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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례로 본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명암] 잇단 사고에 노인천국 日서도 불신 깊어 

건강기능식품 파동에 시장 급랭 … 국내 홈쇼핑 등 유통 채널 변화 불가피 


▎일본에서는 약국을 비롯한 일반 소매 판매점에서 건강기능식품 판매가 늘고 있다. 사진은 일본 최대의 드러그스토어 마츠모토 키요시. / 사진:야후재팬 제공

가짜 백수오 파동은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끼칠 전망이다. 한국소비자원이 가짜 백수오 조사 결과를 발표한 4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건강기능식품 매출을 살펴보면 홈플러스는 전년 동기 대비 20%, 롯데마트는 16.4% 급감했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신뢰가 추락했고,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10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건강기능식품 파동을 통해 가늠해 봤다.

시장 커지면서 제품 난립

타마키 타다시 전 니케이 서울지국장은 “10여년 전 일본에서는 크고 작은 건강기능식품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며 “무분별한 건강기능식품 수입이 일본 국민의 안전을 해치고, 의약품 생태계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건강기능식품의 폐해가 여러 차례 발생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백수오 파동처럼 가짜 재료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검증되지 않았거나 허용되지 않은 재료를 이용해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일본은 2000년대 초, 고령화 사회와 웰빙 열풍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급성장했다. 일본의 건강식품 시장 규모는 지난 1998년 5000억엔(약 4조6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02년에는 1조5000억엔(약 13조7000억원) 수준으로 불과 4년 만에 3배 이상 성장했다. 당시 다이어트나 근력 강화, 피로 회복 관련 제품부터 어린이 성장과 피부 미용, 두뇌활동 강화 등의 기능성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효능·효과가 불분명한 제품이 난립했고,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5년 일어났던 ‘천천소(天天素) 파동’이다. 천천소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다이어트 보조 식품으로 주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일본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그러나 복용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구토·설사 증세와 어지러움·복통·갈증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속출했다. 입원 치료 중에 1명이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 제품은 판매가 금지됐고, 판매자는 사법처리됐다.

미국에서 생산된 식물성 흥분제인 ‘에페드라(ephedra)’도 물의를 일으켰다. 에페드라는 독성이 있는 식물인 마황(麻黃)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만든 다이어트·건강보조 식품으로 일본에는 2001년 상륙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3년 스티브 베츨러라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가 이 제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하자 수입이 급거 중단됐다. 이 제품의 부작용으로 당시 미국에서만 155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됐다. 일본에서는 이 제품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 사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중적으로 유통되던 제품에 치명적인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 있었다.

2004년에는 관절염에 효능이 있다며 글루코사민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지나친 판매 과열로 저질 원료가 범람한 탓에 수입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했는데, 염산처리가 되지 않은 불량 재료가 범람하면서 소비자들의 건강기능식품 불신을 부채질했다. 이 밖에도 중국에서 수입된 화북수미·촉옥·섬지소요환·차소감비 등 여러 다이어트 보조제 및 자양강장제가 간·갑상선 기능 이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이 여파로 일본에서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일본의 특정보건용 식품 시장은 1999년 2269억엔 규모에서 2007년 6982억엔까지 성장했다가, 각종 사고 여파로 지금은 5000억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정부는 각종 건강기능식품이 물의를 일으키자 규제 강화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건강기능식품과 관련해 제품 포장에 ‘눈 기능 개선’ ‘체지방 감소’ ‘신체 활력 강화’ 등의 효과 표시를 못 하게 하고, 포함된 성분을 면밀하게 적게 했다. 또 건강식품에 대한 법 규제 및 행정감시, 처벌 규정을 강화하면서 벌금·형량도 높였다. 이는 판매·구매 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가 올해 6월부터는 기능 표시를 부활시키기로 했으나,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효능을 입증했을 경우만 허용하기로 하는 등 여전히 엄격한 모습이다.

처벌 규정 강화와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꺼지면서 유통시장에도 변화가 일었다. 신뢰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다소 번거롭더라도 방문판매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고가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중반에는 전체 건강기능식품 판매액의 절반 가까이가 방문판매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방문 판매 방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깨지면서 방문판매의 비중은 매년 1~2%포인트씩 감소, 지난 2012년에는 34.9%로 하락했다.

약국·편의점에서 음용 가능한 제품 인기

이에 비해 비교적 신뢰할 만한 약국과 식품계(식료품을 취급하는 편의점·양판점·수퍼마켓 대상 도매상) 채널을 통한 판매량은 늘고 있다. 이 경로를 통한 건강기능식품 판매는 201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매년 100%에 가까운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제품을 멀리하고, 대기업 제품에 대한 선호 심리가 강해진 점도 일반 소매 유통망이 확대되는 데 영향을 줬다. 또 과거에는 신체 기능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기능 의약·한약재가 시장의 주류였다. 이에 비해 현재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판매 채널의 변화를 불러왔다. 야노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통신, 일반 소매점 등 약국계 채널이 확대되고 있다”며 “특히 기능성 음료의 주력 판매처로 정착한 편의점을 중심으로 식품계 채널이 견조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TV홈쇼핑이 백수오를 비롯해 건강기능식품의 주된 판매창구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로 유통 채널이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홈쇼핑 업체들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업체별로 기준을 정해 가짜 백수오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환불할 방침이다. 최근 3년 동안 홈쇼핑을 통해 약 2900억원 규모의 백수오 제품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업체별로는 홈앤쇼핑 1000억원, 롯데 홈쇼핑 500억원, CJ오쇼핑과 GS홈쇼핑이 각각 2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 허가 상품을 정상적으로 판매한 것인데, 배상 책임은 모조리 판매자 측이 지게 됐다”며 “이번 일로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1285호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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