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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일자리 감소 우려] 20년 안에 일자리 47% 사라진다? 

옥스퍼드대 연구팀 702개 일자리 분석 … “로봇 덕에 새로운 일자리도 나와” 반론도 

“안녕하세요, 저는 환전·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안내, 계좌 개설과 해외 송금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어떤 걸 문의하시겠습니까?” 지난 4월 일본 최대 은행인 도쿄-미쓰비시 UFJ은행(BTMU) 도쿄 지점에 말하는 로봇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인간과 닮은 모습의 휴머노이드 로봇 ‘나오(Nao)’가 주인공이다. 나오의 키는 58㎝에 불과하지만 재주가 많다. 일본어·중국어·영어 등 19개 언어를 구사한다. 이뿐만 아니다. 고객의 행동과 표정을 분석해 스스로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춰 행동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안내 업무 밖에 할 수 없다. BTMU는 그러나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나오가 창구 등 일반 업무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 은행에 ‘로봇 행원’ 등장


어떤 일자리가 먼저 사라질 것인가? 옥스퍼드대 마틴스쿨의 칼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연구해온 주제다. 이들은 모두 702개의 일자리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47%의 일자리가 20년 내에 사라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원인은 과학 기술의 발달에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의미다.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은 텔레마케터로 나타났다. 화물·운송 중개인, 시계 수선공, 보험 손해사정사도 위험한 직업군에 속했다. 안전한 직업군으론 판사, 경제학자, 의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이 꼽혔다. 창의성과 감수성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로봇과 일자리 감소 논쟁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의 한 소설가가 쓴 공상과학 소설에 ‘로보타’란 단어가 등장한다. 인간 대신 고된 노동을 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공상과학소설 속의 로봇은 인간의 노예 역할로 등장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로봇은 점차 일상의 존재로 다가왔다. 공장의 제조라인에서, 병원 수술실에서, 위험한 작전을 대신하는 존재로 활동 중이다. 고성능 로봇의 생산 단가가 낮아지며 사람 대신 로봇을 사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며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분야에도 로봇이 진출 중이다.

인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로봇을 기업이 마다할 리가 없다. 그러면서 로봇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2030년이면 일자리 20억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2030년이면 드론으로 매주 4~5개의 물품을 배송 받고 자율주행자동차로 여행을 하며 3D 프린터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로봇의 발전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단순 제조업 분야를 이미 넘어섰다고 한다. 인간의 지적인 영역까지 로봇이 활동 중이다. 에릭 브린졸프슨 MIT대 교수는 “로봇혁명의 ‘장밋빛 미래’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구글이 자율주행자동차를 내놓은 걸 본 뒤, 로봇이 미국 노동 시장을 뿌리째 흔드는 ‘임계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던 업무가 로봇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로봇에 노동을 맡긴 기업들은 더 많은 부를 창출하지만,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통신(IT) 전문 컨설팅업체인 가트너사는 “로봇혁명으로 2025년까지 전체 직업 가운데 3분의1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지 메이슨대학의 타일러 코웬 교수도 “로봇공학의 발달은 미국 인구를 상위 10%와 나머지 90%로 양분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 발전의 흐름을 주도하고 쫓아갈 수 있는 10%는 고임금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만, 나머지 90%는 임금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지난해 기술·기술전략·정책 전문가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복잡한 전문 지식과 상호작용이 필요한 의료·법률·금융·교육 등의 영역에서 기술에 의한 고용 대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승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장은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 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더 심각해질 것”이라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비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김문상 한국과학기술원 박사는 “요즘 로봇 공학의 트렌드는 사람과의 콜래버레이션(협업)”이라며 “당분간 생산직 노동자는 ‘로봇 동료’와 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봇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비관론 진영도 로봇이 가져올 생산성 향상 효과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미 시카고대학이 지난해 5월 베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 스티븐 카플란 시카고대 교수 등 저명 경제학자 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88%가 “자동화 기술이 역사적으로 미국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았다”고 답했다. 로봇의 인간 노동력 대체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설혹 그렇더라도 결국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MIT 로봇공학과의 레오나드 교수는 “구글이 시도하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성능을 정밀 분석한 결과, 복잡한 도심에서의 주행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그는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최초로 개발한 이후 여객기가 상용화되기까지 수십년이 걸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인 자동화 기술이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산업의 출현을 촉진해 고용을 늘린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19~20세기 초 내연기관의 발달이 마차산업과 대장간산업엔 악재로 작용했지만, 자동차산업의 등장 덕분에 부품, 완성차 조립, 판매, 유지 보수 등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로봇의 미래를 낙관하는 진영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일자리가 출현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석탄·철광석 채굴과 운송을 무인화한 호주 광산업체 리오 틴토의 경우, 트럭 운전기사와 기차 기관사라는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생산 현장의 컴퓨터 네트워크 관리직이란 새로운 직종이 생겼다. 또 이 회사의 채용 공고란엔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기계공학과 전기공학의 합성어) 전공자 우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과거처럼 기계공학이나 전기공학 전공자를 따로 뽑지 않고, 두 가지를 함께 배운 하이브리드형 인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의료·법률·금융·교육 종사자도 안심 못 해

한국은 로봇 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다. 이미 로봇밀도도 세계 1위다. 한국은 공장 자동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국가로도 꼽혔다. 빠른 공정 자동화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은 물론, 노동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012년 고용노동부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생산성 증가율이 높았던 산업일수록 고용증가율이 낮게 나타났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에는 기술충격 때문에 장·단기적으로 고용이 모두 감소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향후 10년간 세계 주요 공업국 가운데 한국에서 제조업 생산현장 인력의 로봇 대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박광순 연구위원은 “한국의 산업 자동화는 도장·용접 등 노동자들이 꺼리는 공정을 중심으로 이뤄진 게 특징”이라며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 조용탁 기자 cho.youngtag@joins.net

1298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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