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이 구호로 현직 대통령이던 부시를 눌렀다. 한국도 다름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경제는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상부구조’가 됐다. 민생경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정권은 가차없이 교체됐다. 경제가 나빠지면 사회 분위기도 흉흉해지고 범죄도 늘어났다.
‘싸움·간통·살인·도둑·구걸·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공농상의 제2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김동인의 는 이렇게 시작된다. 는 김동인이 1925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복녀는 가난하나마 정직한 집안에서 규칙 있게 자란 처녀였다. 문제는 돈이었다. 나이 열다섯 살에 스무 살이 많은 동네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 시집을 간다. 새서방도 밭이 몇 마지기 있는 농민이었지만 극도로 게을렀다. 일하기 싫어하는 끝에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막벌이도 싫어하고 남의 집 행랑살이도 못한다. 결국 복녀네는 평양 성밖 칠성문으로 쫓겨난다. 거렁뱅이질을 해 하루하루 먹고 살던 복녀는 어느 날 송충이 잡는 일에 동원된다. 요즘 말로 하면 공공근로다. 열심히 송충이를 잡으면 하루 32전씩 품삯이 떨어진다. 그런데 젊은 여인 여남은 사람은 일하지 않고도 후한 품삯을 받고 있다. 알고 보니 감독에게 몸을 판 대가였다. 복녀도 어느 날 ‘일 안하고 품삯을 받는 인부’가 됐다. 이때부터 복녀의 도덕관이 바뀐다. 복녀는 매춘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남편은 아랫목에 누워서 아내가 벌어오는 돈에 만족해 하며 연신 웃는다.
는 환경에 의해 타락해가는 복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한다는 것은 짐승이나 하는 짓거리로 알았던 복녀였다. 하지만 막상 몸을 팔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나니 생각이 바뀌게 된다. 일 안 하고도 돈을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다. ‘삼박자’가 딱 맞는 일은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할 지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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