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900원 붕괴4월 23일 원·엔 환율은 한때 900원선이 무너지며 7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엔 재정환율이 900원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08년 2월 28일 이후 처음이다. 최근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를 이어가면서 원화 강세를 만든 것이 원·엔 환율 하락(엔화 약세)으로 이어졌다. 원화와 엔화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가격을 비교한 재정환율로 상대적 가치를 매긴다. 가령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이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이라면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00원으로 결정되는 식이다. 즉,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가 상승하고, 반대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원·엔 환율이 하락한다.원·엔 환율은 2012년 6월까지만 해도 100엔당 1500원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양적완화를 기반으로 한 일본의 확장적 경기 부양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시작되면서 엔화 가치는 약세로 돌아섰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진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는 한국에 글로벌 투자자금이 몰린 점도 원화가치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을 뒷받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엔·달러 환율이 15% 상승하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4% 상승했다. 엔화 가치 하락 폭이 원화의 3배가 넘는다는 얘기다.일각에서는 원·엔 환율이 추가로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단기적인 요인보다 구조적 추세인 만큼 중장기 원·엔 환율 하락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양적 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기준 금리 인상 시기를 재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추가 양적 완화를 준비 중이다. 이 경우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고령화와 재정건전성 문제, 국채 시장 불안감도 일본으로의 글로벌 자본 유입을 제한해 엔저를 고착화하고 있다. 또 일본 정부는 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엔화의 이자가 싸기 때문에 엔 캐리 트레이드가 증가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 확대는 엔화 약세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국의 물가수준으로 따지는 구매력평가(PPP) 환율로 보면 (원·엔 환율은) 800원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엔저로 인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수출이다. 한국은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아 환율에 따라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일본 100대 품목 중 55개가 중복된다. 중복되는 품목이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다. 한국무역협회가 50만 달러 이상 수출 업체 654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34.9%가 자사의 수출 품목이 일본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답했다.그나마 지금까지는 엔저 쇼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대일본 수출은 많이 감소했지만,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엔저 혜택도 봤다. 일본과 수출 경합을 하는 제3국에서도 엔저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일본 기업이 수출 가격 인하에 다소 소극적이었다. 엔저로 생산 원가가 하락했지만 이를 반영해 당장 제품 가격을 내려 판매량을 늘리기보다 수출 가격을 유지해 채산성을 높인 것이다. 실제로 일본 수출 기업들은 아베노믹스 수출 물량에 비해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작년 업종별 영업이익 증가율은 철강 64.8%, 전기전자 64.7%, 건설 59.2% 등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 한국 간판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日 기업, 수출 가격 인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