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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69]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 에볼라 바이러스 맞선 ‘바이러스 투사’ 

조류인플루엔자·사스 극복한 전염성 질환 전문가 인문학적 소양 갖춘 의사 출신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
지구촌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에 떨고 있다. 에볼라 감염 환자가 다수 발생한 서아프리카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갈지 모른다는 공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기니·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자가 지난 10월 25일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 대유행에 성큼 다가선 셈이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로 퍼진 에볼라 감염자가 이날 1만141명을 기록했으며 사망자는 4922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50명이 넘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가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과 환자 수를 집계해 보고할 행정요원이 감염돼 전멸하거나 지역을 떠나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촌에 ‘에볼라 공포’ 확산

이런 상황에서 지구촌 건강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처를 담당하고 있는 WHO의 마거릿 챈(67) 세계보건기구(WHO) 사무 총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보건을 책임지는 WHO의 사무총장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대유행 직전에까지 갔던 전염성 질환에 잘 대처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추천으로 2006년 11월 WHO 이사회에 의해 이 자리에 선출돼 2007년 1월 취임한 챈 총장은 1994~2003년 홍콩정부의 위생국장(장관에 해당)을 지내면서 조류인플루엔자와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비롯한 전염성 질환에 정면으로 대처해본 경험이 있다. 그가 홍콩 위생국장으로 있던 1997년 중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대규모로 발생해 홍콩까지 위협했다. 당시 그는 합리적이면서도 단호한 보건행정가의 면모를 보였다. 홍콩 내 식품 및 요식업계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중국 본토로부터 닭 수입을 신속하게 전면 금지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홍콩 지역에 있는 닭을 전량 살처분까지 했다. 감염되지 않은 닭까지 모두 살처분해서 조류인플루엔자의 감염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찬이 당시 행한 조치들은 인수공통(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릴 수 있는 전염성 질환) 전염성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처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이러한 조치로 홍콩은 조류인플루엔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3년에는 중화권과 동남아 일대에 사스가 대유행했다. 챈은 사스와 싸우면서 합리적인 대처로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03년까지 위생국장을 지낸 그는 25년의 근무를 마치고 홍콩 정부를 떠나 WHO로 자리를 옮겼다.

WHO에서 팬데믹 인플루엔자 책임자와 전염성 질환 담당 부총장을 지내면서 능력을 인정 받았다. 팬데믹이란 ‘전염병의 대유행’을 의미한다. 그는 2009년 6월 신종 플루로 불린 인플루엔자 A(H1N1)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이 팬데믹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맞설 가장 강력한 인물로 그가 꼽히고 있는 것이다.

챈은 의사 출시의 보건 전문가이면서도 인문학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주목 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홍콩 노스코트 사범대학에서 가정경제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면서 삶의 행로를 바꿨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가정경제학을 공부해 학위를 받은 그는 의대로 진학해 1977년 의사가 됐다. 1985년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경제학적인 배경도 어느 정도 있어 보건의료 위기를 인간 생활의 총체적인 위협으로 보고 이에 대한 다각적인 대처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국제사회의 보건사업과 보건정책은 단순하게 감염성 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맞서고 의학적인 예방사업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 반드시 해당 지역 주민의 경제·사회적 생활 수준도 개선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다. 보건과 교육, 사회안전망 확충 등 지역 주민의 삶의 조건에 대한 투자와 개선이 중요한 것이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서 관련 인력을 충분히 훈련시켜 투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챈이 WHO 사무국장이 된 직후인 2003~2006년 WHO 에이즈 국장으로 활동했던 김용 현 세계은행 총재는 챈의 지원으로 이런 원칙에 따라 에이즈 감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 했다. 챈은 김용 에이즈 국장이 에이즈와 그 원인이 되는 인면역 바이러스(HIV) 감염이 만연한 아프리카 국가에 2005년까지 300만명의 환자와 감염자를 치료하는 3X5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대성공해 최근까지 700만명의 환자와 감염자를 치료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글로벌 보건사회에서 하나의 교과서로 통한다. 핵심은 진료 중심의 단순한 의료 지원에서 벗어나 가난과 질병을 동시에 구제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다. 사회의학의 기본 개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생긴 지역사회 의료는 현재 제3세계 의료사업의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질병과 가난 동시에 돌봐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오른쪽)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0월 1일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 있는 ‘전략보건운영센터(SHOC)’을 방문해 WHO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WHO는 10월 13일 서아프리카 창궐하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이 현대 시대에서 보건상 가장 심각한 비상사태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김용이 총재로 있는 세계은행은 에볼라 대유행 초기에 사태 대응에 4억 달러 지원을 결정했다. 첫 번째 지원분인 1억 5000만 달러를 실제로 전달하기까지 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0월 30일에는 추가로 1억 달러 지원을 결정했다. 감염성 질환의 팬데믹을 막는 데는 국경봉쇄 같은 감정적인 대응보다 실질적인 경제적인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한 때문이다. 이는 챈 사무총장이 WHO를 이끄는 원칙이기도 하다. 그가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게 여기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 세계로 확산 중인 에볼라가 세계 경제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은행은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내년 말까지 326억 달러(약 34조 6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직접적인 보건의료 관련 피해 뿐 아니라 공포로 경제가 위축되는 데 따른 피해까지 포함한 수치다. 하지만 이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의 이웃 국가까지만 확산할 경우에 한정한 수치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할 경우는 얼마나 될지 전망조차 못하고 있다.

에볼라 감염 확산은 보건의료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하고 있기도 하다.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밭을 갈던 농부가 농토를 포기하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피해 피난을 가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지 지역의 농토가 황폐화하고 식량 생산이 줄어 새로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을 과학적인 정보를 통해 설득시켜 현지에서 생업을 계속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보건 과제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도 줄줄이 발생하는 등 사회문제도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아동구호기관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캐로린 밀레 최고운영책임자 겸 회장은 CNBC에 “자체 조사를 한 결과 시에라리온·기니·라이베리아 등에서 발생한 고아가 4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에볼라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5세 미만 어린이 중 250만 명이 고아가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구도 에볼라 쇼크에 시달리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미국 등 서구인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본국으로 급거 귀국하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미국으로 귀국한 사람이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치료 중 숨지기도 했으며 이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이 감염됐다가 치료를 받고 회복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항공기를 이용한 이동자 수가 엄청난 21세기 지구촌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은 서아프리카에 국한된 질환이 아니라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글로벌 질환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에볼라(ebola)와 사회적 공포감(fear)을 조합한 ‘피어볼라(fearbola)’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실제보다 과장된 공포심에 따라 패닉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CNN은 “피어볼라가 유행병처럼 미국 전역에 번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챈은 이제 에볼라 사태를 맞아 최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을 움직여 국제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세계은행을 움직여 자금을 받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에 이끄는 유엔은 에볼라에 대응해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지난 9월 미국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에볼라 확산방지 지원 결의안을 이끌어냈다. 이 결의안은 총회에서 130개 회원국의 지지를 받아 유엔 안보리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지지를 기록했다. 반 사무총장은 평화유지군 개념을 에볼라 사태에 적용한 유엔에볼라긴급대응단(UNMEER)도 창설해 현지에 파견했다. 유엔이 공중보건 문제와 관련해 전담대응 조직을 꾸린 것은 처음이다.

에볼라 백신 개발·보급이 과제

챈 사무총장의 다음 과제는 에볼라 백신 개발과 보급이다. 에볼라는 1976년 아프리카 콩고강 유역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첫 발병 후 4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백신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WHO와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에볼라는 아프리카의 소외되고 좁은 지역에서 발병했다가 곧 사라지는 질병’으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맵이라는 실험적인 치료제가 있지만 아직 효력이 입증되지 않았으며 부작용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글로벌 제약업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에볼라 발생 초기인 지난 3월 백신 개발에 관해 WHO에 연락을 취했다가 “고맙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사무적인 답만 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현재 GSK를 비롯,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연구진 등이 백신의 임상실험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효력과 부작용을 검증하는 임상실험에는 시간과 절차가 필요해 일반인이 이를 맞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질환을 막으려면 내년 말 정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챈은 2010년 4월 북한을 방문해 영양실조 문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포브스는 올해 챈 사무총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 30위에 올려놓았다. 인류를 바이러스 질환에서 구하는 ‘에볼라 투사’가 된 그의 내년 순위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1260호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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