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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빅데이터로 범죄 막는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진주를 캐는 기술 … 상상력과 통찰력 없으면 무용지물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ted.com
십대 때는 짜장면이 좋았다. ‘짜장 맛’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독창적인 맛에 빠졌고, 단무지의 샛노랑과 어울리는 진한 갈색에 끌렸다. 뭐 좀 아는 이십대가 되자 짬뽕으로 기울었다. 짬뽕이 주는 화끈거림 앞에서 짜장의 존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삽십대가 되면서부터 둘 사이에서 끝 모를 고민에 빠졌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매번 후회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 더 난감했다.

그때 소리소문도 없이 짬짜면이 나타났다. 플라스틱 사발을 떡 하니 두 쪽으로 나눌 생각을 과연 누가 했을까? 코페르니쿠스를 훌쩍 뛰어넘는 그 당돌함과 대범함에 전 국민이 환호했다. 매번 뻔한 메뉴판을 만지작거리며 느껴야 했던 숨막히는 갈등, 또 그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중국집 사장의 초조함을 한 방에 날려버릴 듯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짬짜면의 비밀이 밝혀졌다. 짬짜면은 짜장과 짬뽕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완결된 음식이 아니라 그저 양쪽 맛을 살짝 체험해 보는 또 다른 옵션이었던 것이다. 사십대가 된 지금, 짜장·짬뽕·짬짜의 세 가지를 놓고 더 오래 고민하고, 그만큼 더 개운찮은 선택을 한다.

선택지 너무 많으면 결정마비 현상에 빠져


▎범죄 예측 프로그램 프레드폴이 보여주는 LA지역 범죄 발생 예상 장소(http://www.predpol.com/technology/).
언뜻 선택지가 많아지면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의사결정이 힘들어지고, 심하면 선택을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결정마비 현상(Decision Paralysis)’이라고 한다. 지금과 같이 온갖 형태의 데이터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빅데이터(Big data) 시대일수록 의사결정의 패닉에 빠지기 쉽다. 이런 때일수록 산더미 같은 데이터에서 가치있는 정보만을 선별해 내고, 이것을 요긴하게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법무장관을 지낸 앤 밀그램(Anne Milgram)은 이 분야의 대가다. 그녀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뉴저지주의 범죄율을 낮추고 치안 유지비용을 절감한 경험을 들어보자.

경찰이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누군가를 체포하고, 벌금을 매기고,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의사결정이 사회 최적의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밀그램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많은 경우 개인적인 본능이나 직감으로 그때그때 체포할지 구금할지를 판단하고, 고작 노란색 포스트잇에 사건 정보를 적어 게시판에 붙여 놓는 정도로 범죄 정보를 관리하고 있었다(지금은 물론 달라졌겠지만).

밀그램은 미국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머니볼(Moneyball)’ 개념에 착안했다. ‘머니볼’이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Billy Beane) 단장이 고안한 전략이다.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팀의 승률을 높이고 구단을 저비용·고효율 구조로 탈바꿈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빌리 빈 단장은 홈런이나 타율이 높은 스타 선수보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가 팀 승리에 결정적이라는 걸 밝혀내고 여기에 근거해 선수를 영입하고 보상수준을 결정했다. 그 결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2000년대 연승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고, 빌리 빈은 2007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최고의 메이저리그 단장에 올랐다.

밀그램은 교도소 재소자 중 50%는 굳이 구금할 필요가 없는 경범죄자들인 반면, 반드시 구금해야 할 위험한 범죄자들은 어영부영 출소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녀는 범죄 용의자의 체포·벌금·구금 여부를 결정하는데 과거의 범죄이력이나 죄질, 형량 등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단 몇 년간의 노력의 결과는 고무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히던 뉴저지주 캠든에서 일어나던 살인 사건을 41% 감소시켜 37명의 목숨을 구했고, 뉴저지주 전체 범죄를 26%나 감소시킬 수 있었다.

그 후 밀그램은 미국 사회의 안전과 정의를 연구하는 아놀드 재단(Arnold Foundation)으로 자리를 옮겨 미국 사법 시스템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미국 법원의 구금 의사결정은 매년 약 1200만건에 달한다. 그녀는 데이터와 통계 분석 전문가들로 팀을 꾸리고 미국 내에서 발생했던 150만건의 과거 범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용의자의 위험성과 구금 여부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미 당국보다 정확한 구글의 독감경보 시스템


피고인의 과거 기소, 수감, 폭력 사건 관여 여부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면 이 사람이 석방되었을 때 새로운 범죄를 저지를지, 폭력행위와 연관될지, 다시 잡혀오게 될지에 대한 예측치를 알 수 있다(각 6점 만점). 판사들은 이 점수를 참고하고 여기에 자신의 개인적 직감과 경험을 더해 최종 판결을 내리면 된다. 피고의 얼굴이 아무리 착해 보이고 반성하는 빛이 역력해도 세 가지 항목의 점수가 최악이라면 감옥에 보내는 게 훨씬 안전하다. 반대로 온몸이 흉터와 용 문신으로 덮여 있어도 세 가지 점수가 괜찮다면 굳이 감옥에 보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밀그램의 목표는 향후 5년 내에 미국의 모든 사법 의사결정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과학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는 미래의 범인과 범행 일시, 장소, 방법을 정확하게 예측해서 미리 대처하는 완벽한 범죄예방사회를 그리고 있다.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실제 미국 LA 경찰은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시간대와 장소를 알려주는 범죄 예측 프로그램인 ‘프레드폴(Predpol)’을 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험 지역에 순찰 인력과 회수를 늘려 LA 지역 내 절도, 폭행 등을 30% 이상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팔로알토에 위치한 스타트업 팔란티르(Palantir)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데 일조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솔루션은 금융사기나 사이버테러 등의 징후를 감지하는데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범죄 예방 외에도 성공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구글의 독감경보 시스템은 독감 검색 빈도를 분석해 독감의 확산 정도와 방향성을 예보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보다 2주나 일찍 독감을 예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세청은 2011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의 세금 체납자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구축해 연간 345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 누락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의 심야 위치 및 이동경로 분석을 통해 서울시 심야버스 운행 노선을 변경한다든지, 교통사고 패턴을 분석해서 교통체계를 개편한다든지 하는 등 시범서비스의 성공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있다. 점차 빅데이터가 일반 국민들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빅데이터는 측정의 문제다. 그 후 관리와 개선은 응당 사람의 영역이다. 빅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을 골라내는 상상력과 빅데이터가 하지 못하는 일을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빅데이터는 자칫 빅쓰레기(Big Garbage)로 전락하고,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정보질식(Infoxication) 당할 수 있다. 사회는 앞으로 더 복잡해지고 더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빅데이터가 자본주의의 결함을 보완하고, 사회의 안전과 질서, 통합과 정의를 구현하는 ‘보이지 않던 다른 손’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291호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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