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일본에서 발표한 혼다 S660은 2인승 스포츠카다. 658㏄ 터보 엔진을 단 경차로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리얼 펀(Fun)카’다. 시트 뒤쪽에 엔진을 두고 뒷바퀴를 굴리는 MR(Mid-engine, Rear-wheel-drive) 구동계를 지녔다. 컨버터블로 변신하는 탈착식 소프트톱도 갖췄다.
S660은 차체 레이아웃만으로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정통 슈퍼카가 부럽지 않다. 이 차는 일본 경차 규격 만족을 위해 차체 크기가 (길이x너비x높이) 3395x1475x1180mm에 불과하다. 엔진 배기량도 중형 오토바이 수준이다. 혼다는 개발 배경에 대해 “경차 스포츠카를 개발해 더많은 사람이 스포츠카를 모는 즐거움을 느끼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차는 등록세, 통행료, 주차비 등을 할인받아 유지비를 아낄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차고지 증명도 면제를 받는다.
일본은 경차 천국이다. 지난해 일본 전체 신차 판매는 556만대였다. 이 가운데 41%인 227만대가 경차다. 전체 승용차 판매 1위도 경차인 다이하츠 탄토(23만4456대)가 차지했다. 베스트 10 모델 가운데 경차가 무려 7개나 된다. 경차가 일본 자동차 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른 또 다른 비결은 여유로운 실내와 편의성을 꼽을 수 있다. 탄토, 혼다 N-박스 같은 베스트셀링 경차는 기아 레이의 생김새처럼 박스형이다(사실 레이가 일본 박스형 경차의 카피 모델이다).경차는 각종 세금혜택 등 유지비가 저렴하다. 차체가 작아 좁은 일본 도로 주행에 잘맞고 주차도 손쉽다. 여기에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르는 장기 경제불황이 겹친 것도 한 이유다. 과거 버블시대를 이끈 베이비붐(일본에서는 ‘단카이’라고 부른다) 세대와 달리 최근 일본 젊은층의 호주머니 사정은 매우 나쁘다.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프리타’만 100만 명이 넘을 정도다.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여기는 일본의 소비 트렌드에 따라 경차는 여러 모델로 진화한다. SUV 붐을 고려한 크로스오버 경차도 인기다. 지난해 등장한 스즈키 허슬러가 대표적이다. 출시 10일 만에 2만5000대가 팔렸고 출고 대기가 최장 1년에 달할 정도다.1949년 경차 관련법을 만든 일본은 그동안 몇 차례 개정을 거처 현재는 길이x너비x높이가 3400x1480x2000mm를 넘지 않으면서 엔진 배기량이 660cc 미만 (최고출력 64마력 제한)인 차를 경차로 분류한다. 이는 우리보다 차체는 길이 20cm, 너비 12cm가 작고 엔진 배기량도 360cc나 부족하다. 승차정원도 일본 경차는 4명으로 우리보다 1명 작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메이커 입장에서는 실내가 좁고 파워가 부족한 제약을 뛰어넘기 위한 기술개발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충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고강성 차체에 출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터보차저, 가변밸브시스템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스즈키, 다이하츠 같은 경차 전문 메이커에 혼다, 마쓰다, 미쓰비시, 닛산 등이 경차 시장에 뛰어 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결국 틈새 수요라도 잡기 위해 쿠페, 미니밴, SUV 등의 다양한 모델이 개발됐다. 심지어는 공간과 무게를 고려할 때 경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동식 하드톱을 채택한 다이하츠 코펜 같은 차도 10여 년 전에 이미 나왔다. 아쉽게도 최근 사정은 달라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급스럽고 다양한 편의장비를 지닌 박스형 경차가 대세다. 메이커 입장에서도 차 값을 올려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앞다퉈 박스카를 내놓은 이유다. 시판 중인 60여 종의 경차 가운데 절반이 박스형이다.박스형이 대세인 가운데 경형 스포츠카인 S660에 더 시선이 쏠린다. 혼다는 자사의 첫 양산차 출시 전인 1963년 이미 전세계 모터스포츠의 최고봉 F1 그랑프리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잘 달리는 차’에 대한 열정을 가진 브랜드다. 2000년대 들어 수익성이 높은 RV 출시에 역량을 집중해 과거의 카리스마가 크게 희석되기도 했다. 2009년 일본의 진정한 슈퍼카로 인정받는 초대 NSX 개발 엔지니어 출신인 이토 다카노부 사장이 취임하면서 다시 ‘재미있는 차’에 눈길을 돌렸다. 그는 먼저 혼다의 성지(聖地)나 다름없는 F1 그랑프리에 엔진 공급자로 다시 진출하는 것을 결정했다. 또 NSX 후속 모델 개발을 부활시키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후임 하치고 타카히로 사장은 오딧세이(북미형 1세대)와 CR-V(2세대)의 개발을 이끈 엔지니어 출신이다. 혼다는 전통적으로 이공계 연구소 출신이 사장 자리에 오른다. ‘엔진의 혼다’로 불렸던 자신만의 DNA다.이토 다카노부 사장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0년, 혼다기술연구소 50주년을 기념해 사내에서 신상품 기획전이 열렸다. 어린 시절부터 혼다를 동경해오다 입사한 연구원 무쿠모토 료는 “유지비가 저렴한 친근한 스포츠카라면 오랫동안 사랑받는 차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기초로 S660의 컨셉트를 구상한다. 1991년 데뷔한 비트의 계보를 잇는 MR 구동계와 소프트톱을 지닌 경형 스포츠카다.입사 4년차 고졸 모델러인 료의 제안은 800여 개 응모작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이어 2.0L급 스포티한 승용차나 정통 스포츠카 개발을 고민하던 경영진에게도 전달됐다. 최종적으로 경형 스포츠카 개발을 결정했고 ‘최초 컨셉트를 제안한 자가 프로젝트 책임을 맡는다’는 혼다의 전통에 따라 료가 개발팀장이 됐다.
▎혼다는 단순히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경형 스포츠카가 아닌 정통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모델을 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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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팀은 단순히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경형 스포츠카가 아닌 정통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성능을 갖춰 더 많은 운전자가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혼다 스포츠카의 시발점인 S500, S600의 연장선상에 있는 S660을 차명으로 채택한 배경이다.
▎스포츠카의 기능성을 강조한 실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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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는 사이드 빔과 센터터널을 강화해 S2000을 상회하는 비틀림 강성을 지니도록 했다. 리어에는 경차 최초의 알루미늄 서브 프레임을 갖췄다. 모두 무게를 늘이지 않고 견고함을 유지할 수 있는 해법이다. 이상적인 무게배분을 위해 연료탱크를 시트 뒷바닥에 최대한 붙이고 배터리는 앞차축 가까이 배치했다. 미드십 스포츠카의 특징을 살린 프론트는 전형적인 쐐기형 보디에 롤바를 겸하는 B필러와 에어로핀 형태의 엔진 후드가 더해져 스타일이 살아났다. 떼어낸 소프트톱은 말아서 보닛 아래 화물공간에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시속 70km에서 작동하는 팝업식 리어윙도 갖췄다.
▎1. 떼어낸 소프트톱은 말아서 보닛에 있는 수납공간에 보관할 수 있다./ 2. 작은 엔진이지만 박력 있는 사운드를 내도록 설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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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기능성을 제대로 살렸다. 스포츠 시트, 스틸 페달이 스포츠카로서의 분위기를 돋운다. 운전석을 감싸듯 곡면을 그리는 센터 페시아에는 공조장치 스위치와 오디오를 배치했다. 오픈 스포츠카의 특성을 고려해 탑승자의 하체에 냉난방 송풍이 집중되게 했다.3기통 658cc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64마력, 최대토크 10.6kg/m를 낸다. 낮은 회전 영역에서는 민감한 터보가 원활한 토크 분출을 돕는다. 6단 수동의 경우 엔진 회전수 레드존을 최고 7700rpm(7단 수동 기능의 CVT 모델은 7000rpm)까지 끌어올려 고회전까지 쭉 밀어붙인다. 작은 엔진이지만 사운드는 박력 넘치게 설계했다.대구경 브레이크와 어자일 핸들링 어시스트(코너에서 좌우 브레이크를 조작해 코너링을 돕는 장치)를 더해 안정적으로 기민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타이어는 앞 15, 뒤 16인치가 끼워진다. 혼다 S660의 트림은 두 가지다. 알파(218만엔)와 베타(198만엔)로 5월 15일 기준 환율(914.5원/100엔)로 1812만~2178만원이다. 별도 부담 없이 6단 수동변속기나 CVT를 선택할 수 있다. 펄화이트 보디에 레드 소프트톱을 얹어 660대 한정 판매하는 컨셉트 에디션(238만엔)은 출시 한 달 만에 완판됐다. 매달 800대를 생산하지만 이미 1년치가 동이 났다.가장 인기 있던 경차 다이하츠 탄토의 가격이 122만~187만4000엔(약 1116만~ 1714만원), 혼다N-박스 127만~201만5000엔(1161만~1843만원)을 비교해보면 S660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 최저가 경차인 스즈키 알토의 69만7000~140만5000엔 (637만~1285만원)과 견주면 차이가 더 커진다.일본 경차 시장에서 S660은 매우 비싸지만 혼다에게 수익을 남겨주는 것도 아니다. 상당수 조립공정이 수작업이라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혼다는 이십 년 만에 경형 스포츠카를 양산한다. 이는 자동차가 주는 즐거움을 찾는 마니아 계층을 두텁게 하고 골수 혼다 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다. 오직 시장에서 잘 팔리는 차종 출시에만 전력하는 한국 메이커들과 비교해 일본 업체의 여유와 저력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