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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대발탁 인사 줄이어‘조직의 미쓰비시’와 ‘사람의 미쓰이’. 같은 상사여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미쓰비시상사는 미쓰비시라는 대형 그룹에 속해 있지만 미쓰이물산에는 그와 같은 울타리가 없다. 대신 다채로운 인재와 치밀한 해외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를 보충해왔다. 바꿔 말하면 미쓰이물산은 ‘독특한 개성파집단’이다. ‘사내에는 다소 특이한 사람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인간 관계가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야스나가는 경영진에서 현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 어떤 건의도 통하게 만든다’(전 부하직원). ‘상사인 임원에게 물어봐도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는 이지마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그러나 ‘온화함’만으로 사장이 될 순 없다. 이면에는 야스나가의 ‘강렬한 리더십’이 있다. 야스나가의 주 무대는 공장 사업이었다. 미쓰이물산이 사운을 건 러시아 사할린의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에 그는 휴스턴 지점에 주재하던 초기와 FID(최종투자결정) 시점 등 두 번에 걸쳐 관여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와의 교섭은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된 상태로 밤새도록 이루어질 만큼 치열했다. 30대의 나이로 책임자로서 교섭에 나선 것이 바로 야스나가였다. 본인도 ‘지옥을 경험했다’고 회상한다. 결국 그는 사업을 따냈다.지난해 말까지 미쓰이물산 사장 후보로 거론된 사람은 7명이었다. 그러나 이지마가 최종적으로 미쓰이물산의 역사에 남을 젊은 사장을 선택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반영했을 때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난의 시기를 벗어난 종합상사는 2000년대 이후, 자원 개발에 참여하는 사업 투자 모델로 변하고 있다. 미쓰이물산 역시 자원사업에서 순이익의 약 80%를 벌어들인다. 하지만 원유 가격은 반년 사이 절반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번 분기에만 석유가스 사업으로 480억엔(약 44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최연소 사장의 어깨는 이 중압감을 버텨낼 수 있을까?
온화한 성품, 글로벌 감각은 필수미쓰이물산 사장 교체 기자회견 하루 전인 1월 19일에도 보통때와는 다른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임한 인물이 있었다. 후지쯔의 차기 사장(6월 취임 예정)인 상무 다나카 타츠야(58)다. 그는 “성장전략을 더욱 강하게 추진해 갈 것”이라며 “그것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월 19일부로 부사장으로 승격했으나, 사실상 상위 임원 10명을 뛰어넘은 이례적인 인사다. 사내에서는 ‘온화하고 성실한 사람’ ‘허튼 부분이 없고, 올곧음 그 자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대외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다. 10명이 넘는 상무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으며, 차기 사장 레이스에서 주류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다나카는 자신의 사장 취임 사실을 싱가포르 출장 중에 알았다고 한다.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예상외의 인선’이라 받아들여지지만 현 사장인 야마모토 마사미는 일찍이 다나카의 자질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행동력과 글로벌한 사고가 뛰어나다. 사장으로서의 담력도 있다’고 강하게 보증했다.평범한 풍모와 행동이 사내 평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는 영업의 달인이다. 법인영업 경험이 길고, 기자회견에서는 ‘자사 컴퓨터를 짊어지고 타사 제품과 맞바꿔왔다’는 무용담을 스스로 밝혔다. 국내 영업을 20여 년 가까이 경험한 후, 2003년부터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4년 4월부터는 아시아 지역 책임을 담당해왔다. 다나카 자신도 ‘격동의 시대에 국제 비즈니스 일선에서 일해온 것은 큰 무기’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야마모토는 장래 후지쯔의 모습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려 다나카를 기용하기로 한 걸까? 야마모토의 사장 승격이 발표된 것은 5년 전인 2010년 1월이다. 리먼 쇼크로 인한 실적 악화의 생채기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시기였다. 2009년 9월 충격적인 사건이 회사를 덮쳤다. 당시 사장인 노조에 쿠니아키씨가 갑자기 사장직을 사임한 것이다. ‘병요양’이 이유였으나 후에 ‘사장 사임’을 둘러싸고 회사 측과 노조에와 소송까지 벌어졌다. 임시로 회장 겸 사장에 취임한 마즈카 미치요시의 뒤를 이은 것이 바로 야마모토였다. 야마모토 사장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추진해온 것이 채산사업 정리다. 설비투자 부담이 크고, 업적변동이 심한 반도체사업이 대표적이다. 야마모토는 라이벌인 파나소닉과 시스템 LSI사업을 통합하는 등 과감한 사업개혁을 단행했다.야마모토 사장은 ‘구조개혁은 아직 중반이지만, 기초작업은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후지쯔는 다시금 성장 노선을 정비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으며, 그것을 인솔하는데 적합한 인물이 다나카라는 것이다.후지쯔의 성장 드라이버는 해외다. 해외 매출 비중은 2013년 약 38%로 일본 IT기업 중에서 이미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아직 해외 수익성이 낮다는 점이다. 라이벌 회사의 한 간부는 경계한다. ‘후지쯔의 재도약 시기가 왔다. 국제 경험이 풍부한 리더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분명하며, 해외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다나카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한때 맹렬한 성장세로 ‘마루노우치의 불야성’이라 불렸던 후지쯔. 다나카 시대에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까?
‘그냥 너답게 하면 된다, 넌 나와는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