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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식 임금체계 논란 - 아직도 호봉제 사슬에 묶여서야 

고령화·생산성·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해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시급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좀 더 효율적인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6년부터 60세 정년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월급쟁이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기업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고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 부담이 커진다.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서다. 자칫 조기 퇴직 바람이 불며 불똥이 월급쟁이에게 다시 튈 가능성도 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호봉제를 그대로 두고 정년만 연장하면 인건비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기업이 나온다”며 “주위를 보면 실제로 간부급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받는 기업도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노동시장은 아직도 1970년대 등장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인 ‘호봉제’에 갇혀 있다. 2013년 말 기준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 가운데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71.9%에 달한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고도 경제성장기인 1970~80년대에는 호봉제가 효율적인 임금체계였지만 고도 기술화 산업이 자리를 잡은 이상 지금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근로자의 전문 기술과 생산성에 맞춰 일하는 만큼 받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근속기간 따라 임금 차이 3배

한국은행에 따르면 실질 부가가치를 취업자 수로 나눈 노동생산성이 2000~2007년에는 연평균 3.3% 증가했지만, 2010~2013년에는 1.8% 증가에 그쳤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 같은 노동생산성 둔화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하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다. 한은은 이 같은 노동생산성 둔화의 원인으로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를 꼽는다.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기간제나 파견직등 간접 고용을 선호하면서 생산성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10인 이상 제조업 사업체의 상용근로자 가운데 20~30년 근속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2.9배다.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이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호봉제를 실시하며 생산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근로자들을 위한 장인 양성프로그램을 통해 업무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경쟁력 확보와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성과·직무급형 임금체계 도입 화두를 꺼낸 이유다. 호봉제는 나이와 함께 임금이 올라간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다 보니 기업들이 정규직 고용을 오히려 줄이게 된다. 호봉이 올라가면 임금도 상승하는 임금체계 탓에 불황이면 기업의 정규직 채용이 크게 감소한다. 필요한 인력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상황이다.

장년층의 취업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호봉제는 기업의 실질적 정년을 낮추도록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필요한 인재가 있어도 나이 제한에 걸려 취업문이 막히는 사례가 빈번하다. 근로자의 장기 근속에도 걸림돌이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연간 평균 임금상승률이 높을수록 정년 연령이 낮았고, 50세와 30세의 임금 격차가 큰 기업의 근로자일수록 더 일찍 정년을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50세 이상 근로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50세 이상 생산가능인구는 2013년 1624만명에서 2023년에는 2182만명으로 558만명이 증가할 전망이다. 전체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50세 이상 비중은 2023년 49.4%로 현재보다 무려 10.8%포인트 늘어난다. 지금 제도를 그대로 가져갈 경우 고용 문제가 10년 후 한국 경제에 큰 위협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월 4일 여의도에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토론회’에서 “매년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로는 미래가 없다”며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좀 더 효율적인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 장관은 호봉제에 기초한 임금체계가 개편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성과 장년 근로자 증가, 고용형태의 다양화, 노동의 이동성 증가 등 고용환경이 급변한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호봉제에 기초한 연공중심의 경직적 임금체계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도한 연공형 임금체계는 생산성과 보상의 미스매치로 인해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 퇴출, 특히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확대, 정규직 신규채용 회피등 우리 노동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입니다.”

정부와 여당, 임금체계 개편 예고

이 장관이 지적한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은 최근 정부의 움직임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정규직 과보호’ 해소를 위해 임금개편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50대 직원 한 명 임금으로 신입사원 3명을 고용할 수 있다”며 “임금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노동 시장에서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정규직의 임금체계 개편을 예고한 상황이다.

정부는 임금체계를 성과급제·직능급제 등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공과 정기 승급에 따른 임금인상률을 줄여나가면서 성과·생산성·경영실적 등에 따라 임금을 조정하는 방안이다. 이런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보상의 상당 부분이 능력과 성과에 연동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건비 관리가 가능하고 임금의 동기부여 기능이 회복되는 장점이 있어 기업들이 선호한다. 전체 노동력 가운데 절반이 50세 이상인 상황에서 현재 호봉승급제를 유지한다면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일자리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기업의 정규직 채용 부담을 덜어주면 고용이 늘어나고 실업과 비정규직 해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장관은 “총량 제한 범위 내에서 수요 변동이나 직무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자율적인 탄력근로·재택근로·재량근로 등을 도입해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며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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