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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과보호 논란 - 정규·비정규직 차별 완화가 사회통합 지름길 

외환위기 후 묵은 난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 노사정 대타협 기대 


▎12월 2일 열린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 KBS에는 ‘간부’가 많다. ‘일 없는 간부’가 넘친다. 관리직급과 1~7급으로 나뉘는 KBS 임직원 100명 중 57명은 2급 이상 간부다(2012년 말 기준). 하위직보다 간부가 더 많은 이상한 구조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KBS의 인력구조는 비정상적인 역피라미드 구조”라며 “제 역할을 못하는 고임금자면 창의력 있는 젊은 인력 2~3명을 충원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좀 더 자세히 보자. 감사원과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KBS의 2012년 말 기준 관리직급(25년차 국장급)은 85명이다. 20년차 1직급은 295명, 15년차 2직급은 2385명에 이른다. 이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관리직급이 약 1억3220만원, 1직급 1억1600만원, 2직급 9600만원이다. 문제는 관리직·1직급 중 약 60%인 220여명은 보직이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KBS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이들을 ‘창밖의 남자’라고 부르곤 한다”고 했다. 할 일이 없어 창 밖만 바라본다는 뜻이다.

정규직 보호 완화하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해야

이런 인력 구조는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졌다. 경영 실적 악화로 인력을 줄여야 하는데, 일없는 간부들을 내보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KBS는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한 노조원은 해고해도, 보직 없는 간부들을 해고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그렇다. 결국 KBS는 신규 채용을 억제했고, 상대적으로 장기 근속자가 늘면서 역피라미드형 인력 구조가 고착됐다. 2008~2012년 상위직급은 2459명에서 2745명으로 늘었고, 하위직급(3~7직급)은 2753명에서 2067명으로 줄었다. 이 사이 KBS 내 비정규직 처우는 열악해졌다. 지난해 4월 KBS 계열사인 방송차량서비스 소속 운전노동자 150여명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들이 내놓은 구호는 ‘최저임금 극빈생활 탈출’이었다. 당시 KBS분회가 공개한 입사 8년차 운전기사의 월 실질 수령액은 138만7220원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 KBS만의 문제일까?

정규직의 과보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심화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가까이 묵은 난제지만, 정부·기업·근로자 모두 외면했다.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는 한정된 파이를, 더욱이 저성장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는 경제학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다.

11월 27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기한 후, 수많은 질문과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양산이 정규직 과보호에서 비롯된 것인가?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면 그 자리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채우고,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될 것인가? 노조가 강한 대기업 정규직과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 정규직은 같은 처지인가? 이는 개별 기업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인가, 정부가 나서 법과 제도로 풀어야 할 문제인가? 개별 기업 노사는 이 문제에 합의할 수 있을까? 당신 회사에서 놀고먹는 직원들을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놔두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경제가 고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지만, 그것은 쉬운 일인가?

이런 고차원 방정식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연 ‘사회적 합의’다.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노사가 알아서 풀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되는 국가 개혁과제다. 이미 그런 조언은 많았다. 지난해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 주최한 ‘한국의 사회정책 과제’ 콘퍼런스에서 OECD 측 발표자들은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은 사회통합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알렉산드로 고글리오 OECD 고용노동사회국 참사관은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비율 축소를 위한 종합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면서 건실한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세심한 노동시장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폴 스와임 OECD 수석경제학자는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 완화와 비정규직의 일자리 안정성 제고를 통해 (기업이)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고용하려는 유인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밝힌 정책 방향도 맥락은 같다. 대기업 정규직의 과보호는 완화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안정되게 하면서 격차를 줄여가자는 것이다.

‘정규직 과보호’ 공감 47%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듯하다. 한국갤럽이 12월 2~4일 전국 성인 100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심각하다는 최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공감한다’는 47%, ‘공감하지 않는다’는 36%였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주장에 대해서는 ‘기업이 유연하게 고용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나므로 찬성’이 43%, ‘좋은 일자리마저도 나쁘게 할 수 있어 반대’가 45%로 팽팽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사·정 모두 공감하는 문제이기도하다. 올 9월 출범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내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10월 2차 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주요 논의 의제로 채택했다. 12월 19일 5차 회의에서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한 진통 끝에 근로자의 해고 요건을 문서에 명시적으로 밝히기로 합의했다는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기도했다. 특별위원회에는 노동계 2명, 경영계 2명, 정부 2명, 공익부문 5명과 7명의 전문가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정규직 과보호, 특히 해고 문제와 관련해 찬반 진영의 인식 차이는 크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도 제각각이다. 정규직 과보호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효율성이 세계 86위, 해고 비용이 120위라는 세계경제포럼(WEF) ‘2014 국제경쟁력 평가’를 근거로 제시한다. 우리나라 정규직의 고용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는 쪽에선, OECD의 고용보호지수 조사를 강조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규직의 고용보호지수는 2.17로 OECD 평균(2.29)보다 낮아 34개 회원국 중 22위였다. 정리해고 규제 수준은 1.88로 OECD 평균(2.91)보다 크게 낮았고, 일반 해고는 2.29로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았다. 수치가 낮을수록 고용 보호 수준이 낮다는 것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통계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우 모호하면서도 경직된 규정이다. 이와 달리 그동안 우리나라 사법부의 정리해고 관련 판례는 해고의 이유를 상당히 폭넓게 인정해 왔다. 이 간극을 좁혀 부당 해고 논란을 줄이고,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 문제는 노사정위원회에서도 테이블에만 올려놓은 채, 아직 격론이 붙지 않은 상황이다. 치열한 공방이 노사정 대타협으로 귀결된다면 지금의 혼란은 아무것도 아니다. 갈 길은 멀지만, 피할 일이 아니다.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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