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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신세의 한국 수출] 中 바짝 쫓아오고, 日 다시 도망치고 

한국 수출 경쟁력 日 ‘잃어버린 20년’ 닮아가 … 수출 부진 장기적·구조적 현상 


▎부산 부산진역에 있는 CY(컨테이너 화물 승하차 하는곳)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우울한 4월이었다. 올 4월 한국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1%나 줄었다. 1~3월 수출 감소(월 평균 -2.9%)와 비교해 감소폭은 훨씬 컸다. 더욱이 수출액은 감소했지만 수출 물량은 증가했던 1~3월과 달리 4월에는 수출액·물량이 동반 감소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5월 3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한 후 출입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수출이 생각보다 좋지 못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수출 경쟁력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초반과 유사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간다는 우려는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주로 가계부채와 인구구조, 장기 소비침체, 잠재 성장률 하락 등이 주된 근거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수출마저 일본을 닮아간다는 실증 분석이 나온 것이다. 5월 6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추격 관점에서 살펴본 한·중·일 수출 경쟁력의 변화’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골자는 이렇다.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품목과 후발 국가의 추격이라는 측면에서 장기적인 수출 부진이 시작됐던 1990년대 초반 일본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에서 중국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어 향후 중국의 추격이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가 일본을 추격해가는 속도는 점차 둔화하고 있다.’ 한때, 일본과는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고 중국과는 기술에서 앞선다는 ‘역샌드위치론’에 취했던 한국 시장이 다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중·일 수출 경합 갈수록 심화


보고서를 쓴 정규철 KDI 연구위원은 “과거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받으며 부진해진 산업에서 최근 한국이 중국의 추격을 받으며 일본과 같은 처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녹음기기 분야가 대표적인 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초 일본은 한국·중국에 비해 수출 시장 점유율이 2배 정도 높았지만, 이후 10년간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추격하며 시장 점유율을 잠식해 갔다. 하지만 2003년 이후 10년 동안에는 중국만이 점유율을 확대하며 한국의 점유율이 크게 하락했다. 다시 말해 1990년대에는 한국이 일본을, 2000년대에는 중국이 한국의 시장을 뺏어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 연구위원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과거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중국을 비롯한 후발 국가와의 경쟁으로 인해 주요 수출 품목에서 시장 점유율이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TV와 통신기기 부품의 경우 중국의 수출 잠재력을 감안하면 2017년 우리나라 시장 점유율이 30% 정도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거세게 추격하고, 잡힐 듯했던 일본이 도망가면서 한·중·일 간 수출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시장이 대표적이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미국 수입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은 꾸준히 점유율을 높였다. 일본은 2012년 이후 감소세로 전환했다. 2011~2014년 한국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0.4%포인트 상승했고, 중국은 0.8%포인트 올랐다. 반면 일본은 0.6%포인트 하락했다. 문제는 2010년 이후 3국의 수출 경합도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혜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미국 시장에서 한·일 수출 경합도가 한·중 경합도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고, 매년 경합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0~2014년 우리나라의 미국 주요 수출 품목 14개 중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의료·정밀·광학기기 등 9개 품목에서 한·일 간 경합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중국의 경우, 휴대전화와 부품, 전기·전자·조선 분야에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2010~2014년 미국 수입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하락하고 일본이 상승한 품목은 자동차·자동차 부품, 반도체, 철강 등이다. 또한 한국 점유율이 하락하고 중국이 상승한 품목은 휴대전화·전기·전자·기계류 등이다. 반대로, 일본과 중국이 하락하고 한국이 상승한 품목은 승용차·원자로부품·방송용수신기·철강관 등이다. 심 연구원은 “엔저로 인해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의 품질 경쟁력 향상으로 인한 추격도 거세지고 있어 향후 일본·중국과의 수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수출 감소폭 > 세계 교역량 둔화폭

우리나라의 수출 부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수출 감소세는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수출 물량 증가율도 점차 나빠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수출 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0.8% 줄었다. 더욱이 가전·TV·승용차·디스플레이·석유화학제품 등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이 대부분의 수출 대상국에서 줄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수출 부진이 경기 탓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데 우려를 나타낸다. 세계 교역량의 둔화폭보다 우리 수출 감소폭이 훨씬 큰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로 주력 제품의 수출 단가 하락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라며 “최근의 수출 부진은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적·구조적인 현상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내외 환경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수출에서 내수로, 가공무역에서 소비재 수입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기조 변화와 성장 둔화로 우리 수출은 상당기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저유가 국면도 장기화할 조짐이고, 환율시장 역시 원화 강세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수출 가격 경쟁력 악화가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1285호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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