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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 상상력은 당신을 어디로든 이끈다 

다니엘라 쿼시아의 새로운 온라인 맵 활용법 … 물리적 경로보다 감성적 경로가 중요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스마트폰에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의 최적 경로와 예상 소요시간까지 알려주는 온갖 애플리케이션(앱)들이 넘쳐난다. ‘네이버 지도’나 ‘구글 맵’이 대표적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용 내비게이션 단말기나 ‘김기사’ 같은 길 찾기 앱들이 두툼한 지도책을 밀어낸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가끔씩 앱의 지시(?)를 어기고 옆길이나 샛길, 아니면 그저 가보지 않은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픈 소소한 일탈을 꿈꾼 적은 없는가? 누가 알겠는가. 대로변 이면도로에서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과 가슴 떨리는 감동을 얻게 될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야후! 랩에서 소셜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는 다니엘라 쿼시아(Daniele Quercia)는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온라인 맵 활용법을 제안한다.

보통 지도 앱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최단 경로(shortest path)를 보여준다. 그 길이 매연이 지독하건, 소음이 심하건, 사람들로 북적거리건 상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촌각을 다투는 효율만능의 사회라고는 해도 우리는 아직(?) 로봇이 아닌 인간이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며, 감정을 느낀다는 말이다. 어깨를 부딪치며 휩쓸려가는 직선 경로보다는 약간 둘러가더라도 고즈넉하고 낭만적인 골목길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보스톤에 자리잡은 다니엘라는 캠브리지에 있는 직장까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경로는 스마트폰 앱에서 가르쳐 준 대로 매사추세츠 애비뉴를 통과하는 길이었다. 당연히 최단 경로이기는 했지만 항상 차들로 붐비는 길이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선가 다니엘라는 늘상 다니던 길이 아닌 옆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 길에는 차가 드물 뿐만 아니라 낙엽이 적당히 덮여 있고, 나무들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지난 한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부끄러웠다고 한다. 단지 출퇴근 시간 1~2분을 아끼려고 길 위에서 느끼는 즐거움, 자연과의 교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눈맞춤 등을 포기하며 지내 왔던 것이다.

데이터 마이닝을 연구하던 다니엘라는 새로운 맵을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개발 목표는 A에서 B까지 이동하는 최단 경로 외에 경치가 아름답거나, 조용하거나, 혹은 왠지 모르게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로를 같이 제시하는 것이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연결되는 여러 경로(직선, 곡선, 우회경로 등)를 파악하고, 그 경로상의 건물이나 도로 상황, 주변의 풍경과 사물, 행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린다. 그리고 이 중 어떤 사진이 아름다운지, 조용한지, 즐거운지에 대해 대중을 상대로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즉 일종의 온라인 서베이를 실시한다.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서베이 결과를 종합해서 A에서 B로 이동하는 여러 경로들에 대해 이름을 부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최단 경로가 항상 최선은 아니다


예컨대 수천 건의 온라인 서베이를 통해 만들어진 런던 시내의 경로 맵을 보자. 네 장의 사진은 모두 동일한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경로들인데,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장 빠른 길(Shortest), 행복한 길(Happy), 조용한 길(Quiet), 아름다운 길(Beauty)을 보여 준다! 당신이라면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최단 경로(Shortest)만을 고집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런던 지도 서베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특정 경로 상에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심지어는 특정 경로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 등을 얘기하기도 했다. 만일 이러한 것들까지 적절히 반영된다면 다니엘라가 제시한 여러 경로 외에도 중세 런던의 전통이 남아있는 길, 산업혁명 시대 올리버 트위스트가 뛰놀던 길, 대학생들이 첫 키스하기에 좋은 길 등도 나올 법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냄새가 좋은 길, 새 소리가 좋은 길, 가을에 분위기 있는 길 등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 ‘데이트하기 좋은 코스’ 소개도 기본 취지는 마찬가지).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묻는 퀴즈를 낸 적이 있다. 워낙 상품이 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응모했는데, 비행기가 가장 빠르다느니, 인적 드문 새벽에 자동차로 가는 게 낫다느니,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버스로 환승해야 한다느니 등 여러 주장이 나왔다. 그런데 결국 상을 탄 사람의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는 것이었다(가장 더딘 길은 아마도 직장 상사를 모시고 가는 길이지 싶다). 그렇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종종 경제적 효율성이나 물리법칙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같은 맥락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자랑하는 스마트 세상(smart world)은 스마트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그저 스마트폰에 갇힌 세상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기억하고 생각해 내는 수고는 이미 접은 지 오래되었고, 스마트폰의 지시에 충실한 수동적 삶이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도움없이 스스로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몇 개인지 한번 따져보라. 지하철에서 모든 승객들이 손 안의 스마트폰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광경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할 수만 있다면 정감 넘쳤던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인간다워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이제와 어쩌겠는가? 금주, 금연하듯이 스마트폰을 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할부 약정도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스마트폰과 적절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게 답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기술을 구현하는 힌트


다니엘라가 테드 강연 중에 인용한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로직은 당신을 A에서 B로 인도하지만 상상력은 당신을 어디로든지(everywhere) 인도한다.” 결국 스마트폰, 나아가 각종 첨단 IT 기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한가지 희망은 기술에 중독된 삶을 기술로 치유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휴먼 인터페이스,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습성을 이해하고 인간의 체취를 풍기는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들을 어떻게 인간답게, 또 인간의 필요에 맞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다니엘라쿼시아가 소개하는 ‘즐거운 지도’가 점점 퇴화되어 가는 인간의 감성을 회복하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따뜻하고 인간적인 기술’을 구현하는 한 가지 힌트가 되지 않을까?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280호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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