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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말은 행동을, 행동은 말을 돌아본다 

언행일치 되지 않아 비판 받은 성종과 고종 … 신뢰받는 리더십과 직결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중국 송나라 때의 일이다. 젊은 학자 유안세(劉安世)가 당대의 석학 사마광([자치통감]의 저자)에게 질문했다. “수만 개의 한자 중에서 가장 새겨야 할 글자는 무엇입니까? 죽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실천해야 할 글자를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사마광이 대답했다. “정성 성(誠)자 일세.” 유안세가 다시 물었다. “정성을 다하려면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사마광이 답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네.”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일단 꺼낸 말은 행동과 일치시키라는 것이다. 유안세는 처음 이것이 매우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평소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바로잡으려고 보니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해서 힘껏 노력한 지 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겉과 속이 하나로 호응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언행일치에 7년 걸린 유안세

효종 5년 6월 17일, 사헌부는 유안세의 이 일화를 거론하며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상소를 올렸다. “저 유안세는 그저 한 사람의 선비일 따름입니다. 교유하는 사람이라야 집안의 친척, 한 동네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위치에 있는 관리들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니 서로 방해되고 모순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은 과연 어떻겠습니까. 크나큰 나라와 많고 많은 백성을 상대하며, 날마다 갖가지 변화무쌍한 일을 만나고 온갖 사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마주해야 하니, 말에 실수가 없으려 해도 어찌 쉽게 되겠습니까!”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평범한 개인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임금의 경우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마광의 말처럼 성실하기 위해서인가?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보다 절실한 이유는 신뢰의 문제가 직결돼 있어서다. 무릇 실천하지 않는 말은 공허하고, 말과 어긋나는 행동은 힘을 잃는 법이다. 입으로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훌륭한 말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말처럼 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에 대한 기만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속이는 것이다. 전에는 그렇게 말했으면서 지금은 반대로 행동하고 자기는 이렇게 행동했으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다르게 행동하라고 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중용] 13장에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본다(言顧行 行顧言)’는 구절이 나오고, 맹자가 ‘진심(盡心)’ 하편에서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성인의 가르침을 내세우고 거창한 대의를 말하는 행태’를 비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따라서 말을 꺼내면 이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고 행동을 하면 그것이 말과 부합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할 말을 이야기하고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 한번은 성종이 간언을 잘 듣겠다고 말해놓고 간언이 올라오자 이를 무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무령군 유자광이 곧바로 비판했다. “전하께서 지난 번 사간원의 차자(箚子)에 비답하시길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게 되고, 임금은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된다 하니 내 일찍이 이 말을 세 번 반복해 되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민(臣民)이 모두 기뻐 경하한 지 이제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지금 전하께서 대간(臺諫)의 말을 윤허하지 않으시니,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본다는 도리에 비춰볼 때 과연 어떻습니까?”(성종8.8.23). 왜 앞서 한 말을 지키지 못하냐는 것이다. 고종은 신하들로부터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할 바에야 말씀을 하시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라는 핀잔을 들었다(고종41.7.15). 이처럼 말과 행동을 하나로 만들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다른 유교 경전에서도 빈번하게 거론됐다. [대대예기(大戴禮記)] ‘증자입사(曾子立事)’편에 보면 ‘사람은 반드시 그 말을 믿을 수 있어야 하니 그래야 그 말을 따라 행할 수가 있다. 사람은 반드시 그 행을 믿을 수 있어야 하니 그래야 그 행동을 따라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대목이 나오고, [예기] ‘치의(緇衣)’편에는 ‘말만 하고 행하지 못할 것이라면 군자는 말하지 않는다. 행하기만 하고 말하지 못할 것은 군자는 행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논어] ‘위정(爲政)’편의 ‘그 말을 먼저 행동으로 보이고 그런 다음 말이 행동을 따르게 하라’, ‘이인(里仁)’편의 ‘옛 선현들이 말을 쉽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실천이 이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헌문(憲問)’편의 ‘군자는 말이 행동에 앞서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문장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말과 실천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앞에도 언급했듯이, 신뢰의 구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리더가 명심할 필요가 있다. 멜 깁슨이 주연한 전쟁영화 [위 워 솔저스]에서 부대를 이끄는 멜 깁슨은 이렇게 말한다. “전투에 투입되어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릴 때 내가 제일 먼저 적진을 밟을 것이고, 맨 마지막에 적진에서 나올 것이며,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의 이 말은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는데 단순히 말이 멋있어서가 아니다. 주인공이 항상 그렇게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말, 책임질 줄 아는 말을 했기에 그와 같은 힘이 발휘된 것이다. 백의종군에서 풀려나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에게 수많은 백성이 모여들고 그의 단호한 말에 감명 받았다. “전선(戰船)이 비록 적다고 할지라도 신이 죽지 않은 이상 왜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충무공전서]. 이 말에 선조가 수군을 폐지한다는 결정을 철회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행동으로써 자신의 말을 입증해왔기 때문에 비록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변함없는 신뢰를 받은 것이다.

행동하기 힘들면 차라리 침묵하라

흔히 리더십은 신뢰자본(trust capital)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신뢰는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접착제이면서 리더와 구성원을 잇는 연결고리이다. 구성원이 리더의 비전을 따라 리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더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리더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 어떻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믿고 그 사람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신뢰를 확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말과 행동이다. 사소한 것에서까지 리더의 언행이 일치될 때 구성원들은 리더를 믿게 된다. 리더가 진심 어린 말을 하고 그 말을 반드시 실천하며 그 행동에 책임을 질 때 신뢰자본이 쌓이는 것이다. 리더의 말과 행동이 서로 일관되는 모범을 보일 때 리더십은 비로소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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