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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의자 고치는 여인>의 ‘기본적인 귀인오류’ 

개인의 성향·기질에서 문제의 원인 찾아 외부 상황이나 환경은 무시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일러스트:중앙포토
사랑이 항상 달콤한 건 아니다. 고통을 동반한다. 서로 사랑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라면 더 그렇다. 헤르만 헤세는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은 우리들이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헤세의 사랑론에 동의한다면 모파상의 <의자 고치는 여인>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19세기 자연주의 작가 중 가장 뛰어난 단편 작가로 불리는 모파상은 작가 생활 10년간 300여편의 단편 소설과 6편의 장편 소설, 수많은 희곡과 시를 발표했다. 모파상의 작품들은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이 배경이 된다. 그 속에서 인생의 잔상을 끄집어 내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마법이 있다.

사랑은 귀족만 한다?

<의자 고치는 여인>은 해마다 성으로 의자를 고치러 오는 노파다. 그녀는 약제사 슈케를 평생 사모했다. 시작은 11살 때다. 그녀는 친구에게 동전을 빼앗기고 우는 어린 슈케를 보고 그간 모아놨던 돈을 줬다. 슈케는 그 돈을 받으며 마음을 달랬고,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슈케에게 첫 키스를 했다. 그녀는 의자를 고치고 돈을 받을 때마다 슈케를 생각하며 돈을 모았다. 소년은 유복했지만 남루한 소녀가 주는 돈이 싫지 않았다. 소녀는 볼 때마다 소년에게 돈을 줬고, 그 대신 키스를 하도록 내버려 뒀다. 중학교에 들어간 소년은 소녀를 외면했고, 그럴 수록 소녀의 집착은 더해갔다. 마침내 슈케가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연못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밤늦게 지나던 주정꾼이 그녀를 구해 약국에 데려다 줬고, 슈케가 그녀를 치료한다. 슈케 상점에서 의약품을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그녀는 결국 죽는다. 죽으면서 평생을 모아온 돈을 남긴다. 2327프랑. 뒤늦게 그녀의 사랑을 전해들은 슈케와 그의 아내는 불쾌해 하지만 그녀가 남겼다는 돈 얘기를 듣자 행동이 바뀐다. 슈케는 그녀가 남긴 돈으로 철도채권 5주를 사고, 그녀가 남긴 마차는 원두막으로 썼다.

<의자 고치는 여인>의 무대는 베르트랑 후작 저택의 만찬 자리다. 귀족들은 ‘사랑’을 주제로 대화하다 논쟁을 벌인다. 진실한 사랑은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남자들은 “사랑은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질병처럼 한 사람이 여러 번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여자들은 “참된 사랑은 인간에게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사랑의 벼락을 맞으면 마음이 타버리고 황폐화돼 어떤 감정도 다시 싹틀 수 없다는 것이다.

논쟁이 끝나지 않자 만찬에 참석한 한 의사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러자 의사는 ‘의자 고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의사가 “내가 아는 경우는 하루도 쉬지 않고 55년간을 이어오다 죽음으로 끝맺은 사랑”이라고 말하자 후작의 부인이 손뼉을 치고 말한다. “그처럼 통렬한 애정에 둘러 쌓여 55년을 살았으니 얼마나 황홀할까요! 그토록 사랑을 받은 남자는 얼마나 행복했고 인생을 축복했을까요!”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의사가 “그 여자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해마다 성으로 의자를 고치러 오는 노파랍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후작 부인이 코웃음 친다. 

자신의 손을 들어준 의사에 고마워하다가 후작 부인은 왜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을까. 자신이 기대했던 ‘지고지순한 사랑’을 준 사람이 귀족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작부인의 머릿속에는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귀족뿐 이라고 생각한다. 돈도 없고 남루하고 더러운 서민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는다. 후작부인은 ‘기본적인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에 빠져있다.

기본적인 귀인 오류란 어떤 일이 발생한 원인을 개인적인 성향이나 기질 등 내적 문제에서 찾으려는 것을 말한다. 외부 상황이나 환경은 무시한다. 귀인(歸因)이란 ‘원인을 무엇의 탓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기본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은 이런 심리가 매우 보편적이고 너무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남학생의 국어 성적이 나쁘다. 그러자 말한다. “남자는 원래 언어 능력이 약해”라고. 하지만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 학생은 어릴 때부터 독서 대신 TV를 즐겨보고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국어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 일시적으로 국어를 멀리할 수도 있다.

미국 듀크대 연구가들은 1967년 한 연설가에게 실험 참가자들 앞에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옹호하는 연설을 열정적으로 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 연설에 연설자의 의중이 반영됐는지 판단해 보라고 했다. 사전에 ‘연설자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공된 대본을 읽는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실험 참가자들은 연설자의 생각이 연설에 포함됐다고 답했다. 연설자가 답을 하도록 한 외부 요인, 즉 사전에 준비된 대본 문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귀인오류를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이유는 문제를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냥 개인 탓으로 돌려버리면 되기 때문에 복잡할 수 있는 여러 환경 요인들을 따로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또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지만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관계를 맺는 것은 어차피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한 할아버지가 버스에 탔는데, 노약자 자리에 앉은 청년이 힐끔 쳐다보더니 일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어른이 앞에 있는데 일어나지 않다니 넌 애미애비도 없느냐”고 야단을 쳤다. 꿈쩍도 않던 청년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런데 그 청년은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인이었다. 순간 버스안은 숙연해졌다. 야단을 쳤던 할아버지도 낭패한 얼굴이 됐다. 버스안 승객들은 ‘청년=신체건강’이라고 생각했다. 그 청년이 처한 다른 외부적 환경은 생각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귀인오류의 전형적인 사례다.

환경 요인 분석은 소홀하게 마련

후작 부인은 진정한 사랑은 귀족들만이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귀금속을 지녀 화려한 치장을 하고 예의범절을 배운 사람만이 상대에게 매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기대가 깨어지니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다. 돈도 없고 거렁뱅이 같은 노파가 약제사를 사랑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노파의 일생을 듣고서야 후작부인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정말이지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여자뿐이예요.” 노파의 인생을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다.

기업의 성과가 나쁘다며 CEO를 먼저 자른다던가, 야구팀 성적이 나쁘다고 감독을 일방적으로 해고해버리는 것은 근본적 귀인오류의 결과다. 기업의 나쁜 성과나 야구팀의 좋지 않은 성적은 감독 개인 외 팀 분위기나 투자, 부상 선수 정도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CEO를 자른다고, 감독을 해고한다고 무조건 성과가 좋아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주식은 무조건 뛴다’ 던가 ‘그 나라 주식시장은 무조건 좋을 거야’라며 투자해본 적이 없을까. 한때 줄 서서 가입했던 인사이트펀드나 잘나갔던 브라질 펀드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금융경색이 오고 정치 불안과 재정적자가 겹친 탓이다. ‘원래 좋은 주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1285호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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