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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의지로 주량을 조절할 수 있다”세종은 술을 삼가는 일이 뭐가 어렵느냐고 말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그것은 사실 만만치 않은 과제다. ‘첫 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둘째 잔은 술이 술을 마시며, 셋째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옛 말처럼 일단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술에 취해 통제력을 잃게 된다. 술에 중독되어 시도 때도 없이 술을 찾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논어(論語)] ‘향당(鄕黨)’편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공자의 음식 습관을 소개하는 말 중에 ‘술의 양에는 한정이 없었지만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공자의 주량이 대단해서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술을 미리 몇 잔 마시겠다고 양을 한정해 놓진 않되 몸가짐이 흐트러지기 전에 멈췄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이 구절은 실록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효종의 말이다. “요즘 젊은 신하들은 거리낌 없이 술을 잘 마셔야 칭찬을 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고 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량에 한정이 없어도 취해 흐트러지지 않음은 공자 같은 성인(聖人)이나 가능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한 번 술잔을 들면 반드시 어지러워지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마셔대니, 반드시 삼갈 줄 알아야 한다. 평소에 술을 즐기더라도 마음으로 굳게 결심한다면 술을 끊는 일이 뭐가 어렵겠는가! 내가 세자가 된 다음부터 술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술 생각이 저절로 없어졌다. 이를 보면 술을 끊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효종3.8.19). 공자처럼 술을 마셔도 어지럽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보통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경지가 못되니 아예 술을 끊으라는 것이다.몇 년이 지나 효종은 송시열로부터 아직도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효종이 그렇다고 하자 송시열은 “그러나 그 마음은 순식간에 방종해지기 쉬운 것이니 시종 경계하여 삼가도록 하소서”라고 말한다. 술의 중독성은 매우 심하기 때문에 끊은 지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효종은 “경의 말이 옳다. 술을 잘 마시는 사대부들이 모두 나와 같이 술을 끊는다면 다행이겠다”고 대답했다(효종9.11.21). 숙종도 [심경(心經)]의 ‘술을 마실 때는 그 양을 한정하지 않으나 흐트러지는 데 이르러서는 안 되는 것이니, 흐트러지게 되면 안으로 심지(心志)를 어둡게 하고, 밖으로는 위의(威儀)를 해치게 된다(앞에서 소개한 공자의 말에 대한 해설)’는 구절을 거론하며 “예나 지금이나 가산을 탕진하고 몸을 망치는 것은 모두 술 때문이니 깊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숙종9.9.2).그런데 정조 때에 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조는 술에 취해 궁궐 담 아래에서 자다가 통행금지 위반으로 체포된 진사 이정용에게 이렇게 지시했다.“근래에 조정의 관료건 유생이건 주량이 너무 적어서 술의 풍류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 유생은 술의 멋을 알고 있으니 매우 가상하다. 술값으로 쌀 한 포대를 내려주도록 하라.”(정조20.4.12). 임금이 나서서 음주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조도 공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소위 ‘주량(酒量)이 있다’는 자가 술에 의해 부림을 당하여 절주(節酒)를 하고자 하면서도 절주를 하지 못하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 중에서도 심한 경우가 아닌가. 절주를 해야 할 때는 절주를 해서 비록 반 잔의 술이라도 입에 대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을 때는 마시되 비록 열 말의 술이라 할지라도 마치 고래가 바닷물을 들이켜 마시듯 해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주량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오직 술의 양에는 한정이 없다’고 하셨으니, 여기서 ‘한정이 없는 술’이란 곧 ‘술을 한정 있게 마신다’는 의미이다.”(홍재전서178권). 정조가 생각하기에 술을 아예 안 마시는 것도, 술에 취해 흐트러지는 것도 둘 다 좋지 못하다.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때는 마시지 않고, 마셔야 할 때는 맘껏 가득 마시며 스스로를 잘 컨트롤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는 공자가 주는 교훈 또한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지나친 음주는 경계요컨대 술을 무조건 금지할 필요는 없다. 세종도 인정했던 것처럼 제사를 지내고 손님과 벗을 접대하며 어른을 섬기는 일에 술이 없어서는 안 된다.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되고 건강을 위한 약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것이고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술에 취해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다가 논란이 된 사람들은 ‘술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핑계를 대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제어하지도 못할 술을 마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야 마시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고 술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