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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당신은 다윗인가 골리앗인가 

말콤 글래드웰이 말하는 현상의 재해석 … 이면의 진실을 읽는 통찰의 힘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ted.com
1984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한 한 젊은이가 미국 저널리즘계에 뛰어들었다. 탁월한 감각과 비범한 필력의 그는 곧 워싱턴포스트에 입성했고, 10여년의 경력을 쌓은 후 ‘문학적 저널리즘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뉴요커로 자리를 옮겼다. 그저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세상사의 여러 패턴에 눈길을 주고 심리학적 통찰이 묻어나는 기사를 써 내려간 그는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에 들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티핑 포인트](2000), [블링크](2005), [아웃라이어](2008),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2009) 등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얘기하는 것은 한마디로 ‘통찰력(Insight)’의 힘이다. ‘이면에서 순식간에 진행되는 많은 것들’로부터 숨은 지혜를 포착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테드 무대에 선 그가 이번에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윗과 골리앗 얘기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끄집어 낸다.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다.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 사진:중앙포토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스라엘 왕국의 동쪽 산악 지역에는 예루살렘·베들레헴·헤브론 등이 자리잡고 있었고, 서쪽 지중해 연안에는 크레타섬에서 온 해양 민족인 팔레스타인(Philistine)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두 민족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질 않았는데, 드디어 중간의 쉐펠라 지역에서 일전을 겨루게 된다. 이스라엘 군대는 북쪽, 팔레스타인 군대는 남쪽 산등성이에 진영을 쳤다. 먼저 공격에 나서면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에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궁리 끝에 팔레스타인 왕은 최고의 전사를 내보내 일대일 결투를 청했다. 그 전사는 2m가 넘는 거인인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쩍이는 청동 갑옷으로 무장하고 양 손에 칼과 창을 들었다. 기가 질린 이스라엘군들은 아무도 나서지 못했는데, 어린 양치기 소년 한 명이 자원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렸지만 소년은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왕은 마지 못해 허락을 하며 자신의 갑옷을 입으라고 내어줬지만 소년은 이마저도 갑갑하다며 거절했다. 대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 몇 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산비탈을 내려갔다.

거인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보고 외쳤다. “내게 오라. 너의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던져 줄 테니.” 양치기가 가까이 오자 거인은 그가 무기 대신 지팡이만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모욕을 당한 기분이 든 거인은 “나무 막대기들(sticks)을 들고 오다니, 내가 개처럼 보이느냐?”라며 소리쳤다. 소년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조약돌 하나를 꺼내 물매에 끼워 빙빙 돌리다가 정확하게 거인의 두 눈 사이 급소를 향해 돌을 날렸다. 거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양치기는 달려가 거인의 칼을 꺼내 쓰러진 거인의 목을 베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길로 도망쳐 버렸다.

그렇다. 거인은 골리앗, 양치기 소년은 다윗이다. 흔히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약한 쪽이 훨씬 강한 쪽을 이기는 흔치 않은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다윗을 약자(underdog)라고 할까? 골리앗보다 덩치가 작아서, 나이가 어려서, 미천한 양치기 신분이어서, 가진 무기가 물매밖에 없어서? 글쎄….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우리의 착각을 짚어 보자.

우선 다윗에 대한 착각. 고대의 군대에는 기병·보병·궁수병 외에 엄연히 물매병(slinger)이 있었다. 물매(sling)는 애들이 가지고 노는 새총(slingshot)이 아니다. 대단히 위협적인 무기다. 1초에 약 6~7번의 속도로 물매를 돌리다가 돌을 발사하면 초속 35m쯤 되는데, 웬만한 야구 투수가 던지는 공보다 더 빠른 속도이다. 당시 기록에는 물매로 200m 이상 떨어진 목표를 맞출 수 있었다고 하니 정확도도 대단히 높다.

또한 쉐펠라 골짜기의 돌은 보통 돌보다 밀도가 두 배 정도 높은 중정석(barium sulphate)이었으니 정통으로 맞으면 죽을 수 밖에. 게다가 골리앗은 엄청나게 중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날아오는 돌멩이를 보고도 피할 수 없는 앉아있는 오리(sitting duck)였던 것이다. 결국 다윗의 승리는 신의 뜻이거나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충분히 계획되고 준비된 승리였다. 누가 다윗을 약자라 하겠는가.

약점 보완보다 강점 키워야


▎‘다윗과 골리앗’ 강연 동영상.
다음은 골리앗에 대한 착각. 성경을 보면 골리앗에 대해 다소 의아한 점들이 눈에 띈다. 우선 골리앗이 골짜기로 내려올 때 시종의 손을 잡고 매우 천천히 걸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일대일 결투를 하러 나오는 모습치고는 이상하지 않은가? 또 있다. 한 눈에 봐도 다윗의 옷차림과 무기가 어설픈데도 골리앗은 한참이나 지나 다윗이 코 앞에 와서야 알아챘다. 심지어 골리앗이 다윗에게 던진 ‘나무 막대기들(sticks)을 들고 오다니’라는 말도 이상하다. 나무막대기들? 다윗은 지팡이(stick) 한 개만 들고 있었다. 이미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골리앗은 거인증(giantism)의 가장 흔한 형태인 말단비대증(acromegaly)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말단비대증은 뇌하수체에 생기는 양성 종양에 의해 성장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는 병인데, 종양이 자라면서 시신경을 압박해 종종 심한 근시나 난시를 유발한다. 골리앗이 시종에 이끌려 천천히 걸었던 것도, 또 다윗이 다가오는 것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지팡이가 여러 개로 보였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골리앗은 강자가 아니라 환자였다.

다윗과 골리앗이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번쩍이는 청동 갑옷과 무시무시한 검을 든 거인보다 지팡이와 돌멩이밖에 없는 양치기가 더 강할 수 있다. 우리는 강자와 약자의 구분에 있어 통념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돈 많으면 강자, 돈 없으면 약자인가? 상사는 강자, 부하는 약자인가? 재벌 2세는 강자, 농사꾼 자식은 약자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약점에 연연하면 약자가 되고, 강점에 집중하면 강자가 된다고 보는 편이 온당하다. 기업도 그렇다. S&P 500대 기업들의 평균 수명이 채 20년이 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원할 것 같던 절대 강자도 신생 벤처에 의해 어이없이 몰락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강점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특히 한가지 주특기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누구라도 1만 시간만 투자하면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만 시간, 그거 별거 아니다. 하루 3시간씩 10년만 투자하면 된다. 다만,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말고 딱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이 골리앗이라면 새로 물매질 배우지 마라. 오히려 불의의 공격에 대신 싸워 줄 여러 새내기 물매병들을 키워 놓는 게 현명하다. 당신이 다윗이라면 공연히 식스팩 만들려 애쓰지 마라. 골리앗이 예상 못할 또 다른 물매 필살기를 연마하는 게 현명하다.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포터 교수의 말처럼 어중간해서는(stuck in the middle)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차별화만이 답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후손들은 수 천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다. 최근 다윗의 후손인 이스라엘 내각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돌팔매를 엄중히 처벌하는 일명 ‘돌팔매 방지법’을 마련해 화제가 됐다. 현대판 골리앗이 된 군사강국 이스라엘이 약소국으로 전락한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특기였던 돌팔매 금지에 나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292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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