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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태 어디로] 구제금융 받아도 위기 재발 가능성 

경제·금융시스템 단기에 회복 어려워 ... 한국도 외인 자본 이탈, 유로화 약세 대비해야 


▎6월 28일 그리스의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시위대가 유럽연합 깃발을 불태우고 있다.
재물의 신(神) ‘플루토스’는 그리스를 버릴 것인가? 설마 했던 그리스 디폴트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가 세계 교역·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위기의 발화점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5년 전 그리스 위기가 남유럽 재정위기로 확산한 것처럼 말이다.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6월 30일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갚아야 할 빚 16억 유로(약 2조원)를 상환하지 못했다. IMF는 ‘연체(arrears)’라는 표현을 썼지만, 시장은 사실상 디폴트로 받아들인다. 그리스 사태는 7월 5일 채권단의 긴축 프로그램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와 상관없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그리스 사태가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지만, 희망 섞인 예측일 뿐이다. 6월 30일 이전에도 대다수 금융 전문가는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은 작다고 말해왔다.

그리스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


그리스 재무부에 따르면 그리스의 총 국가채무는 3160억 유로(약 355조원)다. 이 중 7월 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58억 유로를 포함해 올해 118억 유로를 갚아야 한다. 산 넘어 산, 빚 넘어 빚이다. 그리스 정부와 국제 채권단(EU·ECB·IMF)이 채무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하더라도, 임시 봉합에 불과하다. 이미 그리스 경제·금융시스템이 단기간에 회복하기 힘들만큼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코트라 아테네무역관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매일 평균 60개 기업이 도산하고 6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내수기업 간 거래에서 84%에 달하는 비율로 대금 지급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도 수출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 4대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 100개 기업 중 95개는 거절을 당하는 실정이다. 은행도 돈이 말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뱅크런을 우려한 그리스 정부가 자본통제에 들어가면서 사회 혼란도 극심해 지고 있다. 그리스 금융 불안이 장기화되면, 금융회사 파산과 기업 연쇄부도, 대량 실업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그리스는 지난 5년간 2530억 유로(약 313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빌리고도 재정은 파탄 났고 경제는 무너졌다. 빌린 돈의 60%를 다시 빚을 갚는 데 쓰느라 경제를 살릴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이번에 다시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언제든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리스발 위기는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 디폴트 발생 후 국내 증시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얘기’인양 오히려 상승세를 탔다. 6월 29일 관계 기관 합동점검반을 꾸린 정부도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안심하다 뒤통수를 맞는 것이 금융위기의 역사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의 얘기처럼, 그리스 사태는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변수(huge wild card)’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발 위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럽이나 세계 주요국이 그리스와 거래하는 금융 익스포저(손실 위험에 노출된 금액)가 워낙 적어 최악의 위기에도 주변국으로 전염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그리스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과 같다. 그리스라는 코털이 뽑히면 잠자던 사자가 깨어나 난동을 부릴 수 있다. 임태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이 매우 작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작은 변동성이 초저금리와 맞물리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과잉 투자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고,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위험 회피 성향이 높아지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 채권·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본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스 위기가 다른 경제적 충격과 맞물려 ‘나비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발 위기는 9월로 예상되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늦추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그 자체로 리스크지만, 인상 지연 역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그리스 위기가 진행 중인 와중에 중국 경기 급랭이나 유로존 재침체, 러시아·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등 다른 충격이 결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그리스 위기가 다른 재정 취약국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점도 악재다. 이미 국제금융시장에는 신용등급이 매우 낮은 잠재 디폴트 국가 명단이 돌고 있다.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쿠바·파키스탄 등이다.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브라질·남아프리카·터키발 위기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對)EU 수출 더 악화할 수도

그리스 디폴트 사태가 심화되고, 그렉시트 우려가 커지면 한국 수출도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이미 그리스와 거래하는 국내 수출입기업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5월 우리나라의 대(對)그리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1% 감소한 1억7000만달러(약 1900억원), 수입은 41.1% 감소한 1억2000만달러(약 1350억원)였다. 코트라 아테네무역관 측은 “그리스의 유동성이 현저히 악화하면서 수출을 하고도 현지 바이어의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아예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도 되지 않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그리스 사태가 지속·심화돼 유로화 약세로 이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對) EU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나 줄었다. 1월 마이너스 23.1%로 시작해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EU에 대한 수출 경쟁력이 악화된 것은 유로존 경기 둔화,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영향과 함께 유로화 약세가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그리스 사태로 달러 대비 유로화가 더 하락하고 유로존의 소비심리까지 위축되면 EU로의 수출은 더 악화할 수 있다. 그리스 위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293호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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