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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조세제도는 백성의 상황·능력 반영해야 

세종은 공법의 장단점 놓고 고민 … ‘연분9등법, 전분6등법’ 등장 

김준태 칼럼니스트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듣건대, 좋은 정치를 완성하기 위한 요체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고 하니, 백성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를 정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 중에서 토지조세와 공물, 부역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데, 토지조세의 경우 관리를 뽑아 여러 도에 내려 보내 (농사작황에 따른) 손실을 직접 조사하여 백성들의 상황을 알맞게 헤아릴 수 있도록 진행해왔다…(중략)…하지만 파견된 관리 중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의 여하에 따라 손실을 마음대로 조사하고, 이에 따른 세액도 자의적으로 가감하여 백성들이 그 피해를 입고 있으니, 이 폐단을 구제하려면 마땅히 공법(貢法)이나 조법(助法)에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법의 경우 반드시 정전제(井田制)가 전제되어야 시행할 수 있으므로…(중략)… (공법을 도입하고자 하는데) 공법의 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과거시험 문제로 제도 개혁 아이디어 모아

세종 9년(1427년) 3월 16일, 세종은 위와 같이 과거시험 문제를 출제했다. 기존 농지소출에 대한 징세방법인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은 농사가 평년작 미만일 경우 그 손실의 정도에 따라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식이다. 매년 백성들의 개별 농사작황 상태를 반영하여 세금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제도였다. 하지만 담당실무자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강해 손실을 파악하기 위한 농지실사조사 과정에 청탁과 부정이 개입되고, 불필요한 비용이 남발되는 등 폐해가 많았다. 개인 소유 토지의 경우, 수조권자인 토지주인이 직접 작황을 조사한 후 경작자에게 세액을 고지하곤 했는데, 소작료를 비싸게 받기 위해 고의로 손실을 축소시키는 식의 문제가 심각했다.

세종은 토지소유주의 답험권한을 국가가 회수하고, 세금 징수액을 정액제로 전환함으로써 징세과정에서의 사적인 개입을 방지하고자 한다. 애덤 스미스의 [조세 부과의 4원칙] 중 세금의 납세 방법·금액을 납세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고, 징세자의 사사로운 개입에 의해 이와 같은 사실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조세 확실의 원칙’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과거시험 문제를 통해 도입을 천명한 ‘공법’은 바로 이를 위한 정책법안이었다.

그런데 공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공법은 중국 고대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이 만든 제도로 [맹자]의 ‘등문공’ 상편에 소개되어 있다. 맹자에 따르면 이 공법은 백성에게 분배된 토지 중 10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에서 나오는 소출을 세금으로 징수한다. 그런데 매년 실제 소출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해의 수확을 평균으로 계산하여 결정한다. 내야 할 세금 액수가 정해져 있어 사적인 개입이 차단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농사의 상황에 따라 연소득이 달라져도 세액은 계속 고정되어 있으므로, 흉년이 들었을 경우에는 백성들에게 큰 고통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맹자도 용자(중국 고대의 현인)의 말을 인용해 공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땅을 다스리는 데는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보다 나쁜 것이 없으니, 공(貢)은 몇 년의 중간치를 비교하여 일정한 수를 내게 하는 것이다. 풍년에는 곡식이 이리저리 넉넉하게 축적되어 있어 (국가에서) 많이 취해가 더라도 포악함이 되지 않지만 (공법은) 적게 취하고, 흉년에는 토지의 곡식이 배를 채우기에도 부족한데 (공법은) 반드시 일정액을 채운다(治地莫善於助 莫不善於貢, 貢者校數歲之中, 以爲常, 樂歲粒米狼戾, 多取之而不爲虐, 則寡取之, 凶年糞其田而不足, 則必取盈焉).”

[맹자]의 이 구절은 공법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가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유교정치의 핵심 이념인 ‘인정(仁政)’론이 전개되어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유교정치사상론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정(仁政)은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라든가 ‘항산(恒産)이 있는 자에게 항심(恒心)이 있다’라는 구절 모두 같은 장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 공법을 부정적으로 본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반대 진영에게는 훌륭한 반대의 근거가 되고, 찬성 진영에는 절박한 해명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공법 반대론자들은 맹자를 인용해 공법을 비판했다. “비옥한 전지는 열에 한 둘에 불과하고, 척박한 전지는 열에 여덟, 아홉이나 되니 (공법이 시행된다면) 좋은 전답을 경작하는 자는 다행스런 일이겠지만, 나쁜 전답을 경작하는 자에게는 불행한 일로서, 실로 고르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더욱이 공법의 폐단은 용자(龍子)가 자세히 논한 바 있으니, 풍년이라 할지라도 군대에 편입되었다든가, 병에 걸려 농사를 하지 못할 경우가 있을 텐데, 이 때 그 농사작황을 확인하지 않고 정해진 액수대로 조세를 거둘 경우 백성들의 원망과 한탄이 장차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세종12.8.10). 한 마디로 백성들의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는 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타당한 것으로, 공법 찬성론자들의 입장에서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법의 문제점을 거론한 맹자의 구절을 해명할 수 있는 논리도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조세전문가이자 우찬성이었던 하연은 해당 맹자의 구절에 대한 주자의 주석과 세주(細註, 주자 외에 다른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주석)를 인용해 ‘용자(龍子)’의 우려는 후대의 제후들이 공법을 잘못 운용한 것에 대한 것임을 밝혔다. 농지등급에 따른 정액세에 농사의 상황을 반영하여 세액을 가감해주는 방식을 결합하자고도 주장한다. 이것이 곧 우임금이 처음 공법을 만든 정신이라는 것이다. 공법을 유지하면서도 답험손실법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다. 풍작과 흉작의 정도,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국의 농지를 54등급으로 세분화하여 세금을 부과한 ‘연분9등법 전분6등법’은 바로 이러한 논쟁 과정을 거쳐 확립된 것이다(세종26.11.13)

‘맹자’ 구절 놓고 열띤 토론

흔히 국가가 어지럽고 민생이 혼란한 시기를 살펴보면 조세제도 또한 문란해 있다. 세금은 납세자인 백성과 징세자인 국가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세금을 거두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백성을 보호하는 데에 따른 최소한의 비용을 청구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조세제도는 간단하고 명확해야 한다. 징세자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개입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조세제도는 백성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 백성의 담세능력을 반영하는 가운데 성립되어야 한다. 공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맹자의 구절은 국가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뜻한다. 이 정신을 살려 조세제도를 완성한 세종의 공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96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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