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팬택과 창업자의 엇갈린 운명 - 기로에 선 팬택 재기 발판 다지는 박병엽 

PNS 네트웍스 차려 물류업 진출 팬택은 3차 매각도 무산 … 청산 예고 


청산이냐 기사회생이냐를 놓고 기로에 선 팬택이 다시 한 번 암초를 만났다. 매각이 또 무산되면서 청산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이에 반해 팬택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다른 경로로 재기를 모색하던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은 최근 크지 않은 규모이나마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한때 국내 스마트폰 업계 2위까지 올랐던 강소기업 팬택과 창업주의 향방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4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국내외 업체들이 낸 팬택 인수의향서(LOI)를 검토한 결과 이들 업체로의 매각이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 후속 입찰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팬택은 매각 실패만 이번이 세 번째가 됐다. 앞서 팬택의 매각주간사인 삼정회계법인과 KDB대우증권은 4월 17일까지 LOI를 제출받았다. 이때만 해도 국내 2곳, 해외 1곳 등 3곳의 업체가 LOI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에서는 팬택 매각 성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 업체가 제출한 LOI에 기재된 내용이 부실하거나, 실제 매입 의사가 없거나,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인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팬택은 올 초 2차 매각 시도에서도 인수 의사를 보였던 미국의 자산운용사 월밸류에셋이 인수대금을 입금하지 않으면서 결국 매각이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처음 공개 매각을 진행했을 때는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아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법원 측은 법정관리인·채권자협의회 등과 2주 정도 논의해 향후 계획을 정할 방침이지만, 4차 공개 매각 시도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파산부의 한 관계자는 “매각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팬택의 자금 사정이 안 좋아 정상적인 매각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급박한 상황에서 재매각 보다 청산 쪽으로 일의 가닥이 잡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법원은 논의를 거쳐 5월 안으로 청산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법원이 청산 결정을 내리면 팬택은 보유 현금과 시설 등을 모두 매각해 채권단에 돌려줘야 한다. 투자은행(IB) 업계 추산에 따르면 팬택의 존속가치는 1100억원으로 청산가치(1500억원)보다 400억원가량이나 낮다. 사업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당장 청산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다. 법원도 이 같은 점을 적극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호한 법원 “4차 매각 시도는 없다”


팬택의 ‘매각 잔혹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여름 무렵이었다. 당시 2차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던 팬택은 만기가 돌아온 200억원의 빚을 갚지 못했다. 그러자 8월 채권단이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 이후 세 차례나 공개 매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팬택의 자산은 2794억원이었던 반면 부채는 9961억원에 달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팬택의 기술력과 사업적 노하우를 인정하면서도, 내수 경기가 위축된데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사실상 포화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고 있다”며 “만만치 않은 비용 부담을 뒤로한 채 선뜻 인수에 나서려는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팬택은 박병엽 전 부회장이 지난 1991년 창업한 회사다.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그는 29세 때 단돈 4000만원, 직원 6명으로 사업을 시작해 15년 만인 2006년 팬택을 연매출 3조, 전 세계 휴대폰 업계 7위 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이후 세계 경기 침체 등 악재가 겹치며 자금난에 시달린 끝에 2007년 4월 1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자본잠식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채 회사가 상장폐지까지 됐지만 박 전 부회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을 합병하고 스마트폰 개발에 전념하면서 2010년 12월 팬택을 삼성전자에 이은 국내 스마트폰 업계 2위에 올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1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 팬택도 재도약하는가 싶었지만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의 2강 구도가 심화되자 다시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2013년 들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극복하지 못했고, 박 전 부회장은 같은 해 9월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로 팬택과는 표면상 선긋기에 나섰던 박 전 부회장이었지만 재기의 꿈을 버리진 않았다. 다른 사업을 통해 꾸준히 기회를 노렸고, 아이러니하게도 팬택이 청산을 눈앞에 둔 최근 들어 그의 도전이 조금씩 빛을 보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전 부회장의 가족회사인 PNS네트웍스와 토스가 대표적 예다. PNS네트웍스는 물류사업을, 토스는 용역사업을 하는 회사다. 화물 운송 등의 사업을 하는 PNS네트웍스는 박 전 부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팬택C&I가 40%, 그의 두 아들인 성준씨와 성훈씨가 각각 30%씩의 지분을 가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전년보다 18.9% 증가한 81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5억원으로 많지 않았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PNS네트웍스가 지분 100%를 가졌고, 인력 파견과 채용 대행 등의 사업을 하는 토스도 지난해 340억원가량의 매출과 3억원가량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두 회사가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부회장 일가, 나아가 팬택의 재기 발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박 전 부회장의 개인회사인 팬택C&I가 지난해 사업 부진에 시달린 터라 그 중요성은 한층 커졌다. 시스템통합(SI)과 전자부품 도매 등의 사업을 하는 팬택C&I는 지난해 매출이 350억원으로 전년보다 17.7% 줄었고 순손실만 4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이 회사는 비록 실패했지만 지난해 컨소시엄을 구성해 스포츠토토 사업권 입찰에 뛰어드는 등 재기를 꿈꾸는 박 전 부회장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박 전 부회장이 당장에 팬택의 부활을 노릴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멀리 보고 가족·개인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며 “이들 회사의 사업이 더욱 커지고 수익성이 개선된다면 (박 전 부회장의) 재기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내다봤다.

절박한 팬택 임직원들 “고용 유지 포기”

한편, 팬택 임직원들 역시 잇단 매각 무산에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팬택 임직원 1400여명은 4월 22일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고용 유지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임직원들은 결의문에서 ‘회사 위기 책임은 경영진을 포함한 구성원 모두에게 있는 만큼, 회사 생존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것’이라며 ‘고용 유지에 대한 처분을 회사와 인수자에게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팀장급 이상 임직원 전원은 회사 생존을 조건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팬택 관계자는 “인수자가 고용 유지에 대한 부담감을 덜 갖도록 해서 회사를 지키겠다는 것이 임직원 모두의 뜻”이라며 “마지막까지 회사 정상화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1283호 (2015.05.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