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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품이면 안전, 화장품이면 위험?성분을 더욱 까다롭게 따진다고 하니, 국민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 물티슈 업계는 “미국·유럽·일본에서 인정하는 일부 성분을 사용할 수 없게 돼 영세업자의 피해가 속출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 식약처와 산자부는 동일한 제품을 놓고 “7월 1일 이전에 생산된 제품은 화장품 기준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공산품 기준에서는 안전한 물질”이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는 혼란에 빠졌고 소비자들의 불안만 가중됐다.올 초 시끄러웠던 ‘가짜백수오’ 논란과도 닮았다. 당시 한국 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에는 식품 원료로 쓸 수 없는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다’ 발표했다. 이후 식약처가 내츄럴엔도텍이 보관 중인 백수오 원료를 수거해 재조사한 결과 ‘이엽우피소 성분은 검출됐지만 이엽우피소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았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는 내츄럴엔도텍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으로서의 내츄럴엔도텍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백수오를 구입한 소비자는 먹을 수도, 환불 받기도 힘든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이엽우피소에 빗댈 수 있는 물질이 CPC인 셈이다. CPC 성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미 지난해의 일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물티슈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는 곧 소비자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어린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많은 양의 물티슈를 쓰게 된다. 아이들의 경우 피부가 민감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육아 블로그와 카페에서 연일 ‘물티슈 유해 물질’ 관련 글이 올라왔다. 이에 당시 주무 부처였던 산자부가 진화에 나섰다. ‘시중에 판매 중인 144개 물티슈 제품을 모두 구매해 성분 검사를 했고, 모든 제품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는 보도자료를 지난해 12월 배포했다.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이후 정부는 사후관리 차원에서 물티슈 주무 부처를 식약처로 바꿨다. 더욱 깐깐하게 관리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조치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산자부가 공산품을 관리할 때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한 성분 CPC가, 화장품(식약처)에서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규정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동일한 제품을 동일한 용도로 사용하는데, 공산품일 때는 안전하고 화장품일 때는 위험한 제품이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해당 성분을 사용하는 업체는 ‘CPC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일본 등에서도 화장품·샴푸·구강청결제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성분이라는 게 이유다. 실제 FDA와 유럽, 일본의 규정을 찾아봤다. 기본적으로 FDA는 화장품과 구강청결제, 육류를 포장할 때 CPC를 써도 좋다고 허용하고 있다. 대신 성분 함량 비율을 제한한다. 또 소비자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범위의 CPC 양을 표기하고 소비자들 역시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FDA에서도 CPC가 호흡기 질환과 피부 자극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반수치사량을 200mg/kg으로 표시하고 있다. 몸무게 1kg인 동물이 200mg의 CPC를 한 번에 섭취했을 때 50%의 확률로 사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70kg인 사람은 1만4000mg을 한 번에 먹으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판단을 친절하게 돕는다. CPC가 들어가는 대표적 제품이 구강청결제다. 구강청결제를 1년간 매일 사용하면 약 900~1300mg을 섭취하게 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또 육류 제품을 포장하는 과정에서도 CPC가 들어간다. 육류 kg당 들어가는 CPC의 함량, 그 함량 중 인체에 섭취되는 %를 분석해 게시하고 있다. FDA는 육류 무게당 1% 미만의 CPC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1차로 국민 안전과 관련한 사용량을 규제한다. 2차로 CPC에 노출되는 사례를 다각도로 분석해 국민 스스로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게시하는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CPC가 피부에 닿았을 때 자극을 표시하면서, 이를 물로 씻어 냈을 때와 그대로 뒀을 때까지 구분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환경부와 식약처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각종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봤을 때 외계어에 가깝도록 설명한 수준이다.
가짜백수오 사태와 판박이 행보어쨌든 미국·유럽·일본의 결론은 이렇다. ‘CPC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은 맞지만 생활 속에서 섭취하거나 피부에 닿는 수준으로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다.’ 물티슈를 생산하는 업체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는 난색을 표한다. 한 중소 물티슈 제조사 전무이사의 말이다. “아이에게 물티슈를 쓰는 엄마들 사이에서 CPC는 이미 엄청난 독극물로 낙인이 찍혔다. 다들 성분표시에 CPC가 들었는지를 먼저 살핀다. 지금 와서 CPC가 안전하다고 강조해봐야 ‘우리 제품에는 CPC가 들어있습니다’라고 알리는 꼴 밖에 안 된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데 ‘물티슈 업계가 꾸준하게 노력해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소리만 반복한다.”과정이야 어찌됐든 앞으로는 CPC 성분이 포함된 물티슈는 제품 인가를 받을 수 없다. 문제는 7월 1일 이전에 산자부의 인가를 받아 시중에 유통된 제품이다. 일단 정부는 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도 제조사에게도 정말로 필요한 정보는 ‘CPC가 얼마나 유해한가’하는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CPC가 유해하다면 이를 명확하게 밝혀 피부가 약한 아이에게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크게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면 이를 제대로 알려 업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그런데 식약처와 산자부의 답변은 황당 그 자체다. CPC의 안전성에 대해 질문했다. 두 기관이 약속이나 한 듯이 “그걸, 왜 저희 쪽으로 문의하죠?”라고 되물었다. 우선 식약처 관계자의 말이다. “화장품에 사용 가능한 보존제 목록에 CPC가 없다. 7월 1일 이후 인가 받는 물티슈는 화장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CPC를 빼야 한다. 이전에 인가를 받은 제품은 공산품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산자부의 관할이다. 산자부의 정식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판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CPC에 대한 유해성은 산자부가 안전하다고 인가를 내주는 물질이기 때문에 산자부에 문의해야….” 이에 대한 산자부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공산품을 기준으로 지금까지의 물티슈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 CPC 건은 식약처로 주무 부서가 바뀌는 과정에서 논란이 나왔기 때문에 식약처에서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 산자부에서 식약처로 관할이 바뀐 이유가 식약처가 물티슈와 화학물질에 관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더 전문성을 가진 기관이 입증하는 게 맞다.”
가습기 논란 땐 무해 성분으로 홍보지난해 12월 정부는 생활 속 화학제품을 좀 더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생활화학가정용품과 물티슈의 안전관리 부처를 변경한다는 고시를 했다. ‘이번 소관 부처 변경은 부처간 칸막이를 허물고 전문 부처에 의한 일원화 관리를 통해 국민생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CPC를 놓고 식약처와 산자부가 책임을 미루는 모습은 부처간 칸막이를 허물고 국민생활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에 크게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또 있다. 지난해 CPC 파동 이후 많은 물티슈 제조사의 성분 목록에 CPC가 빠졌다. 많은 소비자가 성분을 보고 물티슈를 고른다. 문제는 아예 제품에서 성분을 뺀 것인지, 목록에서 명칭만 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공산품으로 등록된 물티슈는 화장품과 달리 전체 성분을 표시해야 할 의무가 없어서다. 공산품 기준일 때는 CPC를 그대로 넣고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뜻이다. 많은 소비자가 CPC가 든 물티슈를 구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육아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소비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산자부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물티슈는 이미 식약처의 소관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7월 1일 이후 인가를 받은 제품에는 CPC가 없고, 모든 성분이 다 표시된다는 입장을 되풀이한다.물티슈 제조사는 이제 CPC를 쓸 수 없다. 새로운 보존제를 찾아야 한다.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은 이미 보존제를 바꾼 업체도 많다. 그런데 새로운 보존제는 과연 안전할까? 한 화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물티슈는 기본적으로 부직포 같은 천 재질에 수분이 담겨 있는 제품이다. 세균·곰팡이가 생기고 썩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어떤 형식이든 이를 막는 화학제품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부패를 막는 화학물질 중 인체에 완벽하게 무해한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이를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국내의 한 물티슈 업체가 2013년 배포한 보도자료가 눈길을 끈다. 당시에도 물티슈에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포함됐다는 논란이 있었다. 대표적인 물질이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이란 물질이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의 주범이었던 물질이다. 이런 성분이 물티슈 보존제로 사용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한 물티슈 업체가 내건 홍보 문구는 이렇다. ‘우리 회사 물티슈는 보존제로 MIT 대신 CPC를 썼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구강청결제에도 쓰는 안전한 물질입니다.’ 지난해 CPC 논란이 생기기 전까지 이 회사의 제품은 친환경 물티슈란 이름을 달고 대박 매출을 기록했다.-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박스기사] 끝나지 않은 백수오 사태 -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오히려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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