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열린 부산모터쇼 수입차 전시장에 구름관중이 몰렸다.

“일단 많이 팔리니까 좋기는 한데….” 수입차 판매의 고공행진 비결을 묻자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말끝을 흐렸다. 해마다 최대 판매치를 갱신하며 끝 모를 상승세를 타고 있어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외형에 치중한 지금의 성장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대체 수입차 업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수입차는 지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수년간 꾸준히 상승세다. 지난해 누적 판매 100만대를 넘기며 본격적인 수입차 시대를 알렸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3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룬 성과다. 그 기세는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올 5월까지 9만6460대를 팔았다. 연간 판매 20만대를 넘기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전체 시장 점유율 20% 돌파도 목전에 뒀다. 새로 팔리는 차 5대 중 1대는 수입차란 소리다.

판매보단 정비에서 돈 번다?

그러나 수입차 업계에서는 지금의 상승세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판매대수 늘리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고객관리에 소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예전부터 지적돼온 애프터서비스(AS)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무줄 같은 가격 정책으로 소비자의 불만이 쌓인다. 업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지나치게 낮아진 마진율도 고민거리다. 최근에는 수입차에 대한 리콜이 급증하며 최대 강점으로 꼽혔던 품질에 대한 의구심까지 생겼다. 입소문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큰 업계의 특성상 자칫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으면 회복이 쉽지 않다.

수입차 시장에서 소비자의 가장 큰 불만은 여전히 AS 문제다. 국산차보다 곱절로 비싼 부품값과 수리비에 대한 지적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나마도 AS센터가 많지 않아 한 번 정비를 받으려면 한 달 이상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국내에 재고가 없는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수 개월을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다. 수입차 업계에서도 이를 의식한 듯 공격적으로 AS센터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AS센터가 느는 속도보다 판매 증가 폭이 더 커서 AS센터 하나가 감당해야 하는 자동차의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새로 생긴 AS센터의 접근성도 좋지 않다. 수입차의 수요는 도심에 많은데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새로 짓는 AS센터는 도심 외곽 쪽에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AS가격이다. 지난해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입차의 1회 평균 수리비는 275만원으로 국산차(95만원)의 3배 수준이었다. 수입차 주요 부품의 가격은 국산차의 4.6배, 공임은 2배가량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한국에 공급되는 부품의 가격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2~3배 이상 비싼 것으로 밝혀져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수입차 업체는 저마다 AS를 강화하겠다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수입차의 부품 가격은 왜 내리지 않는 것일까? 이를 두고 “수입차 업계의 비정상적인 수익구조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브랜드는 독일 4개 회사(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다. 전체 수입차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이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들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판매를 통한 평균이익률은 0.4%에 불과하다. 판매로는 사실상 이익이 남지 않는 구조다. 이와 달리 정비 관련 매출의 이익률은 11.4%에 달한다. 전체 영업이익의 50% 이상을 정비로 채웠다. 일단 차를 싸게 팔고 돈은 AS로 벌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독일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AS센터를 늘리는 게 꼭 고객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비 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무줄처럼 널뛰는 가격도 문제다. 최근 수입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가격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0% 이상의 가격 인하는 물론이고 60개월 이상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많다. 6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상반기의 마지막 달인 6월이 지나면 여기저기서 상반기 판매 결산 자료가 나온다. 특정차가 많이 팔리면 이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사는 경향이 있어 업체 입장에서는 꼭 챙겨야 할 숫자다. 거기다 직접 차를 판매하는 딜러들은 수입사로부터 차량 판매량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다. 목표치를 채우면 추가로 수수료를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반기 도입 예정인 유로6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 판매 중인 수입차는 유로5 기준을 통과한 차들인데 유로6 물량이 들어오기 전에 재고를 털어내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6월은 수입차를 사기에 가장 좋은 달일 수 있다. 1~5월에 차를 산 9만6400명은 무슨 생각을 할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뚝 떨어진 자신의 차 값을 보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완성된 물량을 수입해 판매하고 남는 물량이 재고가 되는 수입차 업계의 구조상 가격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수입차 브랜드의 출혈 가격 정책은 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수입차의 품질에 대한 불신도 쌓여가고 있다. 국토 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리콜된 수입차는 총 400종에 14만대다. 2013년에 비해서 165%나 늘어난 수치다. 최근 몇 년 동안 리콜된 차량의 숫자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같은 기간 국산차의 리콜 대수가 주는 것과 상반되는 결과다. 이에 수입차 업체는 “판매량이 늘어 리콜된 차량의 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판매량 증가폭과 리콜차 증가폭을 비교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입차=높은 품질’ 공식 깨져

미국의 공신력 있는 자동차 조사기관 JD파워가 발표한 초기품질조사(IQS)의 결과도 수입차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높인다. 최근 1년 이내에 차량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233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다.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와 품질에 대한 만족도를 확인할 수 있는 조사다. 이 조사에서 기아차와 현대차가 나란히 2위와 4위를 기록했다. 1위는 럭셔리 자동차를 생산하는 포르쉐였다. 대중차를 생산하는 브랜드 중에선 국산차 브랜드가 상위권을 휩쓴 것이다. 국내에서 잘나가는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는 10위권 밖으로 밀렸고, 아우디·볼보·닛산 등의 브랜드는 업계 전체의 평균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수입차가 높은 인기를 누리는 데는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 고객들이 큰 몫을 했다. 수입차 가격이 크게 떨어진 시점에서 품질과 디자인이 더 좋은 수입차를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 합리적인 미래의 소비자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수입차의 가격은 내렸지만 수리비까지 고려한다면? 거기다 국산차와 비교해 품질도 뛰어나다는 확신이 사라진다면? 인기가 절정을 찍은 지금이 진짜 수입차의 위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