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주주총회 모습은 어떠했나. 거의 모든 기업이 3월 둘째 혹은 셋째 주 금요일을 주총일로 정하고, 예탁결제원에 섀도우보팅을 요청해 손쉽게 정족수를 채우면서 경영진이 원하는 대로 안건을 통과시켜왔다. 기관·소액주주들의 적은 권한과 무관심 속에 대주주·경영진이 전횡을 일삼은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같은 주주총회는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부터 전자투표제를 비롯해 소액주주와 연기금의 권한을 보장하는 여러 장치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들 변화는 대주주와 기존 경영진의 영향력을 현격히 줄이는 결과로 이어져 앞으로 파급효과와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업들의 전자투표제 도입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대주주의 정족수를 확보하기 위해 섀도우보팅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이에 제동을 걸자 전자투표제를 앞다퉈 도입했다. 정부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에는 섀도우보팅 폐지를 3년 간 유예해주기로 했다. 현재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147개(2월 3일 기준)이며,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전자투표제란 주주들이 실제 주주총회장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표결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에 자신의 의결권을 대주주에게 일임하던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한 전자위임장 권유 및 위임장 쟁탈전도 자주 목격될 전망이다.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확대도 주총장의 힘의 균형을 흔드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700여 투자회사 주총 안건 전체에 대한 분석 작업을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했고, 이를 토대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매우 성가신 변화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해 말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연기금의 배당 관련 주주권 행사를 경영 참여로 보지 않기로 한 점도 부담이다. 이는 연기금이 배당을 늘려달라는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렇다면 대주주·경영진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배구조 디스카운트 등으로 국내 증시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경영진은 저항보다는 주주들과의 소통 증진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2011년께 처음 등장한 ‘5번째 애널리스트 콜’과 같은 기업설명회(IR) 이벤트를 고려해 볼 수 있다. 5번째 애널리스트 콜이란 통상 재무적인 이슈로 분기마다 열리는 컨퍼런스 콜 이외에, 정기주주총회 약 2~3주 전 열리는 애널리스트 콜을 뜻한다. 여기서는 회사 지배구조의 골격과 철학, 감사위원회 활동, 이사회의 구조, CEO 승계계획 등 기업지배구조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초청 대상은 주요 기관 주주와 애널리스트 그리고 이사들이다. 실제로 미국 옥시덴틀 석유는 지난 2011년 4월 처음으로 5번째 애널리스트 콜을 개최해 기관투자자들의 환영을 받은 바 있다.국내 상장사들의 소유구조에서 기관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지지만, 기관주주들의 ‘주주 관여’는 갖가지 법·현실적 제약으로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의 ‘KB사태’에서 보듯 주주가 제대로 관여하지 못하면, 경영진이 주인 노릇을 하거나 관치가 개입할 수 있다. 대주주·경영진으로서는 최근의 환경 변화를 계기로 주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