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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 ⑩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주방의 페라리’로 도약하는 청소기의 원조 

발렌베리그룹 소유의 유럽 최대 가전업체 ... GE 가전사업부 인수로 북미시장 새 날개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한다.

“일렉트로룩스 가전을 ‘주방의 페라리’같은 존재로 만들 것이다.”

스웨덴 가전기업 일렉트로룩스의 CEO인 키이스 맥로린이 지난해 열린 자사 행사에서 공언한 내용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난 아마 사내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일 것”이라며 “그럼에도 우리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2011년 CEO를 맡은 후로 일렉트로룩스는 연구개발(R&D) 비용을 50% 늘리는 동시에 수 십 억원의 비용 절감을 단행했다. 그는 “혁신만이 ‘중지방(mid-fat) 우유(평균 수준에 그치는)’의 나라 기업에서 벗어나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일렉트로룩스에 합류해 북미와 남미 가전시장을 총괄한 맥로린 대표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 주력했다. 현재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유럽 29%, 북미 33% 수준이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부를 33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북미 가전시장 1위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 매출액 37억 달러(4조1000억원), 영업이익 1억8000만 달러(1936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26.6%, 영업이익은 20.4% 증가한 수치다. 성공적인 제품 포트폴리오 운영으로 유럽지역 사업의 원가 절감에 성공했고, 유럽과 아시아의 프리미엄 청소기와 소형가전 매출 증가도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일렉트로룩스는 명실 상부 유럽 최대의 가전업체다. 전세계 150여 개국에서 가전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연매출액이 1120억 크로나(약 15조68억 원)에 이른다. 일렉트로룩스 그룹이 판매하는 가전제품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생활가전에서 부터 호텔·레스토랑 등 상업용 가전 까지 다양하다. 생산 제품의 60%는 주방가전이다. 냉장고를 비롯해 믹서기·무선주전자·커피메이커 등 소형 가전이 주를 이룬다. 그 다음을 세탁기(17%), 청소기(8%) 등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가전업계 트렌드로 떠오른 프리미엄 가전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주방 소형가전에 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북유럽 디자인의 강점을 살려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청소기의 경우 전원선을 없앤 무선청소기에 고성능 배터리를 장착해 다이슨(영국)·밀레(독일) 등과 함께 국내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문상영 일렉트로룩스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프리미엄 제품 론칭행사에서 “청소기 시장이 정체돼 있긴 하지만 소비자들의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는 점점 높아져 고가 제품 매출이 커지는 추세”라며 “향후 공격적 마케팅으로 프리미엄 가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주방가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힌 바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 역시 프리미엄 가전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성능·디자인 내세운 프리미엄 가전시장의 선두주자


▎일렉트로룩스가 1912년 선보인 세계 최초의 가정용 진공청소기 Lux1(왼쪽)과 울트라 시리즈.
지금은 5000만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로 성장했지만 이 회사의 자존심은 청소기에서 비롯된다. 일렉트로룩스의 역사가 곧 청소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자 악셀 베네그렌은 1912년 세계 최초로 가정용 진공청소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미 그보다 앞선 1901년, 영국에서 진공청소기가 개발되긴 했지만 무게가 50kg에 달해 마차에 싣고 다녀야 할 정도로 무겁고, 소음도 심했다. 일부 청소업체들이 대형 공간을 청소하는 용도로만 쓸 뿐 가정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베네그렌이 일렉트로룩스를 설립하기 전 룩스사와 합작해 발명한 ‘룩스1(Lux 1)’은 12kg 정도의 무게로 당시에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주목 받았다. 베네그렌은 영업사원들에게 룩스1을 들고 일일이 가정을 돌아다니게 했다. 이른바 방문판매 방식을 스웨덴에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영업사원들은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청소기를 끌고 거리에 나섰는데, 이는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유럽에서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남편의 결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남성들은 가전이기 전에 기계인 청소기에 매혹됐고, 곧 진공청소기는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모델은 다소 무거운 무게 탓에 나중엔 가정용보다는 병원이나 사업장에서 널리 쓰였다.

베네그렌은 가정용 청소기의 성공에 힘입어 1919년 일렉트로룩스를 설립했다. 룩스1 이후 청소기는 계속된 연구개발을 통해 크기를 줄이고 사용성을 높이는 다양한 기능이 접목되기 시작한다. 1921년 선보인 ‘모델V’라는 제품은 바퀴 역할을 해주는 썰매날 ‘러너’가 달려있어 이동이 가능한 제품으로 주목 받았다. 1964년 등장한 ‘룩소매틱 Z90’은 세계 최초로 바퀴를 탑재했다. 1960년대 경제호황기를 맞아 이 제품은 청소기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제품은 바퀴와 코드되감개, 먼지봉투 개폐시스템 등이 장착돼 지금과 같은 청소기 형태를 보였다.


21세기 들어서 처음으로 로봇 청소기를 선보인 회사도 일렉트로룩스다. 일렉트로룩스는 2001년 11월 세계 최초의 로봇 청소기 ‘트릴로바이트’를 내놓았다. 1997년 시제품을 만든 데 이어 상용화에 돌입한 이 제품은 고대 수중 생물인 삼엽충을 닮은 디자인에 따라 제품명이 붙었는데 이 디자인은 이후 출시된 대부분의 로봇 청소기 디자인의 모태가 됐다. 초음파 센서 9개를 통해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이에 맞는 기능을 제공해 역시 당시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현재 일렉트로룩스는 청소기 분야에서 유럽과 호주·브라질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며 미국 시장에서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간 3200만대 이상의 청소기가 팔린다.

일렉트로룩스는 설립 초기부터 수차례 인수·합병(M&A)을 하며 성장해온 회사다. 경영권뿐 아니라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경쟁사와의 합작도 꺼려하지 않는 유연한 방식을 택해왔다. 일렉트로룩스가 설립되기 전인 1912년 출시한 룩스1 제품도 창업자인 베네그렌이 룩스사와 합작한 발명품이다. 베네그렌은 일렉트로룩스를 설립하기 전까지 룩스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독일·영국·프랑스 등지에서 판매를 도왔다. 베네그렌은 또 다른 회사인 일렉트론의 대주주이기도 했는데 이 회사는 1917년 일렉트로메카니스카라는 또 다른 회사를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이듬해 일렉트론과 룩스의 합병이 결정되면서 베네그렌이 CEO이자 기술감독으로 취임하게 되고, 1919년이 회사가 룩스1의 판매권을 획득하면서 사명을 일렉트로룩스로 바꾸고,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일렉트로룩스 외에 이 회사가 판매하는 브랜드만 해도 아에게(AEG), 자누시(Zanussi), 프리저데어(Frigidaire), 일렉트로룩스 그랜드 퀴진 등 8개에 달한다. 특히 AEG 브랜드는 1887년 에밀 라테나우에 의해 설립된 후 세계 최초의 전기 기관차, 세계 최초 전자동 세탁기를 출시한 독일 브랜드로서 1994년 일렉트로룩스 그룹에 인수된 후 다양한 제품을 보유한 가전 브랜드로 성장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가장 최근의 M&A 사례인 GE 가전사업부 인수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와 중국 업체가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일렉트로룩스의 차지가 됐다. 지난해 5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GE 가전사업부는 9개 공장에서 냉장고·냉동고·주방기기·세척기·건조기·세탁기를 비롯해 에어컨과 정수기·온수기 등을 생산했다. 유럽과 남미에서의 선전에 반해 북미 시장에서 다소 주춤한 판매 실적을 보였던 일렉트로룩스로서는 매출의 90% 이상을 북미 시장에서 창출하는 GE 가전 사업부를 인수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신제품 출시 앞서 5년 간 한국 소비자 연구


▎1. 일렉트로룩스의 창업자 악셀 베네그렌. 2. 1928년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의 일렉트로룩스 매장. 3. 일렉트로룩스의 프리미엄 주방 가전제품. / 사진:일렉트로룩스 제공
일렉트로룩스는 몇 해 전 ‘이노베이션 트라이앵글’ 전략을 도입한 바 있다. 이른바 ‘디자인-R&D-마케팅’이 삼각편대를 이뤄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겠다는 목표였다. 이처럼 이 회사 제품을 받치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세련된 디자인이다. 일렉트로룩스의 로봇 청소기 트릴로바이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 100대 디자인으로 꼽히기도 했으며 덴마크 뱅앤올룹슨, 스웨덴의 이케아 등과 함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손꼽힌다. 일렉트로룩스의 디자인 철학은 기업 이념에서도 드러나는데, 창업자 베네그렌은 “회사의 성공은 고객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가는 데서 비롯된다”며 “제품 디자인은 사용하기에 쉽고, 편리하며 가사생활에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일렉트로룩스는 제품을 출시하기에 앞서 철저한 지역 조사를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선전하고 있는 유럽 각국을 비롯해 호주·러시아 등지에서 신제품을 내놓기 전에 현지 가정을 방문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주거환경과 문화에 적합한 성능과 디자인을 찾기 위해 애쓴다. 지난해 6월 국내 출시한 프리미엄 청소기 ‘울트라플렉스’의 경우 5년에 걸쳐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연구한 끝에 탄생한 제품이다. 이 제품은 청소 중 빨아들인 먼지가 청소기 틈새로 다시 나오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했다. 봄철 황사나 미세먼지 문제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한 것이다.

문상영 대표는 “국내 주거 환경 특성상 가구 밑이나 코너 등 청소기가 닿기 어려운 공간에 쌓인 먼지가 많은 점을 고려해 틈새 공간에서도 사용이 용이하도록 노즐을 얇은 두께로 제작했다”며 “한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먼지통형 제품에 브러쉬·틈새·소파용 노즐을 한 개로 구성한 노즐을 장착해 편의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위주의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일렉트로룩스는 매년 디자인공모전을 열고 있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우승자에게 1만 유로의 상금과 일렉트로룩스 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매년 60여 개국에서 1500명 이상이 참가하는 국제 가전 디자인 공모전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5월 발표 결과에 따르면 선정된 100개 작품 가운데 8건이 한국에서 선정됐다. 순위에 포함된 33개국 중 한국인의 작품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니엘 프릭홀름 일렉트로룩스 미디어홍보부문장은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필요한 혁신적인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올해 과제였는데 한국인들의 참여는 물론 성과가 두드러졌다”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부터 디자인·생산·마케팅·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일렉트로룩스의 기업 철학이 한국 소비자에게도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290호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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