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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 마음이 없지 길이 없진 않다 

‘불가능하다’는 건 대부분 핑계 … 도전정신 길러야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 어찌 멀다 하겠는가(未之思也 夫何遠之有)’. 1395년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삼봉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와 함께 새로 창건한 경복궁을 둘러보고 있었다. 전각에 붙일 이름과 그 이름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설명하던 정도전은 근정전 뒤에 위치한 편전으로 들어서며 말을 이어갔다.

“무릇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만백성에는 슬기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 어진 이와 불초한 이가 뒤섞여 있습니다. 번다한 만사(萬事)에도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만약 임금께서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신다면 어찌 일의 마땅함과 부당함을 구분하여 처리하고, 사람의 좋고 나쁨을 가려서 등용할 수 있겠습니까? 예부터 군주 된 자로서 누가 높고 영화로운 것을 바라고 위태로운 것은 싫어하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에 두며 나쁜 일을 꾀해 화를 당하고 패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결국 생각하지 않아서입니다. [시경(詩經)]의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랴만 집이 멀다’라는 구절을 두고 공자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 어찌 멀다 하겠는가!’라 하였으니 생각이란 이처럼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매일 이 전각에서 정무를 보시고 조칙을 내리시매 항상 깊이 생각하셔야 하오니, 신은 이 곳을 사정전(思政殿)이라 부르길 청하옵니다.” (태조4.10.7).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도전이 인용한 공자의 말은 [논어]의 자한(子罕)편에 나온다. ‘산사나무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내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랴만 집이 너무 멀구나!’라는 시를 읽던 공자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 어찌 멀다 하겠는가!(未之思也 夫何遠之有)” 간절히 그리워하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거리가 먼 것쯤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

이 구절이 주는 가르침은 비단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바빠서 시간이 없다, 나와 맞지 않다, 너무 멀다, 이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다 등등 이러저러한 핑계를 댄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할 수 없다는 이유가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는 아니었을까? 업무가 많아서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젊은 신하의 말에 정조는 “읽을 생각이 없는 것이지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질책한 적이 있다. 하루에 글 몇 쪽을 읽다 보면 그게 쌓이고 쌓여 수많은 책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인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글 한 쪽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요컨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고, 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다. 귀찮아서, 걱정이 돼서, 혹은 두려워서 아직 하지도 않은 일의 결과를 예단하고 지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을 정돈하여 마음을 다잡는다면 상황이나 여건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모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과 의지, 즉 생각에 달려 있다. 절실히 갈망하면 다가오고 진심으로 하고자 하면 이르게 된다. 공자가 “인(仁)이 멀리에 있다고? 내가 인을 바라면 인은 곧 나에게로 다가온다(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자는 또 “선생님의 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따르기엔 제 힘이 부칩니다”라는 제자 염구에게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힘껏 길을 걷다 중도에 쓰러지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 자네는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마음으로) 한계부터 긋고 있다(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고 말했다. 어떤 목표를 가졌다면, 무엇이 되길 바란다면 그것을 절실히 생각하며 자신이 가진 힘을 남김없이 쏟아내야 한다. 혹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힘이 다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끝내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도에 쓰러질지언정 힘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시도하지 않고 노력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숙종 때의 학자 김창협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세상에 사람이 못해낼 일이란 없습니다. 단지 온 힘을 다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 뭇 일들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중요하니, 진실로 이 마음을 먼저 바르게 세우고 굳건히 잡아 용맹하게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든 해내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사람의 역량에는 본래 크고 작은 차이가 있고 재능의 정도에도 강하고 약함이 있어서 그 마음을 다했음에도 역량과 재능이 끝내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량과 재능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모두 발휘하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대개 하기도 전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서 아예 능력을 시험해 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니, 온 힘을 쏟는다면 필시 못해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자 염구에게 공자는 ‘너는 금을 그어 스스로 못한다고 한계를 짓고 있다’고 하였으니, 사람의 근심은 모두 금을 긋는 데서 비롯합니다. 만약 전하께서도 요임금과 순임금의 정치를 (너무 높고 이상적이어서) 행하기 어렵다고 하신다면 이 역시 스스로 금을 긋는 것입니다.”(숙종9.8.5).

물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타고난 자질과 능력의 상한선, 운이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와 같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할 자격은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채웠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고 막연하다고 해서, 방법을 모르겠다고 해서, 번거롭고 어렵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이고 제 손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켜버리는 것이다.

해보기는 하였는가?

어느 기업가는 항상 “해보기나 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의 성공은 주변 여건이나 물질적 투입요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된 기업환경에 대응하는 것,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 구성원들의 하나 된 힘을 이끌어내는 것, 이 모두는 결국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 출발한다.

공자의 노선을 부정적으로 봤던 당시 지식인 중 한 사람은 공자를 가리켜 “불가능한 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知其不可爲而爲之)”이라고 평했다. 헛된 힘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해서, 어렵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또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성장과 발전은 꼭 결과를 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실한 마음속에서, 절실한 생각 속에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열정과 의지 속에서 우리는 바랐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77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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