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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저유가 선순환론 - 유가 떨어져도 소비자는 지갑 닫아 

공급 과잉보단 경기 침체가 유가에 큰 영향 … 경제 전망도 밝지 않아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은 정책회의(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에게) 유가 하락은 긍정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원유 수입국이지만, 동시에 산유국이기도 하다. 또 지난 5년 간의 경기회복 과정에서 셰일오일 붐이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옐런 의장은 유가 하락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추가 구매력 증가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 직후 유가는 더 가파르게 하락했고, 미국 달러화 강세 현상은 심화됐다.

美 소매판매 지표 줄줄이 예상 밑돌아


이 기간 동안에 미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다. 국채 수익률(금리)은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는 미 국채 가격이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채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락하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국채 수익률뿐만이 아니라, 각 만기별 국채 수익률 격차(스프레드)도 함께 좁혀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예전에는 국채 5년물 수익률이 1.5%였고, 30년물 수익률은 3.0%였다면(격차는 1.5%포인트), 옐런 의장 발언 이후에는 이 격차가 1%포인트로까지 줄어들었다. 이를 수익률 곡선 평탄화라고 부른다. 이는 단지 인플레이션률 전망치가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경기 전망도 함께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옐런 의장이 말한 것처럼 유가 하락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국채 수익률은 평탄화될 것이 아니라 기울기가 더 급해져야 한다.

이런 국채시장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 준 것이 바로 1월 중순 발표된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매판매 지표였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들은 유가 하락이 본격적으로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에 영향을 미쳐 기름값을 아낀 소비자들이 다른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소매 판매가 전달 대비 0.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시장 예상치는 0.1% 감소). 무엇보다도 자동차와 가솔린을 제외한 소매판매는 시장 예상치(0.5% 증가)를 크게 하회한 -0.3%를 기록했다. 또 핵심 품목들을 지칭하는 ‘컨트롤 그룹(control group)’의 판매는 시장 예상치(0.4% 증가)와는 달리 0.4% 감소했다. 유가 하락에도 소비자들은 오히려 소비를 줄인 것이다.

유가 하락이 경제에 좋은 것(선순환)인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왜 유가가 하락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흔히 서구의 언론들은 이번 유가 하락이 공급 과잉 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가격 전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러면 과연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아주 드물게만, 석유수출국기구(OPEC)나 사우디의 당국자들은 ‘수요 증가세 둔화’를 언급한다. 그러나 지난 11월부터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이 아시아 지역의 판로 확보를 위해 가격을 내렸다는 보도로 미루어 본다면, 이미 아시아 지역에서의 수요 둔화 조짐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유가의 급변동은 세계적인 또는 미국의 경기 침체기에만 발생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유가는 경기 침체와 달러화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표 참고]. 해외에서 경기 침체로 인해 유가 하락이 발생하면(예컨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달러화는 강세가 되면서 유가가 급락한다. 반대로 미국 내에서 자산 버블이 터지거나 경기 침체로 돌입하면 유가 하락과 더불어 달러화 약세가 나타난다. 즉, 어느쪽이든 간에 유가는 국제적으로 수요 둔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경제 활동의 확장·위축 현상을 선행해서 보여주는 것은 단지 유가 하락만은 아니다. 달러화 강세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른바 닥터 이코노미(Dr. Economy)로 불리는 구리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가격 하락은 원유와 구리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용 원자재 전반에 걸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다른 말로 해서, 유가 하락은 공급 과잉이 아니라, 수요 둔화(경기 침체)의 ‘표현’이다. 지금 공급 과잉 또는 ‘가격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미국 셰일오일 섹터나 산유국들의 재정 수입을 보전하기 위한 일시적인 과잉 생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실제 수요의 둔화를 은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원자재 가격들이 시사하는 것은 이미 지난 2008년 수준까지 국제 경기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원자재 수요 둔화, 즉 경기 침체를 반영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은 혜택을 받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는 어느 특정 지역만의 고립된 경기 호황(또는 침체)은 가능하지 않다. 약간의 시간차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의 소비지표가 이미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뉴욕 연준이 2월 11일 공개한 향후 1년 간의 미국 민간 가계소비 전망 조사에서도 유가 하락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추가 구매는커녕, 오히려 소비가 급감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2월 12일 발표된 미국 도매 재고·판매지표에서도 재고는 증가하는 반면에 판매는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추후 수개월 간은 미국의 산업 활동이 둔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둘째로는, 미국은 산유국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S&P500 지수 상장 기업의 총 투자액 가운데 에너지 섹터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에 달한다. 즉, 유가 하락으로 원유 개발 투자가 감소하면 이는 미국의 기업 투자 감소로 직결된다. 그리고 이는 미국 내 유전 집중 지역의 경기 부진으로 이어진다. 미국 텍사스에서 발행되는 지역 언론인 [휴스턴 크로니클]지는 2월 9일에 지난해 유가 하락이 시작된 이래 텍사스 주에서만 (석유산업 섹터에서) 2만 5000명이 해고됐다고 보도했다. 또 2월 10일 미국의 한 고용시장 조사업체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1월 정리해고된 5만 3000명 가운데

美 연준은 주택 경기 부양 노려?

물론, 이 같은 에너지 업계의 고용 감축은 부동산 시장과 같은 다른 산업의 부양에 필요한 일자리에 충원될 수 있다. 지난 여름 연준은 셰일오일 섹터와 부동산 섹터의 단순 노동자 임금을 비교 조사한 리포트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능에선 두 섹터가 유사하지만, 임금은 셰일오일 섹터가 건설업 단순 노무직에 비해 약 20% 이상 높다. 따라서 에너지산업 노동력이 부동산 시장으로 옮겨가게 되면, 평균 임금은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유가 하락으로 주택 건축 원가가 하락하면서 주택 시장에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옐런 의장이 말한 저유가의 긍정적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미국의 부동산 시장 부양을 다시 한번 겨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이미 문턱에 도달해 있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단서가 주택 경기 부양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당분간은 좋은 소식보다는 부진한 경제지표가 더 많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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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호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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