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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말 많고 탈 많은 디젤차 유로6 인증] 과도한 권한 가진 말단 공무원이 ‘갑질’ 

국립환경과학원 직원, 뇌물 수수-직권 남용 혐의 … 막강한 규제에 자동차 업계는 눈치만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지난 5월부터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의 환경인증실을 수사 중이다. 혐의는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이다. 경찰은 자동차 배기가스 인증 규제를 근거로 환경 인증실 A박사가 업계에서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자택 압수수색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인증실은 자동차 배기가스 환경 인증을 담당한다. 올해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디젤 승용차·트럭에 한층 강화된 배기가스 배출 규제인 ‘유로6’의 적용이다. 유로6는 2013년 유럽연합(EU)이 만든 디젤가스 배출 기준이다. 한국 정부는 EU의 유로6 기준을 그대로 도입했다. 유로6가 적용되면 질소산화물(NOx) 배출 기준이 기존 유로5 때의 180㎎/㎞에서 80㎎/㎞로, 입자상물질(PM)은 5㎎/㎞에서 4.5㎎/㎞으로 낮아진다. 이에 DPF·SCR·EGR 등 공해저감장치를 필수적으로 부착해야 한다.

국산차와 수입차 모두 환경인증실에 해당 차종의 배기가스 시험치를 서류로 제출해야 한다. 이후 환경인증실에서 유로6 기준을 체크한 뒤 인증을 내준다. 이곳에서 인증을 받아야만 국내에서 디젤차를 판매할 수 있다. 이처럼 강화된 디젤차에 대한 유로6 환경 기준치가 적용되면서 자동차 업계에서는 심상치 않은 루머가 흘러 나왔다. 환경인증실에 잘못 보이면 유럽에서 유로6 인증을 받은 디젤차가 한국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접수가 되지 않거나 서류 보강을 요구해 인증이 지연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의 인증 담당자가 국립환경과학원에 신차 환경 인증을 신청할 때 뒷돈과 향응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며 “일부 업체는 연말·명절 때 상식을 벗어난 선물까지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밉보인 수입차 업체는 인증 절차가 별다른 이유 없이 미뤄진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그러면서 경찰이 환경인증실 관계자의 뇌물 수수 문제를 조사하면서 업계에서 돌던 루머가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자동차 업체들은 유로6 모델 도입을 앞두고 부산히 움직였다. 트럭 같은 상용차는 7월, 승용차는 9월까지만 기존 유로5 모델을 팔 수 있다. 이후엔 유로6 모델만 판매해야 한다. 수입차 브랜드들은 유로5 모델 재고를 정리하는 동시에 유로6 모델 등록을 시작했다.

유로6 인증을 받으려면 두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먼저 국립환경과학원 홈페이지를 통해 어떤 모델을 인증받으려는지 등록해야 한다. 이후 정해진 기일 안에 차량 관련 서류를 국립환경과학원에 제출하면 된다. 인증 발급 여부를 결정하는 서류 검토 기간은 2주다.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인증실은 자료를 받으면 2주 이내에 인증 여부를 발표해야 한다. 환경인증실의 A박사는 ‘사전 서류 검토’라는 비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업체에 영향을 미쳤다. 서류를 제출하기 전 담당자가 내용을 검토한 다음 부족한 점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한층 강화된 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환경인증실 관계자는 “자료를 먼저 살펴보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다”며 “서로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업체가 인증 자료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은 달랐다.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기준을 정하는 비공식적인 인증 절차라는 것이다. 서류를 제출해야 내용을 검토할 수 있는데, 비공식 절차를 만들어 서류 제출조차 허락을 받는 구조가 된 것이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A박사는 인증 서류를 사전에 검토한 이후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식으로 인증을 미뤘다. 영문 자료는 한글로 번역을 요구했고, 서둘러 자료를 만들어 보내도 기한이 지났다며 인증을 뒤로 미뤘다. 심지어 서류 확인도 없이 돌려보낸 일까지 있었다. 비공식적인 관문에 막혀 공식 인증 절차의 기회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입차 관계자는 “인증 방식과 기준을 알려주시면 그대로 맞추겠다고 이야기하자 ‘인증 받을 생각하지 말고 모델 등록을 취소하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회사가 받은 피해가 막심하지만 찍히면 나중에 더 큰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대응도 못해왔다”고 털어놨다.

이번에 인증이 늦어져 피해를 본 업체들은 대부분 유럽 자동차 브랜드다. 설계 단계부터 유럽 인증 기준에 맞춘 모델을 한국에 들여왔다. 성능에 자신이 있었기에 수입차 브랜드는 한국에서 유로6 인증이 늦어지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 모델 상당수는 환경인증실에 자료를 제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유로6 인증이 계속 늦춰지자 주한유럽연합대표부에서 한국 정부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로6는 EU에서 정한 환경 기준이다. 한국이 EU에 디젤 차량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유로6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EU에서 정한 기준에 맞춰 제작한 유럽 브랜드의 디젤 모델이 정작 한국에서 유로6 인증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유럽에서 통과한 서류가 왜 한국에서 문제냐는 지적’과 ‘인증이 늦어지는 원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주한유럽연합대표부는 항의 공문까지 보냈다. 공문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도를 넘어선 요구’라는 입장이다. 비록 유럽에서 검증 받은 모델이라지만 한국에 처음 들어오는 차량을 인증 없이 거리에 내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증 관련 루머와 관련 A박사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유로6 인증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불이익을 줬다는 지적은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차량 한 대 분량의 서류만 500~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먼저 내용을 확인해야 기한 내에 인증을 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유로6 기준 적용을 앞두고 각 업체들이 제출한 자료가 쌓여 있어 직원들이 야근을 계속하며 서둘러 인증작업을 진행해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A박사는 “인증이 늦어진 가장 큰 원인은 자료 미비”라며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한 곳 가운데 인증을 못 받은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유로6 기준 맞춘 유럽 브랜드가 더 큰 피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환경부 측은 인증 관련 문제는 ‘개인의 비리’에서 비롯한 일이라고 선을 그엇다. 개인의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기관이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중에 개인이 벌인 일탈행위까지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 환경부의 공식 입장을 밝히기는 이르다”며 “결과를 지켜본 다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했다.

수입차 업체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몇몇 업체는 인증이 예상보다 늦어 큰 피해를 입었다. 판매에 지장이 생겼고, 고객에게 차량을 인도하는 기일을 지키지 못해 신뢰에 금이 갔다. 이 과정에서 인증 담당자가 퇴사하거나 판매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를 공론화하기 꺼렸다. 환경부나 국립환경과학원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업체도 찾기 어려웠다. 정부에 밉보이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어서였다.

A박사는 대기발령 상태다. 지금 인증팀은 이전에 담당했던 전임자가 돌아와 업무를 맡았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제도엔 변함이 없다. 업체 관계자는 “자칫 눈 밖에 나면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불이익을 당할수 있다”며 취재에 협조하길 꺼렸다. 정부에선 규제 개혁을 강력하게 외치고 있지만 정작 일선 공무원 단위에선 없던 규제까지 만들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별다른 견제장치 없이 강력한 권한만 줘서 벌어진 일이다. 명확한 절차와 투명한 관리,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1292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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