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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말하는 소통’보다 ‘듣는 소통’에 무게를 

상시 위기의 시대에 적극 대응해야 … 소비자가 이슈를 ‘검색하는 순간’을 장악해야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메르스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했다. / 사진:중앙포토
사회 전반에 불안지수가 치솟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방사능 공포는 여전하다. 매년 ‘기상 관측 이후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갈아치우는 이상기후를 비롯해 구제역, 정전사고, 개인정보유출 사고, 각종 금용사기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위기가 존재한다. 현재 사회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는 ‘중동 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마치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이 위기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현대사회의 과학적·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탄생한 각종 시스템은 삶의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위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 혹은 위기의 숫자가 증가한다는 점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 번의 위기 상황에서 경험하는 불안의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는 ‘위험사회

분명 10년 전과 비교해본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는 객관적인 수치 측면에서 상당 부분 감소했을 것이다. 가령 범죄율이나 교통사고 등 일상적인 사고의 위험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감소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불안의 수준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도 위험에 대한 자극적이고 불확실한 정보가 매체에 의해 확대·재생산 되면서, 사람들은 지금 현재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기 어렵고, 그로 인해 실체 없는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정보가 유통되는 새로운 방식도 불안감의 증폭에 한몫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객관적 정보를 확보하면, 눈과 귀를 닫고 오로지 그것을 지지하는 정보만을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극도의 편향성을 보인다. 자신의 판단과 일치하는 의견이나 정보는 확대해 받아들이고, 반대로 내 판단과 다른 의견이나 정보는 축소해 해석하려는 심리이다. 어떠한 객관적 정보도 믿지 않고 내가 가진 해답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현상은 온라인 네트워크의 힘을 받아 한층 더 강해진다.

가령,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톡 등 최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SNS 매체들에서 서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은 ‘친구’나 ‘팔로어’ 관계로 똘똘 뭉쳐있다. 따라서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들의 네트워크에 진입하기 어려워 생각이 서로 섞일 수 없다. 결국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커뮤니케이션을 이어 가면서 ‘확증편향’을 집단적으로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LG경제연구원은 이러한 여론의 움직임을 ‘여론의 쏠림’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근거 없는 글이라도 노출 빈도가 높아지면사회 이슈로 떠오르게 되고, 한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말처럼, 해당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와는 상관없이 단지 잘못된 정보의 존재 자체가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많은 기업이 이런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이 해오던 위기관리는 업태에 따라 금융업은 재무적 위험을, 제조업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위험을 중심으로 다뤘다. 이와 달리 최근에는 방어적인 위기관리 체제에서 탈피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내부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기업의 다른 관리체계와 결합하는 ‘전사적 위기관리 체제(ERM: enterprise risk management)’가 등장했다.

기업이 내부적인 위기대응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무엇보다 위기관리 조직을 강화하고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각종 유형의 위기에 대처해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가 발달해 여론의 전파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에서 아무리 적절히 대처해도 시간이 지체되면 효과가 반감(半減)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생성되기 싶다. 따라서 예기치 못했던 사태에는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해당 조직에 대한 여론 악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평소에 키워놓아야 하는 것이다.

징후는 산재돼 있기 때문에 이를 포착하려면 가능한 많은 사람의 다양한 시각을 경청하고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기업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더 폭넓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말하는 소통’이 아니라 ‘듣는 소통’이다. 기업에게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소비자 이슈에 항상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SNS를 광고나 호객 용도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이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함께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하는 메신저로 이용하고자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상업적 목적 없이 순수하게 소비자의 경험과 생각을 청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여론 악화에 신속 대응하는 역량 키워야

위기 자체의 해결 못지않게 위기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 관리도 훨씬 더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어떤 이슈에 대해 ‘검색하는 순간(ZMOT, zero moment of truth)’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애써 개발한 제품과 서비스를 평가받기도 전에 악성 루머에 휘말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억울함을 겪을 수도 있다. 고객이 제품을 직접 만져보는 ‘진실의 순간(MOT, moment of truth)’이 아니라,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판을 검색하는 순간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순간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기업이 당면한 위기 상황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SNS와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될 것이다.

위험을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미래의 잠재 손실’로 정의한다면, 향후 기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이런 위기의 발생 이전부터 위기 발생, 사후 복구까지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 돼야 할 것이다. 언제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다양한 위기 상황을 리스트업하고, 각 상황별 대응책을 사전에 마련하는 준비된 자세가 요구된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92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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