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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20년 만에 채용방식 바꾼 삼성그룹 - 공채 시스템 폐지로 가는 첫걸음? 

SSAT 비중 줄이고 직무 능력 중시 ... 앞으로 수시 채용 더 늘릴 듯 


10월 12일 서울 대치동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응시자들이 시험 종료 후 고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실시된 삼성그룹의 대졸신입사원 공채 필기시험에는 전국 79개 고사장 및 해외 3개 지역에서 10만여명이 응시했다.
삼성그룹이 20년 만에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바꿨다. 한 번에 많은 신입사원을 뽑는 공채 시스템 골격은 유지해 파격적인 변화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점진적으로 공채 폐지를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는 숨은 의미가 있다. 매년 1만 명씩 뽑던 신입 채용 규모를 줄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하반기 각각 10만 명씩 몰리던 SSAT(삼성직무적성검사) 과열 현상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듯하다.

삼성그룹이 11월 5일 발표한 새로운 채용 방식은 올 초 내놓은 변경안과 기조는 유사하다. 자격 조건 없이 모든 구직자에게 SSAT 응시 기회를 줬던 삼성그룹은 올 초 대학 총장 추천(약 5000명)을 받거나, 삼성의 현장 인터뷰를 통과한 응시자만 SSAT 시험자격을 주기로 했었다. SSAT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도 검토했지만, 내부 반론이 커서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총장 추천제가 ‘대학 줄세우기’라는 반발에 부딪히면서 결국 이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그룹은 대신 ‘직무적합성 검사’를 도입했다. SSAT 응시자를 거르는 일종의 전형 단계다. 일각에선 서류 전형의 부활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지만 삼성 그룹 측 설명은 다르다. “서류 전형이라고 할 수 없다. 직무와 관련된 부분만 제출된 서류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다. 직무 관련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연구·개발직군은 얼마나 전공 능력이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미의 평균 학점, 자격증, 어학연수 여부 등 이런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이준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

형식은 ‘한국식 공채’ 내용은 ‘글로벌 방식’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기존 시험(SSAT) 위주의 획일적 채용방식을 직군별로 다양화했다는 데 있다. 삼성그룹 측은 개편 배경에 대해 “미래 경영환경의 변화와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사례, 입사 후 우수 직원들의 업무성과 요인들을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영업과 경영지원직군은 전공 성적보다는 직무에 대한 적성과 성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가령 영업직은 리더십과 팀워크, 사교성 등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준 팀장은 “스펙이나 연수 등 직무와 직접 연관이 없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자신이 지원한 직무와 연관된 경험을 쌓는데 지원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과 기술·소프트웨어직군은 전공 점수가 대폭 반영된다. 삼성그룹이 우수 직원의 업무 성과를 분석해 봤더니, 전공 점수와의 연관성이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창의성 면접’은 지원자와 면접위원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토론 과정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논리 전개 과정을 평가하며 직군별로 진행 방식은 다르다. 영업직군은 1박2일 면접, 풀 데이(full day) 면접을 통해 직무 에세이에 기재된 내용을 검증하게 된다.

삼성그룹이 20년 만에 채용 방식을 변경한 것은 단순히 SSAT 과열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엔 삼성의 깊은 고민이 깔려 있다. 대학 졸업자(29만 명) 세 명 중 한 명이 응시했던 SSAT는 삼성그룹 내에서도 ‘직무 변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SSAT 폐지가 논의됐던 이유다. 더욱이 이번 개편안에서 삼성그룹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직군별로 직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는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거의 모든 업종에 76개 계열사가 있다. 금융계열사는 12개다. 계열사별로 원하는 인재가 다를 수밖에 없다. SSAT 비중을 낮추고, 직군별로 직무 능력을 우선하는 이번 방식이 안착 되면, 궁극적으로 삼성그룹은 일괄 공채 규모를 줄이고 계열사별 수시 채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삼성그룹의 채용 개편이 점진적으로 공채 제도를 폐지하는 첫 발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 중에서 공채가 주 채용 방식인 나라는 한국과 일본 외에는 거의 없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채용 시스템이 더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기존 ‘SSAT→실무면접→임원면접’에서 ‘직무적합성 평가→SSAT→실무면접→창의성면접→임원면접’ 단계로 확대됐다.

소프트웨어직은 SSAT를 치르지 않고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 로 대체된다. 삼성 측은 “인재를 뽑는 게 목적이라 복잡해졌어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는 글로벌 IT 기업의 채용 방식과 유사하다. 형식은 ‘한국식 공채’인데, 내용은 ‘글로벌 채용 시스템’이다. 형식과 내용이 충돌할 수 있다. 예전처럼 한꺼번에 최종 선발 인원의 2~3배를 뽑아 면접을 진행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수시 채용 확대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삼성그룹이 직면한 현실적 고민도 이번 채용 방식 변경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매년 1만 명 안팎의 신입 사원을 채용했다. 경력 사원 채용도 대폭 늘었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2010년 20만명이 되지 않던 전체 직원수가 지난해 말 29만명 정도로 3년 새 50%나 늘었다. 더욱이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경영진단에 착수할 정도로 일부 계열사 사정이 좋지 않다. 금융계열사는 감원이 진행 중이고,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 역시 위기감이 팽배하다.

삼성 내에서는 인력 과잉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그룹이 향후 공채 규모는 줄이고 수시 채용 비중을 늘리는 방식의 채용 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나온다. 기존 방식으로는 마지막 신입사원을 뽑는 내년 상반기, 그리고 새 채용 제도로 첫 공채를 하는 내년 하반기 삼성그룹의 채용 규모와 방식에 벌써 이목이 쏠리는 배경이다.

한계 부딪힌 공채 시스템 - 수시 채용 확대하는 대기업 늘어

1995년 삼성그룹은 ‘열린 채용’을 모토로 직무적성 시험을 거쳐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새 채용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이 같은 방식은 현대자동차(HKAT,2013년 HMAT로 변경)·SK(SKCT)·LG(LG웨이 피트테스트)·롯데(L-TAB)·두산(DCAT)·CK(CJ CAT) 등 재계로 확산됐다. 하지만 이 같은 채용 방식은 ‘변별력이 없어 과도한 스펙 경쟁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험형 인재만 몰리고, 정작 기업에 적합한 실무형 인재를 뽑는데 한계가 있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 중순 전국 450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4 신입사원 채용 실태‘를조사했더니,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5%에 달했다. 퇴사 이유는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47.6%)가 가장 많았다. 기업들의 신입사원 만족도도 매우 낮았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런 한계를 수시 채용 확대로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경총 조사에서 수시 채용 비율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업이 26%에 달했다. 우수한 인재 확보를 위해 직무능력 파악이 쉬운 수시 채용 비중을 늘리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인사팀은 올 중순 전국 50여 대학을 직접 돌며 100명의 신입사원을 발굴했다. ‘더 에이치(THE H)’로 불리는 길거리 캐스팅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LG그룹 역시 올해 다양한 인재 선확보 프로그램을 통해 전체 신입 사원의 30% 정도를 수시 채용으로 뽑았다. SK그룹은 경력직을 포함한 수시 채용인원이 신입 공채 인원을 넘어섰다. 금융권에서도 공채를 하지않고 수시 채용으로만 신입을 선발하는 곳이 늘고 있다.

1261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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