 하든지 아니면 변신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과감히 넘기라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